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블록체인 기대감 덜어드립니다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일상화까지 20년 걸려…멀리 보라"

컴퓨팅입력 :2017/12/07 17:49

블록체인 기술을 둘러싼 산업계 관심이 거세다. 신기술이 파괴적 변화를 몰고 올거란 전망이 짙다. 중앙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화폐발행과 거래로 새로운 시장경제를 작동시키고 금융, 소비재, 물류, 콘텐츠 서비스같은 온갖 수직시장의 생태계를 뒤흔들 거란 관측이 이목을 끈다.

일반인들이 체감할만큼 세상이 바뀌려면 얼마나 걸릴까. 지금 분위기만 놓고 보면 당장 내일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미 관련 시장에 뛰어든 스타트업 대표조차 일상적인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거래는 20년 뒤에야 통용될거란 예상을 내놓았다.

이 신중론의 주인공은 블록체인 컴퍼니 빌더를 자처하는 스타트업 '체인파트너스'의 표철민 대표다. 체인파트너스는 블록체인 분야의 비즈니스를 직접 만들고 운영한다는 목표로 움직여 왔다. 그의 메시지는 블록체인을 매개한 세간의 관심과 기대를 오히려 걷어내는 모양새다.

표 대표도 블록체인이 분명 세상을 뒤엎을 잠재력을 지닌 기술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산업 환경이나 기술 측면에서 현시점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환경 변화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앞으로 가능해질 시나리오가 어떤 것일지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2017년 12월 6일 서울 코엑스 W3C HTML5 컨퍼런스에서 키노트를 진행한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

표 대표가 지난 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W3C HTML컨퍼런스에서 '블록체인 혁명과 암호화폐의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키노트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그가 제시한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 측면의 한계, 새로운 서비스 등장 가능성, 해결돼야 할 숙제를 아래에 정리했다.

■ 한계 명확한 화폐로서의 비트코인

그는 먼저 블록체인 개념을 제시하고 그에 기반한 암호화폐를 처음 구현한 비트코인의 제약을 지적했다. 거래 체결(블록 생성)에 드는 시간, 거래 수수료가 과도하고 총 발행량이 제한돼 실용적이지 않다는 진단이다.

"거래 정보를 담은 '블록'을 생성하는 데 10분이 걸린다. 실제로 송금을 하려면 1시간, 수수료는 1만원에서 1만2천원 정도까지 든다. 이 경우 식당에서 6천원짜리 밥을 먹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면 1만8천원을 쓰는 셈이 된다. 비트코인 진영에선 2천100만개로 제한된 총 발행량을 장점으로 꼽지만, (실제 거래가 필요한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적고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 많이 보유한 사람일수록 내다 팔지 않는다."

비트코인같은 암호화폐 네트워크에 참여해 타인의 거래를 중개하거나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는 데 필요한 연산 자원을 제공하면 해당 화폐 일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사진=Pixaba

물론 라이트코인을 비롯해 숱한 암호화폐가 비트코인의 약점을 보완해 등장했다. 그 중 하나였던 이더리움은 '스마트계약(smart contract)'이라는 기능을 넣었다는 특징으로 비트코인 다음 가는 가치와 고유 생태계를 인정받는다. 이더리움의 실용성은 좀 나을까.

"100% 구현된 건 아니지만, 이더리움은 누구나 '토큰'이라는 보상을 기대하고 자발적으로 남의 서비스 제공에 참여하는 환경을 지향한다. 지향점이 비트코인보단 크다보니 (이더리움도) 가격이 많이 올랐다. 올해 2월엔 기업환경에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이더리움을 쓸 수 있을지 검증하는 'EEA'가 출범했는데, 이게 마치 기업에서 퍼블릭 블록체인을 쓰려는 시도처럼 알려져 또 가격이 급증했다."

■ 이더리움 스마트계약 기능의 현주소

표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스마트계약은 이더리움의 최대 특징으로 꼽히지만, 아직 성능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더리움으로 고양이를 사고 팔고 번식시키며 수집하는 게임 '크립토키티즈(CryptoKitties)'를 예로 들어 이 문제를 묘사했다.

