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젊은 의사의 꿈, 블록체인 타고 날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찾아서]③메디블록

컴퓨팅입력 :2018/02/20 09:33    수정: 2018/02/22 16:56

암호화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그 논란과 상관없이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을 4차산업혁명 시대 새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습니다. 지디넷코리아는 이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자는 차원에서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찾아서'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편집자주]

한 사람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에 담기는 세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외인 데이터가 하나 있다. 바로 의료 정보다.

의무기록, 엑스레이, MRI 영상 같은 의료 데이터를 스마트폰에 모으고 필요할 때 마음대로 활용할 순 없을까?

병원에 요청하면 데이터를 받을 수 있지만, 종이나 CD 형태라 개인이 체계적으로 모으는데 한계가 있다. 스마트폰에 넣으려면 디지털 문서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받은 디지털 문서는 사용자가 쉽게 위변조 할 가능성이 있어, 받아도 활용할 수 없는 반쪽짜리다.

두 명의 젊은 의사 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이런 문제를 블록체인 기술로 풀어 보겠다고 나섰다. 블록체인 기반 헬스케어 서비스 프로젝트 '메디블록' 얘기다.

메디블록은 스마트폰에 자기 의료정보를 모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중이다. 사용자가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QR코드를 찍어 메디블록 사용자임을 인증하면 자기 데이터를 폰으로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구상하고 있다. 여기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가 병원의 원본과 같다는 '신뢰'를 불어 넣겠단 아이디어다. 보이지 않는 '원본대조필 날인'이 찍히는 셈이다.

메디블록 고우균 대표(왼쪽)과 이은솔 대표

메디블록은 지난해 암호화폐 공개를 통한 자금조달(ICO)을 진행해 200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총 70개 국가에서 6천500명이 메디블록의 가능성에 투자했다. 자체 암호화폐 MED는 거래소에 상장돼, 현재 시가총액이 1억2300만 달러(약 1300억원)에 이른다. 메디컬분야 토큰 중 1등이다.

암호화폐가 서비스 확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메디블록 팀은 기대하고 있다. 사용자가 글을 쓰면 암호화폐로 보상을 제공하는 블록체인 기반 블로깅 서비스 '스팀잇'처럼, 개인과 병원이 메디블록 서비스에 참여하면 보상받는 구조를 만들었다.

메디블록 팀은 "결국엔 일상에 당연하게 스며들어 있는 서비스가 되겠다"는 당찬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한 헬스케어 서비스 만들자!"

개인의 의료 기록이 여러 병원에 흩어져 있고, 서로 교류가 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많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은 없는 게 사실이다.

메디블록은 이 문제를 '사용자 중심'에서 보면 보다 쉽게 풀 수 있다고 봤다.

이은솔 공동대표는 "우리는 개인이 자기 의료 데이터에 대한 주권을 갖지 못한 상황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개인이 자기 데이터를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고, 원하는 사람에게만 그 데이터를 주고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메디블록의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메디블록에 따르면 병원이 환자에 디지털 문서 형태로 의료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이미 미국, 호주, 싱가포르 등에선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데이터를 제3자에게 주는 것도 문제가 될 부분이 없다.

다만, 환자가 데이터를 받은 후 활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남아있다. 데이터 위변조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치 2주를 20주로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위변조가 되지 않았다는 신뢰가 없다면 디지털 문서로 받더라도 활용하기 어렵다.

메디블록

메디블록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신뢰성 문제를 해결했다. 이 대표는 "병원에서 환자에게 데이터를 주는 단계에서 그 이력과 내용에 대한 해시값을 블록체인에 남겨, 환자가 제3의 의료기관이나 보험사, 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 연구자 등에 데이터를 제공할 때 데이터를 원본과 동일한지 체크할 수 있게 해준다"며 "이렇게 하면 환자가 자기 데이터에 대해 신뢰성을 불어 넣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왜 블록체인인가?

사실 사용자 입장에선 이런 서비스가 블록체인 기반이라는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잘 작동하는 서비스만 있으면 된다. 의료 정보의 위변조를 확인하기 위한 기술도, 굳이 블록체인이 아니어도 구현 가능하다. 디지털 사인 등의 기술이 이미 존재한다.

그럼에도 메디블록 서비스가 블록체인 위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고우균 공동대표는 "의료 정보의 이력까지 증명하려면 디지털 사인 등 기존 기술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기록은 바뀌면 안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바뀌었는지 남아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데이터가 그냥 덮어 씌워지고 이력이 남지 않는 구조"라며 데이터 이력까지 증명하는 데 블록체인이 가장 적합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정보가 블록체인 위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이력과 내용에 대한 해시값만 블록체인에 남긴다. 해시값은 알아보기 어려운 문자열의 조합으로, 해시값을 통해 원래 데이터를 알 수 없다.

