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요금제, 그거 이미 있다니까요

[이균성 칼럼] 쇠귀에 경 읽기

방송/통신입력 :2018/05/14 16:09    수정: 2018/05/15 09:39

만일 정부가 자동차 관련 국내 독과점 사업자인 현대자동차에게 특정 가격의 특정 사양 제품을 만들라고 강요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차는 누구나 타야 하는 필수품이고 그런 제품에 대해서는 이용자 차별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면서요. 현대차를 샀다가 가격이나 품질에 불만인 소비자가 아마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소비자마저 정부 조치에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까요.

이 이상한 일이 SK텔레콤에는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보편요금제라는 게 그것입니다. 월 2만 원대에 음성 150~210분, 데이터 900MB~1.2GB를 제공하는 상품을 의무적으로 만들어 제공하라는 법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현대차의 가상 사례에는 고개를 젓던 분들도 SK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게 하는 것일까요.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이동통신은 자동차와 달리 공공재(그러면서 필수재)라는 주장 때문이죠. 그리고 또 그게 공공재인 이유는 한정된 국가 자산인 주파수를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죠. 그런 만큼 정부가 특별히 규제하고 다소 심하게 개입해도 된다는 논리구요. 일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허나 정부가 이제 와서 그렇게 주장하는 건 좀 뻔뻔하고 자기모순이라는 것도 살펴봐야 합니다.

원래 우리 통신 산업은 전기나 수도처럼 공기업 구조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초기엔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부여한 겁니다. 하지만 이후 모두 민영화했지요. 시장경쟁에 맡기는 것이 산업의 발전이나 이용자 혜택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효과는 컸습니다. 그 이후 통신 서비스를 생태계의 정점으로 해 국내 IT 산업이 급속히 성장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죠.

주파수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준다고 데이터 도로가 그냥 쭉쭉 깔리는 게 아닙니다. 수년 혹은 십 수 년 미래를 내다보고 자금을 투자해 기술을 개발해야 길을 낼 수 있습니다. 사업자들이 그 일을 해온 겁니다. 2차선 3차선 4차선 그리고 이제 5차선을 뚫으려 하고 있는 거지요. 물론 주파수 빌린 대가는 별도로 내구요. 평창올림픽 때 우리가 보여준 5G의 신세계가 다 그들의 노력 덕분이지요.

그들도 노력을 했으니 그걸 감안해 규제를 살살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통신 산업에 대한 규제는 차고 넘칩니다. 국내 산업계 가운데 통신기업 만큼 대관 업무 담당자가 많은 곳이 과연 있을까요. 통신은 하나부터 열까지 정부가 들여다보는 산업이고 조금만 정부 신경을 거슬리게 해도 사업을 제대로 못하는 곳입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하는 곳이 바로 통신 서비스 업곕니다.

그런 그들이 다 참아도 소매가격 규제만큼은 온당치 않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부가 각 기업의 마케팅과 시장 경쟁을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법은 위헌 시비에 시달릴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입니다. 그렇게까지 할 거면 애초 민영화를 하지 말았어야지요. 단 한 곳이라도 공기업을 남겨놨어야지요. 지금이라도 다시 정부가 다 사들이든가요.

더 웃기는 건 정부가 추진하는 보편요금이 사실상 이미 있다는 겁니다. 알뜰폰이 그거죠. 이 또한 경쟁 촉진을 통한 가계통신비 인하를 목적으로 정부가 만들어낸 겁니다. 2만 원 대 상품을 원한다면 그거 쓰면 되는 일 아닐까요. 그것도 어차피 이동통신 3사 망을 이용한 거고 그러니 품질도 별 차이 없습니다. 그거 쓰면 될 일을 왜 1등 사업자에게 싼 제품 만들라 강요해 알뜰폰만 죽이려할까요.

알뜰폰엔 좋은 스마트폰이 없다는 핑계를 댑니다. 아니 그럼 기름 값 없다고 아우성이면서 큰 차만 타려는 건 제정신일까요. 정말 나라가 그렇게까지 보살펴야 하는 걸까요. 그런데 그 대안 또한 이미 있지 않습니까. 자급제를 촉진한다면서요. 그러면 되는 일 아닐까요. 이미 시장에 다양한 폰이 즐비하고 서비스도 SK텔레콤부터 수많은 알뜰폰까지 널려 있으니 이제 고르기만 하면 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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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당국이 그래서 뻔뻔하고 자기모순적이라는 겁니다. 정권이 바뀌자 뚜렷한 이유 없이 과거 정책기조를 정반대로 바꾸고도 도대체 미안해할 줄 모릅니다. 문제는 제대로 준비 안 된 대통령 공약 ‘기본요금 1만1천원 철폐’에서 비롯됐겠죠. 그걸 현행법으로 밀어붙일 수 없게 되자 온갖 방법을 다 궁리하더니 보편요금제란 괴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또 뭘 만들어낼까요.

이건 어떤가요, 보통사람요금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