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차별이 가져올 우리의 미래

[백기자의 e知톡] 인터넷 ‘부익부 빈익빈’ 우려

인터넷입력 :2017/11/26 10:04

‘애니팡’(선데이토즈), ‘드래곤플라이트’(넥스트플로어), ‘아이러브 커피’(파티게임즈) 등은 1천만 다운로드 이상의 성공 신화를 기록한 모바일 게임입니다.

선데이토즈와 파티게임즈는 한해 수백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상장에 성공했고, 넥스트플로어는 라인게임즈에 인수되며 업계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카카오톡 게임 플랫폼 도움이 컸지만, 사용자들을 반하게 할 뚜렷한 게임성만 있다면 작은 개발사도 중견 개발사로 발돋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작품들입니다.

배달음식 중개앱 ‘배달의민족’, 모바일 송금앱 ‘토스’ 등도 편의성을 앞세워 대중적인 서비스로 발돋움한 국내 대표 앱 중 하나입니다. 배달의민족은 2천만 다운로드 이상을 기록했고, 토스는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스타트업임에도 유망한 핀테크 업체로 떠올랐습니다.

모두 평등한 조건에서 통신망을 이용, 사용자들에게 안정적인 인터넷 사용 환경을 제공한 것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애니팡 신화로 코스닥에 상장한 선데이토즈

그런데 최근 미국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하는 내용의 최종안을 공개하고, 다음 달 14일 최종 표결에 부치기로 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FCC 이원 5명 중 3명이 공화당 인사여서 무난한 통과가 전망됩니다.[☞관련기사: 여론 무시한 美FCC…"통신사, P2P 차단 합법"]

망중립성 원칙이란 네트워크를 가진 통신사(ISP)들이 모든 콘텐츠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취급을 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 원칙에 따라 트래픽 유발 등을 이유로 특정 사업자에게 추가로 요금을 물리거나, 서비스를 차단하면 안 됩니다.

이런 망중립성 원칙이 폐기되면 ISP들은 더 많은 비용을 내는 기업이나 서비스에 더 빠른 인터넷 속도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조건으로 이용 가능했던 인터넷 세상도 돈에 따라 차별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돈 없는 영세 개발사들에게는 인터넷 서비스 속도를 저하시킬 우려도 있습니다.

ISP들은 사용자에게 통신비를 받고, 인터넷 사업자에게는 더 빠른 속도를 보장하는 대가로 두둑한 회선료를 챙길 수 있습니다.

지난 2014년 망중립성 원칙 도입 촉구 집회 장면. (사진=씨넷)

기가 인터넷이 본격 구현되는 5G 시대가 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극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용량 동영상 데이터들이 빠른 속도로 오가게 되면, 사용자들은 더 많은 돈을 ISP에게 내는(속도가 빠른) 서비스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운로드 속도도 빠르고 끊김 없는 서비스와, 그렇지 않은 서비스 중 사용자들의 선택이 어느 쪽에 쏠릴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만약 훗날 A 통신사가 ‘리니지 무한 데이터 요금제’를 내고, B 통신사가 ‘유튜브 무한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한다면 국내 인터넷 시장과 지형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리니지와 유튜브에 대적할 새로운 서비스들이 등장해 건전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당장에야 사용자들은 리니지, 유튜브를 사용하면서 데이터 무료 혜택을 받겠지만 해당 서비스에 귀속되는 불편과 불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튜브에 더 많은 광고가 뜨고, 유료 콘텐츠들이 늘어도 대체할 서비스가 없다면 사용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동영상 서비스는 유튜브만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로레이팅 사례.

이미 통신사들은 ‘제로레이팅’(스폰서 요금제)이라고 해서 망중립성 원칙을 훼손 시킬 수 있는 마케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제로레이팅이란 인터넷(특히 데이터 상한이 있는 모바일의 경우) 이용자에 대해 특정 콘텐츠 사용 시 유발되는 데이터의 대가를 부과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SK텔레콤은 휴대폰 매장 근처에서 ‘포켓몬고’ 게임을 이용할 경우 데이터 사용료를 면제해줬고, KT는 특정 요금제 가입 고객에게 음원 서비스 ‘지니’의 데이터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또 SK텔레콤은 자회사 SK플래닛의 오픈마켓 11번가 데이터 사용료를 무료로 해주기도 했습니다.

당장에야 사용자들은 데이터 비용을 아껴 좋겠지만, 결국 그 화살은 소비자들을 향해 되돌아 오게 돼 있습니다. 돈 많은 대기업들의 독과점은 더욱 심해지고, 경쟁은 멈추고, 소비자 후생까지 떨어지는 악순환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시장을 독점한 뒤 사용자에게 요금을 전가하거나, 광고 노출 시간을 늘리는 등 언젠가 그 대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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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넷기업협회 최성진 사무총장.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최성진 사무총장은 “미국 망중립성 원칙이 폐기되더라도 당장 국내에 미칠 영향이 크지는 않겠지만, 통신사들이 미국의 사례를 들어 망 차별을 합리화할 수 있다”면서 “누군가 먼저 OO요금제를 시작하면 국내 큰 인터넷 사업자들도 이를 따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망중립성 폐기...아직은 바다 건너 얘기지만, 지금부터 사용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