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 전문가를 찾아서②] "기술로 도시내 교육, 의료, 문화 바꾸겠다"

정재승 세종스마트시티 MP(카이스트 교수)

인터뷰입력 :2018/05/23 10:20    수정: 2018/05/23 11:53

“파격적이고 엉뚱하죠.”

물리학을 공부한 뇌과학자가 도시 설계를 맡았다. 그는 뇌과학자인 자신이 세종 스마트시티 총괄책임자(Master Planner, MP)가 된 걸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엉뚱하지 않았다.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오랫동안 연구해온 그였다.

(사진제공=정재승)

스마트시티 시범도시인 세종5-1생활권 MP를 맡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신경건축학분야 학회를 이끌어왔다. “신경건축학은 공간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뇌, 사고, 인지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건축 설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문이죠. 사람들은 어느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행복이 달라지거든요.”

그는 공간을 설계할 땐 사람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머무는 요양원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 지, 혁신 아이디어가 잘 나오는 업무환경은 어떻게 마련해야하는 지, 아이들이 몰입해서 즐겁게 배울 수 있으려면 어떤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지, 이런 것은 모두 사람 이해가 필요합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그는 자신이 스마트시티 MP로 선정된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스마트시티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을 데이터화하고, 그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서 그들에게 실제 필요한 맞춤형 예측 서비스와 삶의 질을 높이는 경험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이해와 4차산업혁명 전반의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죠. 그러다 보니 건축 혹은 도시 계획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저 같은 사람을 선정한 것 같아요. 각별히 설레고 의미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미 중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스마트시티 마스터 플래닝을 했던 경험이 있다. “중국은 시진핑 정부가 전국에 500개 스마트시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500개 스마트시티 주제는 다 달라요. 저는 청도 옆에 있는 웨이팡시라는 곳을 부탁받았어요. 그곳은 헬스케어가 주된 키워드였죠. 중국 노인들이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의료서비스를 받으니까 그러지 말고 중국 내에 굉장히 좋은 의료시스템을 만들 테니 여기서 요양하라는 취지죠. 도시 규모 요양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도시 전체가 노인, 환자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링해 응급상황에서 적재적소에 대응을 하는 거죠.”

■세종은 문화·정치·교육 모든 분야의 리빙랩

스마트시티를 설계해 본 공간을 이해하는 뇌과학자, 그가 그리는 세종 스마트시티는 어떤 모습일까.

“행복을 위한 혁신을 담는 도시를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뜻이냐면 기업들이 혁신하려는 노력이 세종시 시민들에게 좀 더 높은 행복과 삶의 질을 제공하고, 또 그런 테스트베드로서 세종이 노력하면 기업은 테스트를 통해서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높여 글로벌로 판매하는, 이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일이 벌어지게 하려 해요.

이곳에 오면 일종의 테스트베드, 리빙랩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어 스타트업을 하려는 젊은이들, 기업인들, 대덕 연구단지 등에 있는 연구원들이 이곳에 와서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를 실험할 수 있는 거죠. 그 실험을 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꺼이 주겠다고 자발적으로 동의한 주민들에게는 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이용해서 보상해주고요. 데이터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코인이라는 혜택을 받고, 그 데이터를 통해 도시가 좀 더 나은 도시로 만들어지고, 교육 질도 높아지고 교통도 훨씬 편리해지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겠죠.”

세종시에 어떤 영역을 제일 먼저 구축하려 하는지 묻자 그는 “그런 것은 없다. 어떤 실험이든 다 벌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하는 교통, 에너지 부분도 당연히 달라져야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면 교육은 매우 중요해요. 이곳에서 굉장히 특별한 학교가 실험되고, 그 학교가 다른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래요.”

그가 생각하는 교육 형태는 뭘까.