메디블록은 이 해시값을 퍼블릭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구조를 택했다. 고 대표는 "퍼블릭이든, 프라이빗이든 블록체인 안에 들어가는 정보에 대해서는 민감한 데이터는 어차피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프라이빗이나 퍼블릭은 이런 논의에 있어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새롭게 커뮤니티에 들어와서 정보를 얻고, 무결성을 입증해서 활용하려는 사람들에겐 그 자체가 큰 허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 퍼블릭 블록체인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스팀잇에서 영감 얻은 '메디포인트' 인센티브 시스템

메디블록은 플랫폼이 활성화되는 데 기여한 사용자와 병원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했다. 블록체인 기반 블로깅 서비스로 성공한 스팀잇 모델을 차용했다.

이은솔 대표는 "스팀잇은 (글을 작성해) 생태계 기여한 사람에게 스팀이라는 일종의 포인트를 제공한다. 쌓인 글이 전체 생태계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생각하고 생태계에 가치를 만들어 준 개인에 보상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경우 의료정보가 메디블록 생태계 안에 쌓이면 우리의 가치가 커진다고 생각한다"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기여한 개인 사용자나 병원에 메디포인트를 준다"고 덧붙였다.

(이미지=메디블록 블로그)

사용자는 자신의 의료정보를 휴대폰 저장장치에 보관할 수도 있고 메디블록 네트워크에 올릴 수도 있다.사용자가 데이터를 메디블록 네트워크에 올리는 경우 인센티브로 메디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또, 해당 데이터를 만든 병원에도 메디포인트가 제공된다.

네트워크에 올린다고 데이터가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데이터는 개인 암호키로 암호화돼 본인만 열람이 가능하고 암호키로 풀었을 때만 제3자의 열람이 가능하다.

"메디블록 프로젝트, ICO 없었으면 시작도 어려웠을 것"

두 창업자는 "ICO가 없었다면 메디블록 프로젝트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은솔 대표는 "환자 데이터를 쌓아서 우리가 데이터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하면 (비즈니스 모델이) 회사의 가치와 직접 연관이 되겠지만 지금 메디블록은 이런 모델이 아니다. 완전 공공성을 띈 모델에 가깝다. 이런 경우 ICO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우균 대표도 "메디블록은 굉장히 어려운 프로젝트다. 엄청난 돈과 인력이 들어갈텐데 여기에 쉽게 투자할 밴처캐피탈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ICO 이외엔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또 "ICO는 초기에 굉장히 많은 서포트 그룹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ICO를 마치고 (거래소에) 리스팅된 후 해외에서 강연하거나 밋업행사에 가면 '메디블록 샀다고 응원한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되게 많다. 이런 분들이 우리를 하나하나 홍보해주고, 서비스가 론칭되면 다 한번씩 써줄 수 있는 잠재적 유저가 된다는 측면에서 ICO는 좋은 모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론 ICO에 대한 적정 규제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 고 대표는 "ICO관련 사기도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규제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산업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면 스위스 주크 같은 산업모델을 국내에 만들면 세계 유례없는 블록체인 산업 중심에 설 것 같은데 국내는 규제만 하려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료·IT 전문성 앞세워 시장 선점"

메디블록은 올해 말까지 기능을 완전히 갖춘 서비스 완성을 목표로 잡았다. 지난해 내부적으로 개념검증(PoC)를 진행했고 지금은 대학병원과 PoC를 진행중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베타 플랫폼을 공개할 계획이다.

서비스가 완성된 다음이 더 중요하다. 고우균 대표는 "의료데이터는 민감하니까, 우리가 서비스를 내놓는다고 사용자가 바로 쓸 것이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준다고한들 내 데이터를 내놓기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기술을 만들어서 론칭하려는 생각은 아니다. 사람들한테 신뢰를 받고 사회적 컨센선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메디블록은 시스템이 믿을 만하다는 신뢰를 쌓기 위해 대학병원, 대기업 등과 PoC를 적극 진행할 계획이다. 길게는 내년까지 이런 작업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의료와 IT에 대한 전문지식이 충분하다는 점이 메디블록 팀의 강점이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이은솔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프로그래밍 특기자로 입학해, 졸업 후 의대에 진학한 경우다. 치과의사인 고우균 대표는 같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 SW엔지니어로 일하다 치과의사로 전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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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우리는 의료와 IT 분야 전문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까 다른 경쟁자와 비교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고 대표도 "진입 장벽이 높아 후발주자가 생기기 어려운 분야"라며 "외국에 비슷한 프로젝트가 있긴 하지만 솔직히 우리가 제일 잘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