"스마트계약은 아직 (일상환경을 위한 서비스로 구현하기에) 성능이 많이 떨어진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게임이 인기다. 누군가의 고양이를 2마리 사서 짝짓기를 시키면 새 고양이가 태어나는데 극히 낮은 확률로 희소한 특징을 지닌 고양이가 태어나면 엄청난 가치를 띠게 된다. 1억원에 팔리기도 한다. 이 게임 하나가 전체 이더리움 해시파워(처리성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고양이 수집게임 크립토키티즈 홈페이지. 게임은 고양이를 짝짓기해 사고 팔 수 있는 내용인데, 이더리움을 거래 화폐로 쓴다.

그는 여기까지 말한 뒤 키노트 청중을 상대로 크립토키티즈 게임을 알고 있다면 손을 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손을 든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설명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100명 중 1명도 모르는 그 세계만의 '킬러 앱' 하나로 처리성능 30%가 떨어진다. 이더리움 처리성능은 1970년대 컴퓨터 네트워크 수준이라 생각하면 된다. 이더리움 위에 앱을 올리고 전자적 거래를 할 수 있는 시대는 앞으로 20년 정도 걸릴 것 같다. 그럼에도 스마트계약이 주목받는 건, 당장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 단기간 규제영역 대체는 어려울 전망

가능성 수준인 스마트계약이 실용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험업 허가없이 사설보험사 운영이 가능해진다. 비행기 30분 이상 연착되면 2천달러 지급하는 자동계약 보험같은 것을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내일 서울 강수량이 얼마면 보험료 얼마를 지급하는 식으로도 가능하다. 두 당사자간 계약시 잔고에 잠금을 걸어 다른 용도로 인출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이걸로 누구나 사설보험, 은행, 결제대행(PG) 사업을 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단기간에 현존 보험, 외환, 선물 등 금융시장을 대체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사진=Pixabay]

하지만 이론적인 얘기다. 규제당국의 통제, 허가된 사업자의 견제를 고려하면 간단히 일반화되리라 보기 어렵다. 금융, 대출, 증권거래 분야가 전형적이다.

"스마트계약 사업은 반검열지향적 성격을 띤다. 선물옵션같이 규제당국이 사업을 수행할 주체의 진입 장벽을 높여놓은 분야를, 이더리움 스마트계약 환경에서 수행하려고 하면 (방심위 불법 유해정보 차단안내 페이지) 'warning.or.kr' 걸릴 거다. 대출도, P2P금융(대출)사업자는 나와 있지만, 탈중앙화하려고 하면 마찬가지다."

■이더리움 활용 블록체인서비스 실험·토큰발행 시도 활발

이런 측면에서, 스마트계약 기능을 활용한 의미있는 서비스가 나오는 건 아직 먼 얘기다. 다만 블록체인 자체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기회는 열려 있다. 그는 '스팀(steem)'을 소개했다. 스팀은 글 써서 추천 받으면 돈을 버는 블록체인 기반 블로그 서비스다.

"과거엔 블로그에 글을 쓰면 광고주 수익의 기여도에 따라 돈을 줬다. 스팀에는 광고가 하나도 없고 지난주 1주간 얼마나 추천을 받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돈을 발행해 블로거에게 준다. 발행된 화폐는 무가치하지만, 이걸로 코인을 거래할 수 있다. 팔면 달러가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기에 글을 올린다. 레딧을 제치고 미국 2위 블로그 플랫폼이 됐다. 글만 써서 세계 여행 다니는 분도 있다. 1개월 계획해 1년째 못 돌아오고 있다. 이 분 잔고 보면, 많이 인출했는데도 10만달러가 남았다."