“지금 우리는 수능이 제일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은 굉장히 창의적이지 않고,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키우지도 않는 일인데도 말이죠. 그 불신은 ‘선생님이 아이들 생각을 주관식으로 평가할 때 제대로 공정하게 평가 안 할 거야’ ‘공정한 평가에 시간을 많이 쏟기 어려울 거야’와 같은 우려들이 있는 거죠. 지금과 똑같은 교실환경, 똑같은 학생 수, 똑같은 업무량으로는 불가능하죠. 그런데 예를 들어 수업이 토론을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공간 배치도 바뀌고, 에듀테크와 같은 기술이 들어가서 선생님이 학생들의 상황을 잘 모니터링할 수 있는 플랫폼이 깔린다면 프랑스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와 같은 시험을 봐도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실험을 처음부터 전국에서 할 수 없으니 세종시에서 실험하는 거죠.”

그는 문화 쪽으로도 확충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전성기가 지난 가수분들 중에서 50명, 100명만 모여도 공연할 수 있다고 하시는 분들 계십니다. 그런 분들과 그분의 공연을 보길 원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내가 공연하면 얼마나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공연장을 예약하고 기다리고 포스터를 붙이고 홍보할 수 없어요. 그 순서를 바꿔주는 거죠. 예를 들면 좋은 플랫폼을 만들어 공연하겠다고 누군가 제안하면, 시민들이 참석하겠다는 보팅(투표)를 해서 그 돈으로 공간을 대여해 실제로 공연이 벌어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대단한 세계적인 전시가 열리지 않더라도 세종에는 다양한 맞춤형 문화 예술 행사들이 벌어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공간으로 세종을 탈바꿈시켜보고 싶습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제도도 구현해 보려 한다고 밝혔다. “앱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지역과 관련된 이슈를 물어보고,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론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의 생각이 반영돼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 있게 일종의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해주는 제도를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정치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 남이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 혹은 본인이 한 것이 맞는지에 대한 우려들을 블록체인이 막아주니까 구현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제공=정재승)

■"스마트시티는 문명을 담아내는 그릇…한때 유행 아냐"

스마트시티는 특별히 어떤 게 똑똑한 도시냐는 질문에 그는 “스마트시티는 눈치가 빠른 도시”라고 답했다. “예를 들면 내가 방에 들어왔을 때 시무룩하면 강아지가 조용히 내 눈치를 보고 얌전히 있기도 하고, 내가 우울해하면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공감을 잘해주고 말하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해 도와주는 일이 가능하거든요. 가까운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죠. 그걸 도시가 하는 거예요. 도시가 점점 그런 친구가 되는 거죠. 이런 상태니 이런 걸 원하겠구나, 알아서 서비스를 해주는 도시에서 사니까 마음이 편하고 그러면서 점차 도시에 애정이 생기는 거죠.”

그렇다면 왜 '눈치 있는 도시'가 지금 한국 사회에 화두에 오른 걸까.

“'눈치있는 기술'이 그 이전까지는 없다가 이제야 성숙해진 것 같아요. 옛날에도 이런 도시를 원했지만 할 수 없었죠. 이제는 4차산업혁명 기술이 등장해 도시에 있는 모든 것들이 비트화되고 그걸 인공지능이 분석해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등장한 거죠. 사람의 행동을 모니터링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걸 핸드폰 수준으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핸드폰을 넘어 웨어러블 기기로 내 몸의 변화를 재고 자동차 안, 집 안에서의 행동을 재면서 스마트카, 스마트홈이 늘고 있어요. 그 플랫폼이 가장 확장된 형태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모니터링하면 도시가 핸드폰처럼 서비스를 해주는 시대가 될 거에요. 문명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궁극의 형태가 도시 플랫폼인 거죠.”

그는 스마트시티는 한때의 유행이 아닐 거라고 덧붙였다. “스마트라는 이름은 유행을 타겠죠. 다른 이름의 어떤 도시가 등장할 거에요.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도시가 해야 할 일은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과 삶의 질을 올려주는 거예요. 그걸 기술을 통해서 하는 거고요.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양은 계속 늘어날 거에요. 도시가 똑똑해져서 나를 보듬어주는 그런 방향으로 갈 거라 생각해요. 그런 큰 틀에서 스마트시티라는 개념은 굉장히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업데이트와 민간 참여가 중요…경험 축적해 퍼트리는 게 세종 역할

