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메모리 매각 '순항'…남은 과제는?

'매각 반대' 일축…中 반독점심사 승인만 남아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8/03/13 17:26    수정: 2018/03/13 18:00

박병진, 박영민 기자

업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매각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주목된다. 매각 당사자인 도시바가 재무 상황이 개선돼 일부 주주들이 돌연 사업 매각을 반대하는 등의 분위기도 형성됐지만, 매각을 신속히 마무리 짓겠다는 회사의 기존 입장은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바는 매각 기한인 이달 말 도시바메모리(TMC)를 '한미일연합'에 매각 완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독점심사가 늦어져 기한을 넘기더라도, 적어도 6월까지는 절차를 마무리짓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도시바는 매각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웨스턴디지털(WD)과도 화해 모드로 돌아섰다. 독점금지법 심사는 당초 길어질 것이라 예상됐던 중국을 제외하고 7개국에서 모두 승인됐다.

도시바메모리(TMC)의 생산 거점인 일본 욧카이치공장. (사진=Nikkei)

■ 주주들 '불허' 입장에도…도시바 "매각 할 것" 단호

나루케 야스오 TMC 사장 겸 도시바 부사장은 지난 9일 도시바의 생산 거점인 일본 욧카이치공장을 시찰한 후 "각국 당국의 독점금지법 심사 승인 여부를 고려하면서 이달 중에 매각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도시바가 재무 상황을 회복해 사업을 매각하지 않을 것이란 업계 전망을 일축한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매각 지연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다소 늦춰지더라도 매각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0월 확정된 TMC 매각은 도시바의 자체 회계연도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3월 말을 기한으로 5개월간 각국의 독점금지법 심사를 받고 있다. 만약 도시바가 3월 말까지 반도체사업 매각 대금을 받지 못하면 법규에 따라 일본 증권시장에서 상장폐지될 가능성도 공존했다.

그러던 중 도시바는 채무초과의 원인이었던 미국 원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WH)' 매각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엔 6천억 엔(약 6조2천억원) 증자도 성공했다. 반도체사업을 매각하기도 전에 최악의 위기 상황을 자체적으로 모면한 셈이다. 지난달 니혼게이자이는 도시바가 WH 매각으로 3월 말까지 자산가치를 흑자로 돌려 상장폐지를 피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자금 상황에 여유가 생기자 일부 도시바 주주들은 TMC 매각을 중단하고 상장(IPO)을 진행하자고 나섰다. 급박하게 진행돼 온 TMC 매각 과정에 주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이들은 외국 기업에 TMC를 헐값에 넘길 수 없다고 버텼다. 주주들의 반발로 시작된 내부 의견 분열로 TMC 매각 계획 자체가 완전히 무산될 것이라는 보도도 쏟아졌다. 이에 니혼게이자이는 "반도체사업 매각을 밀어붙이던 도시바 경영진이 고민에 빠진 상황"이라고 전한 바 있다.

웨스턴디지털(WD)의 64단 3D낸드 'BiCS3' 기반의 X4 플래시 메모리. (사진=WD)

■ '걸림돌' WD와도 화해…주시하는 SK하이닉스

최근 도시바와 한때 TMC 매각 과정에서 법적 소송까지 불사했던 협력사 '웨스턴디지털(WD)'이 화해 분위기로 들어선 것도 매각 진행 과정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WD와 도시바는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우뚝 서겠다는 명분으로 최근 다시금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루케 야스오 부사장은 9일 시바 시바람 WD 메모리 부문 부사장을 만나 "기술이 점점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양사의 제휴로 개발 효율을 높이고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며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협력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TMC 매각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협력사인 WD과의 관계였다. WD은 지난해 9월 도시바가 한미일연합에 반도체 사업을 매각하겠다고 결정하자마자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에 중재를 신청했다. 이어 WD은 도시바에 TMC의 경영 참여권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WD가 지난해 12월 법원에 제기산 판매 금지 소송을 철회하면서 양사의 관계는 급속도로 회복했다. 도시바는 오는 15일 욧카이치 공장에 WD와 공동으로 '메모리 개발 센터'를 개설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미일연합에 투자한 SK하이닉스도 TMC 매각 과정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투자 확정 이후 아직까지 공식 발표는 없지만 곧 있을 TMC 지분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투자가 임박하자 지난 2일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증권신고서 내용 중 일부를 수정했다.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당사는 도시바메모리 투자가 완료되면 약 4조원 수준의 엔화자산이 발생하게 되며, 이로 인하여 엔화 환율 변동에 따른 환 리스크가 신규로 발생하게 된다"며 "엔화 차입금 조달 세부 조건은 향후 금융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차입 시기는 도시바메모리 지분매각 완료 여부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라고 명시했다. 최근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도시바 반도체 인수와 관련해 계속 보고를 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이 도시바의 반독점심사 승인을 거부할 만한 이유가 없어 심사가 차질없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pixabay)

■ 남은건 中 심사…"거부할 만한 타당한 이유 없어"

이제 남은 단계는 중국 규제 당국의 반독점심사 뿐이다. TMC 매각 건은 총 8개국 중 중국을 제외한 7개국(한국·미국·일본·필리핀·브라질·EU·대만)에서 반독점심사를 통과한 상황이다. 또 중국이 반독점심사 승인을 거부할 만한 이유가 없어 심사가 차질없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도시바의 반독점심사 승인을 거부할 만한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중국 정부가 심사 승인 조건으로 자국에 유리한 조건을 내걸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다른 국가들이 관련 건을 모두 승인한 상황에서 이는 가능성이 낮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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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자국 기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업 인수합병(M&A)을 의도적으로 지연해왔다. 대만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도 일본 샤프를 인수할 당시 중국 규제 당국의 독점금지법 위반 심사가 늦어져 골머리를 앓았다. 폭스콘과 샤프는 지난 2016년 3월 말 계약에 합의한 지 5개월 후인 같은 해 8월에 인수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를 두고, 중국이 자국의 산업정책을 고려해 차별적인 법집행을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대근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 상무부가 금지 또는 조건부로 승인한 9건의 기업결합은 모두 외국기업이 관련된 사례였다. 매각 당사자가 중앙국유기업이거나, 중국 업체들로만 이뤄진 기업결합은 단 1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