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 가이드라인 만드는 게 투자자 보호"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 인터뷰

금융입력 :2018/05/23 09:27

박병진, 손예술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국이나 한국처럼 ICO를 금지하는 게 맞을까요? 규제보다는 지원을 하는 것이 맞고, 사후에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하자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서울 동작구 숭실대 진리관에서 만난 박선종 법학과 교수는 "일단 ICO는 지원해야 할 분야가 맞다"고 못을 박았다. 박 교수는 암호화폐 예찬론자는 아니다. 암호화폐와 ICO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십분 동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입장은 굽히지 않았다.

박 교수의 주장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정부가 빨리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9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법무부 등으로 구성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TF'를 통해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할 방침이라 밝혔다.

그러나 8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아 기업과 투자자를 '입법불비(立法不備)' 상태에 빠트렸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박 교수가 언급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란 곧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다.

정부가 신속히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투자자를 보호하고, 블록체인 산업도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덮어놓고 ICO는 안 된다는 현 정부에 대해 '답답하다'고까지 표현했다.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 (사진=지디넷코리아)

■ "투자자 보호하려면 최소한의 규제 필요"

ICO를 전면 금지한다면서 아무런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는 현 정부 방침은 투자자 보호가 아닌 '방치' 내지는 '무시'에 가깝다는 것이 박 교수의 분석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국내 ICO에 제동이 걸리자 스위스·싱가포르 등 해외로 나가고, 투자자들도 이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사기성 ICO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규제 당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규제의 부재가 블록체인 산업을 끝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박 교수는 "지금처럼 규제를 마련하지 않고 방치하면 사기꾼이 생긴다"며 "초기 단계에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고 'ICO는 사기꾼이 많다'는 인식이 생기면 아예 시장 자체가 끝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번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면, 사기꾼이 아닌 선의의 기술개발자까지 '양치기 소년' 취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정부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ICO는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리버스 ICO'다. 리버스 ICO는 이미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았거나 기업공개(IPO)를 마친 기업이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것을 뜻한다. 올 2월과 3월 두 차례의 ICO를 통해 총 17억 달러(약 1조8천억원)을 모금한 텔레그램이 모범 사례로 꼽힌다.

박 교수는 "모든 형태의 ICO 금지는 리버스 ICO도 안 된다는 얘긴데 과한 감이 있다"며 "정부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을만한 신용 있는 회사라고 인정이 되면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 (사진=지디넷코리아)

■ "ICO 규제, 단기-장기 구분해서 접근하자"

구체적인 ICO 규제 방안은 단기적 접근과 장기적 접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일단 기존 제도 속으로 ICO를 끌어들여 규제한 뒤, 장기적으로 ICO에 적합한 규제를 마련해나가자는 얘기다.

박 교수는 먼저 "ICO를 기존 법체계에 포섭 못 할 이유가 없다"며 "IPO 제도를 기준으로 하되, 문턱을 낮추는 것이 현실적인 절충책"이라고 제안했다. 길게 보면 ICO의 성격에 맞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겠지만, 처음부터 특별법을 만들려는 시도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직 ICO에 현행법을 적용한 판례는 없지만,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유사수신행위법), 전자금융거래법 등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박 교수는 "기존 법으로 굉장히 많은 규제를 할 수 있다"며 "언제 특별법을 만들겠느냐. 일부 개정을 하더라도 기존의 틀 안에서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다만 "암호화폐에 딱 맞는 법은 아니니 약간 완화할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적인 규제에 대해서는 "허가제가 맞는지 등록제가 맞는지 나중에 봐야 할 문제"라면서도 "허가는 어떤 기준으로 허가할지가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등록제에 힘을 실었다.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 (사진=지디넷코리아)

■ "ICO 희망 업체, 평가받을 건 받아야"

박 교수는 인터뷰 내내 모든 ICO를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적절한 검증 기준을 마련해 풀어줄 업체는 풀어주고, 허황된 백서를 가지고 투자자를 현혹하는 사기성 ICO는 엄격히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개인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으는 것은 ICO든, IPO든 심각한 문제"라면서 "(ICO의 경우) 아이디어만 가지고 돈을 끌어 모으게 해달라는 것은 법학자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이디어의 실익은 무엇인지, 기술발전이 가능한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검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교수는 ICO 희망 업체들도 모든 ICO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적절한 규제는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가받을 건 당당하게 평가받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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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ICO 희망 업체가) 규제 당국자가 기술을 이해 못 한다고만 주장하면 안 된다"며 "ICO도 투명하게 규제받을 것은 받으면서 하면 된다. 제도의 맹점을 악용하는 나쁜 사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아무 검증 절차 없이 다 풀어달라는 것은 양심 불량"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ICO 관련 정책 결정권자에게 보내는 제언을 묻자 박 교수는 "어떻게 규제를 할지, 법적 성격이 뭔지 빨리 정해야 한다"며 "큰 틀을 만들어 주고, 큰 거래를 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게 정부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