포털 댓글공간, 공적 광장으로 볼 순 없을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무조건 금지 능사 아냐

데스크 칼럼입력 :2018/05/24 15:38    수정: 2018/05/24 15:4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래 전부터 ’공적 광장 원칙(public forum doctrine)’을 확립해 왔다. 의견 표현을 위해 공적광장에서 집회하려는 사람들을 광장 밖으로 몰아내려는 시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원칙이다.

그래서 공적 광장 원칙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1조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힌다. 서울 시청 광장 같은 곳들은 ‘공적 광장’의 대표적인 사례다. 정당한 절차를 거친 시위자들에게 광장을 개방해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원칙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공간만 공적 광장일까? 미국 뉴욕 남부지역법원이 23일(현지시간) 내놓은 판결은 이 물음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있다. 트위터 같은 소셜 플랫폼 역시 공적 광장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모든 트위터가 공적 광장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뉴욕지방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공적 광장이라고 판단했다. 이 기준에 따라 반대 의견을 답글로 남긴 이용자들의 트위터를 차단(blocking)한 행위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 위반 행위라고 판단했다.

■ '차단'보다 '뮤트' 권장한 판결, 새길 부분 없을까?

이번 판결은 여러 모로 흥미롭다. 판사는 반대 의견을 보기 싫으면 뮤트(mute)를 하면 되는 데 굳이 차단한 건 심했다고 판단했다. 뮤트란 차단하는 대신 특정 계정의 글이 타임라인에 뜨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뉴욕법원 판결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상황을 되돌아보게 됐다. 댓글을 놓고 벌이는 ‘수준 낮은 공방’이 다소 아쉽단 생각도 함께 하게 됐다.

드루킹 사태 이후 댓글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에선 댓글이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급기야 여론에 밀린 네이버는 정치 기사 댓글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 공격하는 쪽이나, 떠밀린 쪽이나 '공적공간'이나 '표현의 자유'를 크게 고민한 것 같진 않다.

물론 미국 법원의 이번 판결이 포털 댓글 공방과 딱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 공식 트위터와 포털 뉴스 댓글 공간은 법적인 지위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공식 트위터 계정.

하지만 밑바탕에 깔린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론의 공간이란 측면에선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차단’과 ‘뮤트’의 차이를 강조한 미국 법원의 판결은 우리도 새겨들을 부분이 적지 않아 보인다.

곰곰 따져보자. 댓글 공간이 다소 시끄럽다고 원천 봉쇄해버리는 건, 시위대를 막기 위해 서울광장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정부 시절 전경들의 버스가 서울광장을 둘러싸는 불편한 경험을 했다.

그런 측면에선 포털 댓글도 마찬가지다. 조금 시끄럽다고 막으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용자들이 표출되는 댓글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적 해결책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단 얘기다.

■ 광장 내 부정행위는 다른 방법으로 제재해야

공적광장 원칙을 적용한다고 해서 모든 행위가 용인되는 건 아니다.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할 경우엔 처벌을 받는다. 공적 광장 이용에 따른 책임감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포털 댓글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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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에서 뉴욕법원은 트럼프 계정에 공식적으로 올라온 글과 답글들이 연결된 상호작용 공간을 분리했다. 둘중 답글과 리트윗 등이 이어진 상호작용 공간을 ‘공적 광장’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공적 광장에선 ‘관점 차별(viewpoint discrimination)’을 해선 안된다는 게 뉴욕법원 판결의 골자다.

포털 댓글 공방도 그런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순 없을까? 그럴 때에야 서울광장을 전경 버스로 둘러친 것 같은 볼썽 사나운 풍경을 연출하는 것만은 피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