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 규제 개선...“정파 싸움에 역주행”

[문재인 정부 1년...규제혁신정책②]

인터넷입력 :2018/05/10 10:03    수정: 2018/05/14 14:20

김민선, 안희정 기자

“역차별을 유발하는 규제나 법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해, 국내 ICT 산업이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2014년에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 나온 학계 주장이다. 국내외 인터넷 기업 역차별 해소는 4년간 개선된 점이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당시 전문가들은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규제형평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규정 마련 시점부터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당시 미래창조과학부)는 "국내 인터넷 업계의 과도한 규제를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렇듯 국내외 인터넷 기업 역차별 문제는 해마다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으며, 매 정부마다 해결 의지를 나타냈던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후보 시절부터 국내 인터넷 산업 역차별 규제를 걷어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고, 그만큼 업계에서 거는 기대감도 컸다.

새 정부 출범 후 1년이 지난 지금, 정부의 역차별 해소 해결 과제는 어느 정도 진행됐으며 업계에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내외 기업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나섰고, 국회에선 관련 법안을 우후죽순 발의하고 있지만 해외 기업의 규제나 제재는 실질적으로 이뤄진 게 없다는 지적이 강하다.

오히려 평평한 운동장을 위해서 국내 기업의 규제를 없애는 쪽이 더 빠르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현장 목소리 청취…"아직 진행 중"

지난해 9월, 과기정통부를 중심으로 방송통신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인터넷 기업 역차별 문제 해결 범정부 테스크포스팀(TFT)이 만들어졌다.

국내 인터넷 기업의 역차별 문제 현황을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한국 내 구글과 페이스북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매출에 따른 세금 납부나 사회적 책임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범정부 TF에선 글로벌 기업들의 조세회피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TFT 출범 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는 업계 의견 수렴과 글로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최영해 과기정통부 인터넷융합정책국장은 "범정부 TF엔 대부분 역차별 관련 부처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 여러 논의가 진행중이다. 국회와 업계서 제기됐던 조세 문제 등은 글로벌 공론화가 전제 돼야 하기 때문에 논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국제적 합의 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해외 사업자에 영향이 있지만, 네이버 등 국내사업자도 해외 진출했을 때 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G20이나 OECD, EU 등에서도 구글 세금 문제를 논의하고 있고, 국가별로 승인이 이뤄져야 한다. 시간이 더 필요하고 국제적인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기정통부는 기재부와 함께 해외 기업 조세 문제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회도 준비 중이다.

최영해 국장은 "과기정통부 자체적으로는 인터넷 사업제 규제보다는 진흥을 하는 부처라 국내 기업이 사업을 하는데 규제가 있는지, 스타트업이 탄생하는데 걸림돌이 있는지 더 많이 파악하고 있다"며 "문화부에서 들여다 보고 있는 셧다운제나 저작권법 등 관련해서 국내 사업자가 역차별을 느끼고 있는 문제를 위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국내외 역차별 해소 관련 주무부처인 방통위는 범정부 TF와는 별도로 지난 2월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를 만들고 국내외 기업 역차별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 협의회는 올해 연말까지 운영될 예정이며, 1소위원회와 2소위원회가 나뉘어 논의가 진행된다. 1소위에서는 국내외 인터넷 기업 역차별 문제가, 2소위에서는 망중립성과 제로레이팅 관련 이슈가 다뤄진다.

협의회는 각계에서 모인 총 48명의 기업인과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포함돼 있다. 소위가 열리면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며, 업계 관계자들은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아직 협의회가 만들어진 후 2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라 큰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가연 변호사는 "사업자들간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보니 아직은 어떤 역차별이 있는지 알아보고, 국내외 사업자들의 입장을 들어보는 수준"이라며 "성과가 있다고 하긴 어렵고, 연말에 방통위가 협의회 의견 수렴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입법을 제안하거나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 변호사는 "현재 해결된 것은 없지만 협의회 구성했다는 것 자체가 이번 정부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며 "전문가들이 논의하고, 사업자들이 의견을 내는 대화의 장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협의회에 속한 한 전문가는 "최근 회의에서 대리인지정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는데, 구글 측의 반대가 있었다"며 "결론을 낸다긴 보단 논의를 지속하는 과정이다"고 밝혔다.

