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美에 일자리 창출해도 세이프가드? 납득 어려워"

WTO에 제소 계획…韓 세탁기 산업 피해 최소화 대응

홈&모바일입력 :2018/01/23 15:35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미국의 고강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이 최종 결정되면서 우리나라 정부와 업계가 대응에 나섰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한 대형 가정용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표했다. 이번 수입 제재 조치는 당초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제시했던 권고안 중에서도 수위가 높아 피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날 오전 무역보험공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국내 세탁기와 태양광 업계와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개최해, 업계에 미칠 영향과 향후 대응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는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주재 하에 진행됐으며 삼성전자, LG전자 등 업계 관계자가 참석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스트바이 매장의 월풀과 삼성전자의 세탁기. 월풀은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고율 관세 부가조치를 제기한 바 있다.(사진=지디넷코리아)

■"한국산 세탁기 세이프가드, WTO 규범에 명백히 위반"

정부와 업계는 미국의 세이프가드 최종 조치가 과도한 수준으로 결정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는 앞으로 태양광·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계획이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수입산 대형 가정용 세탁기에 대한 저율관세할당(TRQ) 기준은 120만대로 설정했다. 첫해에는 120만대 이하 물량 20%, 초과 물량에는 50%의 관세가 부과된다. 2년 차에는 120만 대 미만 물량에는 18%, 120만대 초과 물량에는 45%를 부과하고 3년 차에는 각각 16%와 40%의 관세가 매겨진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는 과도하고 WTO 규범에 위반될 소지가 명백한 점에서 유감"이라며 "전(前) WTO 상소기구 재판관 입장에서 봤을 때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하기 위한 발동 요건을 전혀 충족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급격한 수입의 증가 ▲심각한 산업피해 ▲이 두가지 사안간의 인과관계 존재 등이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세탁기의 경우 ▲시장점유율과 영업이익률 추이를 볼 때 심각한 산업피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갑작스러운 수입 증가가 있었다고 볼 수도 없으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한국산 세탁기는 산업피해의 원인은 아니라고 판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세탁기를 포함시킨 점을 감안하면 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LG전자가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Clarksville) 세탁기 생산공장 이미지.(사진=LG전자)

특히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세탁기 공장을 설립해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이익을 가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에 위치한 세탁기 생산라인을 본격 가동했다. LG전자는 미국 테네시주 몽고메리카운티 클락스빌 세탁기 생산라인을 오는 4분기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ITC는 지난해 한국 제품이 심각한 산업 피해로 보기 어려운 만큼, 세이프가드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핸리 맥마스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주지사, 랄프 노만 연방 하원의원, 밥 롤페 테네시주 상공부장관 등 현지 인사들도 우리 기업을 제재하는 세이프가드 조치에 반대 입장을 적극 표명한 바 있다.

당시 미국 인사 측은 "고율관세 부과는 세탁기 수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해 삼성과 LG의 기존 유통망 상실, 브랜드 인지도 저하 등을 초래한다"며 "이는 결국 삼성과 LG과 건설 중인 미국 현지 공장이 추후 가동돼도 정상적 운영을 어렵게 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미국은 국제 규범보다는 국내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한 조치를 결국 선택했다"며 "앞으로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 WTO 제소·양허정지 적극 추진…"승소 가능성 높아"

정부는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해 WTO에 제소한다는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세이프가드 조치 대상국과 공동 대응하는 방안도 적극 협의할 예정이다. 또 미국에 양자협의를 즉시 요청해 보상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며, 보상협의 결렬시 양허정지도 적극 추진한다.

세이프가드 협정 제 8조에 따르면, WTO 협정은 세이프가드로 인해 축소된 자국의 시장개방 수준에 대해 타품목 관세를 인하하는 등 적절한 방식으로 이를 상대국에게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로고.(사진=미국 지디넷)

또 미국을 상대로 이미 승소한 세탁기, 유정용 강관 WTO 분쟁에 있어서도 양허정지를 추진한다. 정부는 2016년 9월 승소한 WTO 한미 세탁기 분쟁과 22일(현지시간) WTO에 양허 정지를 요청했다. 이달 12일(현지시간) 승소한 WTO 유정용 강관 분쟁에 대해서도 미국에 반덤핑 기법 시정 등 이행을 촉구하고 불이행 시 WTO에 양허정지를 요청할 방침이다.

김 본부장은 "그동안 정부는 2002년 철강 세이프가드, 2013년 세탁기 반덤핑, 2014년 유정용 강관 반덤핑 등 미측의 과도한 수입규제 조치에 대해서 WTO에 제소하여 여러 번 승소했다"며 "이번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를 WTO에 제소할 경우 승소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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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세이프가드와 관련된 WTO 분쟁은 반덤핑과 상계관세에 비해 양허정지 권한 등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점을 적극 활용하겠다"며 "미국이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16년 만에 세이프가드를 꺼내들었지만, 그동안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활발히 진출해 온 우리 기업의 앞길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수출 차질이 불가피한 세탁기 산업의 피해 최소화에도 적극 나선다. 정부는 ▲삼성·LG의 미국 공장 조기가동 지원 ▲동남아, 중동, 동유럽 등 대체수출 시장 확보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