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놈, 비겁한 놈, 헷갈리는 놈

[이균성 칼럼] 포털 논란과 블랙코미디

데스크 칼럼입력 :2018/05/16 15:09    수정: 2018/11/16 11:21

한국신문협회가 지난 15일 성명을 발표했다. 국회와 정부가 포털 뉴스 서비스의 아웃링크를 법률로 정하라는 게 골자다. 웃기는 일이다. 상식적 이치를 배반하기 때문이다. 사익을 위해 공익을 내세우고, 제 이익을 위해 남 권리를 뺏으며, 작은 부조리를 없애자고 큰 부조리를 동원한다. 그건 원래 코미디의 영역이었다. 상식적 가치를 위해, 되레 상식을 전복하는. 농(弄)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농담이 지나치면 그건 더 이상 코미디의 영역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코미디언보다 더 웃기는 부류가 있다. 정치인이다. 상식적 이치를 뒤집어도 너무 잘 뒤집는다. 그 기술을 보면 코미디언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문제는 그러면서 진짜 진지하다는 거다. 이 세상 어떤 코미디언도 보여주지 못한 절정의 고수다. 배꼽이 빠질 수밖에 없다. 신문협회가 이제 거의 그 수준이 되었다.

우린 왜 YES아니면 NO이어야만 할까

이들이 내건 아웃링크 법제화 명분은 댓글 조작을 통한 여론 왜곡 방지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 명분보다 신문사의 실리를 챙기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아웃링크든 댓글 정책이든 이제 신문사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내건 명분이 진심이면 당장 협회 회원사 모두가 합의해 포털과의 콘텐츠 계약을 끊고 아웃링크를 실시하면 된다. 댓글도 알아서 없애면 그만이다.

얼마든지 그리 할 수 있는데 강제로 법을 만들자는 의도는 뻔하다. 포털 뉴스를 없애고 작지만 강한 언론의 설 땅을 뺏자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포털에 뉴스가 있으면 안 되고, 포털에 유료로 뉴스를 공급하는 언론 모델은 금지되어야만 하는가. 그런 방식으로 사업을 하다 만약 범죄 사실이 있으면 고발하고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이지. 대체 왜 다른 이의 온당한 권리를 법으로 막나.

포털 뉴스 서비스가 완전무결한 건 물론 아니다.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는 만큼 여러 문제가 있다. 허나, 그렇다 해서 뉴스 서비스를 금지시키는 건 초법적 발상이고 다분히 헌법에 반하는 생각이다. ‘인터넷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빈트 서프 구글 부사장조차 “가짜뉴스나 매크로는 기술적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비판적 사고로 잘못된 정보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공간서 이루어지는 각종 범죄행위를 기술만으로 해결하긴 힘들다는 뜻이다. 그건 온갖 법을 만들어도 우리 사회에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술과 수사를 통해 최선을 다해 범죄자를 솎아내고 인간 스스로 문화를 성숙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디테일을 만들어가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고 그냥 막아버리자는 것은 깡패집단이나 할 생각이다.

신문산업이 침체를 겪는 건 포털 탓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종이의 운명이 쇠락하기 때문이며, 위기에 처하다보니 허둥대다 업(業)의 본질까지 자꾸 까먹기 때문이다. 신문산업의 대안은 ‘진실 추구’라는 업의 본질을 훼손치 않으면서 기술 발전의 트렌드에 잘 올라타는 길 뿐이다. 음원 산업이 표본이다. LP와 CD는 죽을지언정 좋은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신문협회는 이제라도 그 길을 가라.

네이버 첫 화면이 개편된다.(이미지 편집=지디넷코리아)

네이버는 비겁하다. 국내에서 언론과 정치권력의 눈 밖에 나고 사업을 제대로 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이 칼럼을 통해 네이버의 경영회의까지 상상하며 그 처참한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구글과 페이스북과 유튜브가 왜 부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최근 보여준 일련의 대처방식은 인터넷 사업자로서 마지막까지 들고 가야 할 고갱이까지 다 내던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인터넷 사업 성패의 최대 관건은 편의성이다. 그걸 구현하는 게 사용자 인터페이스(UI)고 사용자 경험(UX)이다. 콘텐츠와 비즈니스 모델은 다양하다. 동종 모델간 경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게 그 편의성이다. 수많은 즐길 거리를 사용자가 더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핵심 관건이 되는 거다. 검색기술 또한 넓게 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사용자가 많은 곳일수록 그걸 잘하는 거다.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그걸 가장 잘 했던 거고.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두들겨 맞고 나더니 제정신을 잃었는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미 이 칼럼에서 ‘네이버 뉴스 편집은 망했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갈수록 가관이다. UI와 UX를 비틀고 꼬아 될 수 있으면 보기도 찾기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마치 사용자를 밖으로 내몰려고 작정한 사람들 같다. 그것은 오래 써왔던 사용자에 대한 배신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네이버는 드루킹 사건 초기에 국민한테 진심어린 사죄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수사 중인 사건이기는 하지만 왜 그런 일이 발생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아는 선에서 낱낱이 공개했어야만 했다. 모든 걸 공개한 뒤에 기술적 한계에 대해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사용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쪽으로 갔어야 했다. 그것이 용감한 선도자의 길이다.

네이버는 아쉽게 그 길을 가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이 지나쳤기 때문일 것이다. 공(功)은 죄다 무시되고 과(過)는 무한 증폭되는 현실에 절망했을 거다. 또 그렇게 한다 해서 청맹과니들이 그 진정성을 알아줄 리 없고, 여전히 이리떼처럼 사체(死體)를 뜯으려 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아무리 상황이 그래도 네이버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숙명이다. 국내 인터넷 선도 사업자가 가야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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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들은 헷갈릴 거다. 네이버가 뭔가 잘 못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일일이 언론사 사이트 뒤지며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제 잇속 챙기자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댓글이 없었으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뉴스 보다 댓글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그게 없어질 수 있다 하니 아쉬운 것 같기도 하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방한한 ‘인터넷의 아버지’ 빈트 서프는 이런 상황을 코미디라 보지 않을까. 빙그레 웃는 그의 마음을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