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강제로 줄이고 5G로 투자 강요하고

[문재인 정부 1년...통신정책①]

방송/통신입력 :2018/05/09 09:47    수정: 2018/05/14 14:21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5G 이동통신’과 ‘보편요금제’는 통신 업계의 가장 큰 화두다. 이동통신사를 넘어 지난 1년 간 국회와 주무부처, 증권가와 시민단체, 멀게는 글로벌 ICT 전시회에서도 끊이지 않는 이야깃거리다.

5G는 세계 최초 상용화를 위해 수조원대에 달하는 주파수 경매를 앞두고 있고, 보편요금제는 당장 오는 11일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 심의에 오른다.

산업 인프라 구축이라는 5G 상용화와 통신비 절감 대책에 속하는 보편요금제 이 두 가지 논의는 일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처음 등장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슈다.

통신 산업의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새 정권의 국정과제에 속하는 5G 상용화와 보편요금제를 끊임없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의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인 6월 5G 주파수 공급을 위한 경매가 진행되고, 같은 달에 보편요금제 도입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정부입법으로 추진된다. 5G 주파수 공급 계획은 지난 4일 공고되면서 우선 매듭을 지었다.

반면, 보편요금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5G 상용화와 보편요금제 도입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냐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대규모 설비투자 경쟁과 정부의 소매요금 규제가 병행될 수 없다는 지적 때문이다. 수조원대의 산업 인프라 구축을 떠맡기면서 기존 서비스의 수익을 예상할 수도 없게 만드는 것은 모순된 정책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 둘 중에 한 가지만 잘 이뤄지기도 쉽지 않습니다”는 이동통신사 한 고위 임원의 토로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 국정위가 기본료 폐지 대안으로 꼽은 보편요금제

보편요금제의 시작은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정의당 후보였던 심상정 의원의 공약 ‘보편적 요금제’에서 비롯됐다. 산업성보다 공공성이 우선시 되는 방송에서 보편적 시청권의 개념을 통신 소매 산업에 적용시킨 것이다.

데이터 통신을 필수재로 보고 민간 회사의 서비스 요금을 일정 수준으로 낮춰 데이터를 충분히 쓸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민간 기업인 이동통신사에만 재정 부담을 지우고 정부의 재원 충당은 처음부터 제외됐다.

기본료 폐지 공약을 꺼낸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편적 요금제는 논의에서 사라진 듯 했다. 하지만 기본료 폐지가 법적으로 강제할 근거가 없는데다 연간 7조원 가량에 달하는 통신사의 매출 감소 부담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자 기본료 폐지의 대안으로 보편요금제가 다시 급격하게 떠올랐다.

결국 취약계층에는 1만1천원 요금감면을 시행하되 기본료 폐지는 추진하지 않고 대신 보편요금제를 도입하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발표가 나오게 됐다.

국정기획위는 지난해 6월22일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국민 네트워크 접근권을 보장해 LTE 요금 수준이 사실상 월 1만원 이상 인하되는 직간접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통이 부재했던 국정기획위의 발표는 걷잡을 수 없는 논쟁으로 비화됐다.

보편요금제 도입은 과기정통부의 몫이 됐고 지난해 8월 입법예고에 이르렀다.

이동통신사는 보편요금제가 기업의 경영권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반대로 시민 소비자단체들은 기본료 폐지 공약의 대안이었던 만큼 반드시 이행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에서는 보편요금제가 아니라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법안이 여야에서 잇달아 발의됐다.

사회적 논의 기구를 통해 다시 의견을 나누기로 했지만 지난해 11월 발족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는 보편요금제 안건을 두고 파행까지 겪으면서 찬반 의견 차이만 더욱 극명하게 나뉘었다.

■ 왜 보편요금제는 조금의 이견차도 못 좁혔을까

이동통신사들은 보편요금제 만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동통신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의무적으로 관련 요금을 출시해야 하는 만큼 직접적인 이해당사자 기업인 SK텔레콤의 의견은 뚜렷하다.

SK텔레콤은 지난 규개위 심사 과정에서 “민영화된 시장에서는 본질적인 경쟁 수단이 수요 예측을 통해 통화량 등을 제공하는 것인데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이용자의 수요와 상관 없이 요금이 결정돼 이용자 중심 관점에서는 퇴행하는 것”이라며 “보편요금제 도입은 규제 완화를 통한 기존의 경쟁활성화 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꼬집었다.

또 법리적인 관점에서도 반대 이유를 들었다.

