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반도체 전쟁 '교묘한 수 싸움'

'수입확대'와 '퀄컴 합병승인' 놓고 열띤 공방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8/03/27 14:58    수정: 2018/03/27 15:4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중국이 무역분쟁 중인 미국과 반도체를 놓고 교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한쪽에선 '미국산 수입확대'란 유화 제스처를 쓰면서도 다른 쪽에선 5G 경쟁자인 퀄컴 압박이란 또 다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26일(현지시간)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늘리는 대신 한국, 대만 등의 물량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유화 제스처를 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국은 ‘퀄컴과 NXP 합병 승인’이란 카드를 활용해 미국 반도체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자국기업인 화웨이와 5G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퀄컴을 압박하면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미국과 무역분쟁 중인 중국이 반도체 카드를 들고 강온 전략을 동시에 쓰고 있다. (사진=씨넷)

■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시장

미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을 향해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사업자인 화웨이의 미국 진출에 제동을 건 데 이어 외국 통신장비 구입 때 제한을 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공세의 강도가 더 강해졌다. 지난 주엔 대놓고 “미국산 반도체 구입을 늘리라”고 요구했다. 지난 해 3천750억 달러 적자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대중국 무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해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주엔 중국산 제품에 대해 600억 달러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 미국이 관세부과 대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주로 중국산 하이테크 제품들이다.

그러자 중국도 곧바로 맞불을 놨다. 미국산 돼지고기, 사과, 철강 등에 30억 달러 규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맞섰다. 돼지고기와 사과는 트럼프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이오와, 캘리포니아 등이 주산지다. 중국으로선 ‘트럼프 재선’에 영향을 미칠 카드로 맞선 셈이다.

하지만 결국 중국은 이번 주 들어 화해 쪽으로 협상 기조를 바꿨다. 중국이 ‘하이테크 냉전 종식’ 카드로 미국에 건넨 선물이 바로 반도체다.

미국이 중국산 반도체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이 반도체 최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PWC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16년 세계 반도체 소비시장의 60% 가량을 점유했다. 반면 미국은 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에 불과했다.

따라서 미국 정부 입장에선 중국 무역역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반도체 쪽을 집중 공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기존 거래선을 미국으로 맞바꾸는 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미국에 뭔가를 내줘야 하는 상황인 만큼 아시아 거래선을 미국으로 바꾸는 쪽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 중국, 5G 경쟁자 퀄컴 교묘하게 압박

그렇다고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에 마냥 고개를 숙이는 상황은 아니다. 퀄컴과 NXP 합병이란 또 다른 카드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불허’ 방침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퀄컴은 지난 2016년 NXP를 인수했다. NXP는 자동차 같은 새로운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반도체 업체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한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퀄컴에선 NXP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선택지다.

최근 트럼프의 측면 지원에 힘입어 브로드컴의 적대적 인수 공세를 물리친 퀄컴으로선 NXP 인수는 꼭 성사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사진=씨넷)

그런데 이 부분에서 중국이 중요한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에선 승인이 떨어진 상황에서 유독 중국 정부만 두 회사 합병에 대해 ‘오케이 사인’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중국 입장에선 미국산 반도체 수입 확대는 결과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 아시아 물량을 미국 제품으로 단순교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면서 “하지만 NXP 합병 건은 5G 분야에서 유일하게 자국기업 화웨이와 맞서고 있는 퀄컴에 엄청난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관련기사

물론 중국 정부가 퀄컴의 NXP 인수를 허가할 가능성이 많은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미국 측으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받아낼 것이라고 테크크런치가 전했다.

결국 중국 입장에선 ‘미국산 반도체 수입 확대’란 당근과 함께 ‘퀄컴과 NXP 합병 압박’이란 채찍을 함께 들고 무역 협상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