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R&D, 소액·국책과제 위주 문화 바뀔까

중액 과제 개편 필요성 지적…정부, 생애기본연구비 도입 계획

방송/통신입력 :2018/03/14 08:44

과학 R&D의 질적 성장을 위해 1억 미만의 소액과제,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한 국책과제 위주의 문화 등이 개선돼야 한다는 현장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13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R&D 콘서트에 참석한 전문가들과 현장 연구자들은 현행 R&D 구조에 대한 이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규제혁파를 위한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했다.

토론회에 앞서 이승복 서울대 교수는 지난 4개월간 R&D 제도개선을 위해 현장 연구자들이 참여했던 '연구제도혁신기획단'의 활동 결과를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의 양적 성과과 질적 성과로 도약할 수 있도록 R&D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 교수는 "현재 R&D구조는 적정 연구비를 고려하지 않은 소액 과제 위주의 압정형 구조"라면서 "중견 연구자의 층을 두터히 할 수 있게 연구비 구조를 압정형에서 피라미드형으로 바꿔야 R&D 효율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단기성과 위주 정책 탈피해야"

이날 토론에 참여한 유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PBS를 꼽았다. PBS란 과제를 기반으로 직접비와 인건비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유 연구원은 "PBS를 진행하다보면 단기간에 여러 종류의 과제를 진행하게 돼 출연연 고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PBS는 본래 경쟁을 통해 연구의 효율성을 담보하자는 뜻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점점 과학적 성과를 얻기보다는 PBS를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따라 승진과 인건비가 좌우되는 등 효율성이 떨어졌다.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보다는 인건비 확보를 위해 연구를 하게 된 셈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총 연구비가 19조인데 그 중 출연연이 사용하는 연구비가 8조원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연의 성과가 대학보다 낮다"고 말했다.

PBS제도로 인해 우수한 연구자를 확보하기 어려워져 효율성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연구제도혁신기획단은 PBS 폐지를 제안했다.

■ 韓 1억원 미만 vs 美 평균 17만 달러

조혜성 아주대 교수는 "학문 분야마다 적정연구비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2억원에서 4억원이 필요하다"며 "미국 같은 경우 연구비가 2억원에서 5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체 연구 중 50% 이상이 1억 미만이다. 필요한 연구비에 훨씬 못 미치는 셈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평균 연구비가 17만달러(1억8천만원)에 달한다.

조 교수는 "대학 기초연구 사업이 소액과제 위주라 많은 교수들이 연구비를 위해 대형 국책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초연구비 예산을 두 배로 끌어올린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이 공약에 대해 조 교수는 "앞으로 중규모 연구과제 수를 대폭 늘려 신진 연구자도 3억원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교수는 "소액 과제도 문제지만 10억원 이상의 대형 과제도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은 1인당 연구비가 10억이 넘어가면 연구생산성이 연구비 규모와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반면, 우리나라는 10억 이상 과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도 연구비와 효율성의 관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연구 몰입도 면에서 보면 과제가 너무 커졌을 때 행정적인 부담이 있기 때문에 적정연구비를 감안한 R&D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윤지웅 경희대학교 교수,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이승복 연구제도혁신기획단장, 김중호 오스코텍 연구소장, 조혜성 아주대학교 교수, 유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연구비 실명제-장기 과제로 적정연구비 체계화"

윤지웅 경희대 교수는 "연구비실명제도를 도입하면 효율적으로 적정연구비에 대한 공감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 정부가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쌓기 시작한 게 10년 남짓"이라고 말하며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분야별로 적정연구비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능력있는 연구자가 연구비가 없어서 연구를 그만두는 것을 막기 위해 생애기본연구비를 도입할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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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경우 연구기관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해온 사람이 연구비가 없는 경우 브릿지펀드에서 그동안 수행한 업적을 보고 연구비를 지원한다.

임 본부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다양한 내용을 R&D 혁신방안 중 제도개혁방안에 반영하고 있다"며 "2기를 통해서도 여러 가지 내용을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제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