암호화폐공개(ICO)는 블록체인 기반 신규 서비스나 사업계획을 공개하고 참가자에게 토큰을 발행하는 자금조달 방식이다. [사진=Pixabay]

그에 따르면 스팀에서 신규발행된 토큰은 한국에서 금융당국의 통제대상이 된 암호화폐공개(ICO)에 활발히 참여하게 하는 촉매 역할도 한다. 외부 참여나 구인을 위해 다양한 토큰을 보상으로 내건 ICO 프로젝트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기꺼이 자기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인터넷사업자의 서비스는 보상을 원화(실제 화폐)로 줘야 하니까 부담이 컸다. 블록체인에선 내가 '표 코인'같은 토큰을 만들어서, 이게 가치가 생길 거라고 주장하고, 사람들이 그걸 믿으면 사 주는 것이다. ICO 프로젝트 대부분에 전세계 스팀 가입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월급을 돈이 아니라 프로젝트로 신규 발행할 토큰으로 주는 방식이다. 그야말로 '봉이김선달'이다. '표 코인 줄게, 주 40시간 일해줘' 하면 전세계 수많은 사람이 지원한다. 이더(이더리움 네트워크의 암호화폐)를 주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

■"중개자 있는 기존서비스 대체 시도, 대부분 망한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 수준과 이를 활용한 실용적 서비스 구현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블록체인의 현재 상황은 (초창기 인터넷 역사에 빗대어 보면) 넷스케이프 개발 전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다. 로직은 있는데 데이터베이스(DB)나 파일 스토리지는 없고 그런 상황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에는 암호화폐가 붙어 있어, 생태계 참여 개발자에게 보상을 주기가 좀 수월하다. 경제적 보상이 있으니 인터넷 때보다 (외부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서비스 생태계의 발전이) 조금 빠르지 않을까 추측한다."

[사진=Pixabay]

그는 이미 성공을 거둔 인터넷서비스 영역이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에 위협받는 일을 보긴 어려울 것이라 내다봤다.

"멜론처럼 청취자와 저작권자를 연결해 스트리밍할 수 있다. 그런데 기존 서비스에서 멜론과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하는 역할이 전혀 없지 않다. 이런 (중개자의) 헤게모니가 강한 분야에서는 천천히 바뀔 거다. 인터넷에서 이미 잘 되는 서비스가 블록체인으로 잘 될거라 보진 않는다. 수 천 개가 있는데 대부분 망할 거다."

그는 여러 실험적인 서비스 가운데 사용자 다수의 인기를 끄는 '킬러 앱'은 4~5년쯤 뒤 등장할 것이라 내다봤다. 앞서 언급한대로 기존 서비스의 대체보단,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불법유해정보 안내페이지를 띄울만큼 '불법성이 짙은 서비스'가 성공할 공산이 크다고 언급했다.

■"처리 규모·속도 개선과 '오라클 문제' 해결이 숙제"

표 대표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앱과 스마트계약을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기술적으로 개선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우선 성능을 개선하려면 거래 정보가 담기는 블록 사이즈를 키우고, 그 생성 시간을 줄이고, 그 정보 검증에 모두가 아닌 일부만 참여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샤딩, 플라즈마, 라이덴 네트워크 등 여러 대안 기술, 스웜 및 IPFS 등 블록체인을 위한 파일시스템, 대용량 상업용DB를 개발하는 '빅체인DB' 개발 등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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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물류 등 물리적 현실의 조건으로 동작하는 스마트계약을 구현하려면 '오라클 문제(The Oracle Problem)'를 해결해야 한다. 오라클 문제는 스마트계약의 조건이 되는 정보를 블록체인 외부에서 참조할 때 탈중앙화 앱의 이점이 상쇄되는 문제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날씨에 따라 보험금을 달리 매겨야 하는 물류 업종의 스마트계약을 구현했을 때, 특정 지역의 날씨 정보 제공자가 한 곳 뿐이라면 그 정보나 정보 참조 과정을 조작하는 걸로 계약당사자간의 이해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 물론 톰슨로이터원, 오라클라이즈, 스마트컨트랙트닷컴 등 오라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