SK텔레콤은 “보편요금제 같은 규제는 통신사업자의 영업권 등 기본권을 제한한다”면서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 적절하고 부담이 완화된 방법이 존재하면 그 부분을 취하고 사익과의 균형관계가 있어야 하는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뜰폰을 통해 충분히 대체될 수 있는 법안이라는 주장도 거세다.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강병민 경희대 교수는 “전기통신사업법 제3조를 보면 전기통신사업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고 이용자는 합리적인 서비스를 이용하게 해야 한다고 돼 있다"며 "SK텔레콤 재무제표를 보면 (보편요금제에) 견딜 여력이 있는 듯 보이지만 후발사업자인 KT와 LG유플러스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보편요금제 의무 출시 대상자인 SK텔레콤 뿐만 아니라 후발사업자인 KT와 LG유플러스도 강력하게 반대할 수 밖에 없는 법안이라는 설명이다.

이동통신사 뿐만 아니라 알뜰폰 업계도 강력하게 보편요금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이통사에 도매대가를 내고 최소한의 수익성을 고려해 이미 보편요금제 수준의 요금제를 제공하고 있는데 정부 정책으로 인해 고사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보편요금제 도입과 동시에 정부가 경쟁정책으로 추진해온 알뜰폰은 퇴출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태다.

국정기획위의 보편요금제 도입 발표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도 “보편요금제 출시가 이뤄지면 알뜰폰 가입자들이 다시 이통사로 전환할 유인을 갖게 된다”면서 “알뜰폰이 가장 걱정이다”고 우려했다.

반면 시민 소비자단체는 보편요금제 도입은 이전까지 요구해왔고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기본료 폐지 대안인 만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논의 중 보편요금제 도입이 어렵다는 이동통신사의 의견에 더 이상의 논의 진행이 어렵다며 회의장 문 밖으로 집단 퇴장하기도 했다.

보편요금제 도입 입법을 업무계획에 담은 과기정통부 역시 저가 요금제와 고가 요금제 간 데이터 제공량 차이가 큰 편에 속하며 시장실패로 이뤄진 결과는 보편요금제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보편요금제는 중간이 없는 논의 속에 합의는 고사하고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한체 행정절차에 따라 규개위의 심사를 거치게 됐고, 입법안이 국회로 가더라도 다시 논쟁의 대상으로만 남을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 활 당긴 5G 상용화, 대규모 투자 초읽기

보편요금제 논의로 이동통신업계 안팎이 시끄러운 동안 5G 상용화 준비는 꾸준히 추진돼 왔다.

이동통신사들은 기술 확보와 기술 선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그 결과로 평창 동계올림픽의 5G 시범서비스를 비롯해 글로벌 ICT 전시회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세계가 인정하는 5G 선도 국가로 한국을 눈여겨 보게 한 셈이다.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국정과제로 꼽는 4차산업혁명의 핵심 ICT 인프라로 5G 이동통신을 지목했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 5G 조기 상용화를 위해 필수설비 공동구축과 활용이란 화두까지 꺼낼 정도였다.

이후 과기정통부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통신사 간 이견차이가 있는 필수설비 공동구축 공동활용 문제를 합의로 이끌어냈고, 5G 주파수 공급 계획까지 나왔다. 정부가 할 수 있는 5G 상용화 준비는 8부 능선을 넘었다.

5G 상용화 준비를 위한 마지막 과정은 다시 이동통신사의 몫으로 돌아갔다. 수조원대의 주파수 경매 낙찰대가와 함께 5G 기지국과 중계기 등 또 수조원을 들여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야 한다.

당장 올해 12월부터 주파수 대가를 납부해야 하지만 이동통신 3사는 2018년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시점에도 5G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설비투자 비용(CAPEX)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 국가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을 섣불리 계산할 수 없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 “5G와 보편요금제, 둘 다 할 수 있습니까”

국가적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임박했지만 이동통신사가 설비투자 비용을 가늠하지 못하는 점에는 보편요금제와 같은 살아있는 추가 규제 이슈가 남아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모바일 네트워크 운용(MNO) 사업은 말 그대로 대규모 장치 투자 산업이기 때문에 규제의 예측 가능성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의 투자가 미래에 수익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서비스 개시에 선뜻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과 달리 판매할 물건을 만드는 단순 공장 설립 투자가 아니라 여러 국가적인 산업과 사회의 기반 인프라가 되는 네트워크 투자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과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규제의 예측 가능성이 아니라 수익의 예측 가능성까지 사라질 수 있는 보편요금제 논의가 5G 상용화 직전에 함께 논의되는 상황이다.

수년간 정부가 도매규제 정책을 펴오다가 2년마다 요금을 직접 결정하는 소매규제 정책으로 입장을 바꿨다는 지적 수준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다. 5G라는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면서 재무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수익 제한 법안을 동시에 진행하는 아이러니가 문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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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가제 등으로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기보다 품질평가 등을 통해 설비투자 경쟁 기조로 정책을 펴오면서 품질과 커버리지 경쟁을 이끌고 온 그동안의 정부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만일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통신사의 수익성이 5G 네트워크 구축에 차질을 빚을 수준이 된다면 보편요금제 도입 이유로 꼽는 시장실패나 이동통신업계가 지적하는 경쟁정책 실패를 넘어서는 정책실패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