2소위에 속한 한 사업자는 "첫 회의땐 전문가와 사업자 모두 참석했지만, 업계 이해관계자간 충돌이 심했다. 효율성을 위해 전문가들만 먼저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정했다"면서 "국내외 사업자나 대형-중소 CP간 부당한 과금 차별 개선은 지금까지 진행된 회의 결과만 보더라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사업자 역풍 우려하더니…함께 규제 선상 오르나

국회를 중심으로 역차별 움직임을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한 법안들이 발의돼 소위원회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일부 법안의 경우 도리어 국내 사업자들에게 더 큰 장벽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에 정부 및 업계는 관련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최근 해외 기업 뿐 아니라 국내 포털 사업자들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국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상태라 오히려 국내 사업자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 해소를 위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뉴노멀법 ▲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뉴노멀법에 병합) ▲외부감사법 등이다. 외감법은 이미 입법예고돼 올해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먼저 지난해 발의된 ‘뉴노멀법’의 경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정부, 국내 사업자들이 법안의 실효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해 국회 통과가 지지부진했다. 2월 임시 국회 이후로는 제대로 논의될 기회도 없었다.

뉴노멀법의 초석은 바른미래당 오세정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에서 마련됐다. 국내외 기업의 역차별 해소와 관련해서는 부가통신사업자에게도 경쟁상황 평가를 실시토록 하고, 외국 IT 기업이 과기정통부에 영업보고서 등 자료 제출을 의무화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어 올해 2월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대표)이 병합 심사를 목표로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추가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새로 발의했다.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는 국내에 지사가 없는 해외 사업자의 경우 로펌이나 법인을 대리인으로 지정해 국내 이용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다.

당시 학계 및 업계는 포털의 경우 시장 획정을 해내기 어렵고, 이 같은 규제의 시작이 인터넷 산업을 규제 산업으로 인식시킬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리인 지정 제도와 관련해서는 연락 사무소가 없어서 그간 해외 사업자를 규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성균관대학교 이대호 교수는 지난해 12월 개최된 ‘4차산업혁명 플랫폼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입법전략 세미나’에서 “인터넷 사업자들이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규제하는 게 맞지만, 현재 국내 포털 사업자는 글로벌 사업자들로부터 도전을 받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며 “해외 기업도 같이 규제할 수 있는 법안인지 고려해야 한다. 게임 산업이 그랬듯 뉴노멀법으로 포털의 힘이 약해지고, 그 힘이 결국 구글과 애플로 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포털 사업자들에겐 뉴노멀법이 큰 골칫거리였다. 뉴노멀법이 인터넷 산업의 사전 규제의 마중물로 작용, 국내 포털들에 더 강한 규제를 가할 명분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뉴노멀법의 시장 획정을 통한 경쟁상황평가를 통해 독과점 여부를 판단 받게 되며, 광고나 검색 등 독과점 분야 평가 시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된다.

김성태 의원실 측은 “인터넷 기업 역차별 문제에 있어 여야 없이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며 “다른 쪽으로 규제하는 것 보다는 대리인지정제도를 통해 글로벌 기업들이 규제당국의 조치를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예전엔 글로벌 기업을 규제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있었고, 실효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지난해 페이스북 망사용료 사태나 구글세 등과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다 보니 더 이상 손 놓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고 덧붙였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정부는 국내외 인터넷 기업들 간의 역차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뉴노멀법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다만 지정대리인이라는 연락 사무소가 없어서 역차별이 해소되지 못했던 게 아니므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반면 외감법의 경우 20대 국회에서 가장 빨리 처리돼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유한회사의 경우 내년 11월 이후 첫 사업연도(2020년 회계)부터 외부 감사가 의무화된다.

외부감사 대상에 유한회사를 추가하는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발의돼 입법예고까지 2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2016년 7월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후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 지난달 19일 금융위원회가 외감법 시행령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업계에선 국내외 IT 기업 간 역차별이 다소 누그러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차재필 실장은 “외감법 시행으로 국내외 IT 기업 역차별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외감법 시행에 따라 해외 IT 기업들이 유한회사보다 공시 의무가 적은 유한책임회사, 합자회사 등으로 전환하려는 꼼수를 부릴 것이란 우려를 표한다. 또한 외감법 하나로는 역차별 문제를 제대로 풀어나가기 어려워 섣불리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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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외 기업에 규제의 칼을 들이미는 것과 국내 기업들에게 글로벌 수준으로 규제를 풀어주는 것 중 어느 게 더 빠른 길일까?

차 실장은 “지난 2월 상생발전협의회에서 이효성 방통위원장과 회의 참석자 대부분은 해외 기업들에게 동일하게 규제 적용이 안 될 것 같으면 규제를 안 하는 게 맞다는 데 동의했다”며 “글로벌 기준에 맞는 수준으로 규제를 맞춰서 국내 기업만 피해를 안보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