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 330人,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촉구

"잘못된 평가로 가해자 허명 보호하는 꼴"

인터넷입력 :2018/04/05 15:20    수정: 2018/04/05 15:21

330인의 법률가들이 피해자들의 고발을 위축시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일 인터넷 시민운동 사단법인 오픈넷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최근 미투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사실적시 명예회손죄는 피해자들의 고발을 크게 위축시키는 적폐 중 하나”라며 “우리 사회에 있을 용기있는 내부고발이 위축되지 않도록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촉구 선언에는 현직 변호사, 대학교수 등 330명의 법률가가 서명, 동참했다.

오픈넷은 이번 선언에 실무 주체 역할을 맡게 됐다.

왼쪽부터 손지원 변호사,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 현지현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기자회견에는 손지원 변호사,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지현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가 참석해 의견을 개진했다.

박경신 교수는 미투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한다면, 이는 ‘허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우리가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안 좋은 평가는 전부 다 입막음하면 안된다”며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현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가해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 정신적 충격과 직장에서의 실질적 피해가 막대하다고 주장했다.

현 변호사는 “피해자일 때와 가해자일 때 경찰의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가해자가 돼, 혹여나 재판까지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관련한 법은 형법 제307조 제1항, 제309조 제1항,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 등이다.

허명을 보호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한국의 형법이 일본 형법을 들여오면서, 또 일본은 독일의 형법 들여오면서 허명까지 보호하게 됐다는 해석도 나왔다. 박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뤄지는 한해 명예훼손 기소 건수는 2천 건, 모욕죄 기소는 1만 건에 이른다. 전체 기소 건수 20만 건 중 5%를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

박 교수는 “유럽의 상당수 국가들에 봉건제가 있었고, 귀족들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명예훼손 제도가 있었다”며 “봉건제에서는 귀족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진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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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은 진실한 사실 중에도 사생활의 비밀이 공개되는 것을 막도록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러한 부분에 한해 이를 금지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의 수단을 통해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는 최근 미투 운동과 관련해 우리나라 내부의 억압적 권력 질서를 바꾸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번 330인의 법률가 선언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