정 교수는 스마트시티에서 “업데이트라는 개념을 도시가 이해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유시티와 다른 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유시티는 옛날 토목 건설 관점으로 도시를 신도시처럼 지은 거죠. 다 짓고 나면 이제 끝. 더는 이걸 관리할 예산이 없어 컴퓨터 파워가 꺼져있는 신도시와 다를 바가 없게 된 거예요. 건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서비스, 운영이 중요한 거죠. 핸드폰 같은 경우 내가 샀지만, 소비자 손에 있는 상태에서도 업데이트를 통해 계속 성능이 좋아져 더 나은 서비스를 계속 받잖아요. 도시 스케일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 거죠.”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끊기는 상황을 반복하는 한국에서 스마트시티는 계속 진행될 수 있을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지속성이 끊어지는 일은)그러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건 진짜 데이터와 운영이 중요하기 때문에, 건물만 지어놓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된다는 걸 자꾸 일깨워줘야 해요. 또 정부는 지속성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민간이 참여하는 게 매우 중요해요. 민간 기업은 돈을 벌 수 있다면 계속 데이터를 모아 운영하고 싶겠죠. 세종시 사람들도 자신의 데이터를 쓰게 했더니 자신이 점점 더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된다고 느끼면 계속 데이터를 제공할 거예요. 그런데 뭐가 좋은지 못 느낀다면 더 이상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을 거고, 그렇게 되면 기업은 테스트베드를 잃어버리게 될 거에요”

(사진제공=정재승)

개인의 데이터가 활발히 이용되고 모든 시스템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로 가는 것을 두고 빅브라더 사회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는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진짜 빅브라더 사회에 맞서는 플랫폼 크기가 도시라고 설명했다. 또 블록체인 기술이 개인을 식별하려는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도시가 아닌 나라가 플랫폼이 돼도 되잖아요. 하지만 궁극의 플랫폼을 도시 정도로 생각하는 이유는 커뮤니티에 모여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고 그 의사결정대로 합의에 의해 운영할 수 있는 단위가 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중앙 정부가 모든 걸 관장하게 되는 진짜 빅브라더가 나오게 될 거에요. 데이터가 주민들의 합의에 의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향, 권한이 결정되면 그런 우려들을 많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블록체인은 익명성과 투명성을 같이 갖고 있잖아요. 블록체인은 데이터 복제, 변조가 불가능하고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시도를 누군가 하려 하면 그것조차 모두 기록이 남는 시스템이에요. 때문에 데이터를 이용해 나쁘게 쓰려고 하는 개인을 감시하고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블록체인인 거 같아요. 그래서 블록체인을 구체적으로 실현해보는 건 너무 중요하죠.”

마지막으로 스마트시티가 잘 진행될 것 같은지 물었다. 그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주저 없이 답했다. “제가 마스터플래너로서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준다면 아주 재미있고 의미 있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어 그는 여러 시도와 경험을 축적해 다른 도시에 퍼트리는게 세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도가 세계적으로 처음이기 때문에 모든 시도가 다 성공하진 않겠죠. 하지만 많은 시도가 벌어진다면 그중에는 의미 있는 시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실패가 없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건 불가능하고, 바래서도 안 돼요. 많은 시도를 해보고 이건 이래서 되는구나, 저건 저래서 안 되는구나 하는 다양한 경험이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실패의 경험조차도 학습의 기회로 삼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그런 경험과 시도를 축적해서 다른 도시들에 퍼뜨리는 게 세종의 역할인 거 같아요.”

정재승 교수는 많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교수, 뇌과학자, 작가, 그리고 도시 설계자. 과학을 넘어 사회, 건축 등의 여러 분야를 융합해 끊임없이 길을 넓혀가는 그의 융합적 사고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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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모르는 분야를 만나게 됐을 때 물러나지 않고 그 벽을 넘는 용기”라고 답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아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제가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이유고, 이번에는 도시 스케일에도 적용해 보는 거죠.”

좀 더 나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 새로운 벽을 넘을 수 있는 그의 용기. 정재승 MP가 앞으로 그려낼 세종 스마트시티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