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브로드컴 인수' 카드 왜 나왔나

퀄컴 합병 저지…'아이폰 공략'도 고려한듯

컴퓨팅입력 :2018/03/12 11:25    수정: 2018/03/12 14:2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텔의 깜짝 승부수일까? 아니면 자충수일까?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이 브로드컴과 퀄컴의 합병을 막기 위해 초강력 카드를 던질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텔이 아예 브로드컴을 인수해버리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9일(현지시간)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인텔이 브로드컴과 퀄컴의 합병을 막기 위해 직접 브로드컴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 (사진=씨넷)

■ 인텔, 작년 말부터 줄곧 브로드컴 인수 고려

잘 아는대로 인텔은 반도체 시장 1위 업체다. 지난 해 매출 600억 달러에 이른다. 시가총액 역시 2천440억 달러로 부동의 1위다.

브로드컴은 매출 176억 달러로 시장 4위이며, 퀄컴은 229억 달러로 3위에 랭크돼 있다. 시가총액은 브로드컴이 1천40억달러로 퀄컴(930억 달러) 보다 앞선다.

지난 해 11월 브로드컴이 퀄컴 인수를 선언했을 때 반도체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시장 3, 4위 업체 간의 초대형 합병이기 때문이다.

잘 아는대로 퀄컴은 스마트폰용 스냅드래곤 CPU를 갖고 있다. 여기에다 무선 모뎀 분야에서도 탄탄한 입지를 자랑한다.

브로드컴 역시 여러 기업 합병을 통해 인상적인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 그런만큼 두 회사가 한 몸이 될 경우 적지 않은 시너지가 예상된다.

인텔이 브로드컴 인수 추진이란 초강수까지 고려하는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브로드컴-퀄컴 합병 회사는 인텔이 아주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다. 두 회사가 성공적으로 합병하고 합병 누수효과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매출 규모 400억 달러 수준이다. 여전히 인텔 연간 매출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인텔은 두 회사 합병 추진 소식이 들려온 지난 해 11월부터 브로드컴 인수 방안을 고려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아무리 경쟁사 간의 합병이 위협적이라고 하더라도 인텔의 이런 행보는 다소 의외다.

이 부분에 대해 애플 중역 출신인 장 루이 가시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 ‘먼데이 노트’를 통해 퀄컴이 브로드컴 품에 안길 경우 인텔의 모바일 시장 확대 전략에 큰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가시의 분석은 단순히 퀄컴-브로드컴 합병법인의 제품 포트폴리오에 근거한 건 아니다. 오히려 퀄컴과 애플, 그리고 인텔의 복잡한 삼각관계를 고려한 분석이다.

■ "퀄컴, 브로드컴에 인수 땐 애플과 관계 개선 우려" 분석도

잘 아는대로 퀄컴은 현재 애플과 치열한 특허 분쟁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인텔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PC시대를 지배했던 인텔은 시장의 무게중심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흐름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했다. 2005년 아이폰 CPU를 만들어달라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거절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iOS 기기가 총 18억 대 가량 판매된 점을 감안하면 인텔이 당시 거절 때문에 얼마나 큰 기회 비용을 치르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인텔은 뒤늦게 스마트폰용 CPU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애플로부터 일부 물량을 따내는 데도 성공했다. 아이폰7, 8, 그리고 X모델에 일부 무선 모뎀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건 애플의 퀄컴과 치열한 공방을 벌인 덕이 컸다. 두 회사는 현재 라이선스 비용 문제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당연히 인텔 입장에선 이 공방이 계속되는 게 좋다.

그런데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해버릴 경우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브로드컴은 라이선스 비용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건 썩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인텔 입장에선 퀄컴과 애플의 분쟁이란 호재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장 루이 가시는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분석을 내놨다.

"독립기업 퀄컴에겐 (애플로부터 받을) 라이선스 비율이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브로드컴과 퀄컴 합병 기업에겐 라이선스 요율보다는 애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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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과 애플 간의 분쟁이 종결될 경우 인텔이 애플과의 무선 모뎀 계약을 놓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뒤늦게 모바일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인텔에겐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인텔이 시나리오 단계이긴 하지만 '브로드컴 인수'란 초강력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 이런 복잡한 구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게 장 루이 가시의 분석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