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도 지갑여는 美 '넷플릭스 세대'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트럼프 효과도 함께 작용

데스크 칼럼입력 :2017/10/25 17:05    수정: 2017/10/26 17:3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아날로그의 반격’이란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저자인 데이비드 색스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고풍스런 아날로그 상품들이 각광받는 현상을 잘 조명했다. LP, 종이, 필름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요즘 미국 밀레니얼 세대들 사이에서도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종이신문을 비롯한 전통 뉴스 매체를 구독하는 젊은 세대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단 소식이다.

이런 현상을 조명한 것은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다. 폴리티코는 최근 ‘젊은 구독자들이 올드 미디어로 몰려가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의 뉴스 유료 구독 비율이 크게 늘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 폴리티코 기사 바로 가기)

(사진=폴리티코)

그 기사에 따르면 뉴요커 같은 잡지는 18~34세 구독자 수가 최근 1년 새 106% 증가한 것으로 나와 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다른 전통 매체들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

■ 뉴요커, 1년 전보다 구독자 109% 늘어

폴리티코는 크게 두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첫째. 유료 구독 경험.

이미 넷플릭스, 훌루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면서 상대적으로 유료화에 대한 학습이 됐기 때문이다. 신문 구독에 새롭게 돈을 지불하는 데 대한 심리적 장벽이 완화됐단 얘기다.

둘째. 트럼프 효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젊은이들로 하여금 뉴스를 구독하게 만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진=씨넷)

이미 미국에선 ‘트럼프 효과(Trump bump)’란 말이 폭넓게 쓰이고 있다. 미디어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욕을 먹으면 오히려 구독률이나 시청률이 올라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폴리티코는 이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로이터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8~24세 미국 청년들의 온라인 유료 구독 비율이 1년 사이에 크게 증가했다. 지난 해 조사 때 4%에 불과했던 것이 올 들어선 18%까지 늘어났다.

바로 위 계층인 25~34세 연령층 역시 8%였던 유료 구독 비율이 20%까지 증가했다.

로이터연구소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젊은 층들이 저널리즘을 지키기 위해 유료 구독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 결국 뉴스는 브랜드이자 가치다

이런 내용만도 충분히 흥미롭다. 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뉴스는 일종의 브랜드다"는 부분에 더 눈길이 갔다. 동조하는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란 설명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어떤 콘텐츠를 공유할 때면 ‘평판’과 ‘이미지’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 웬만하면 수준 낮은 것들은 잘 공유하지 않는다. 공유하는 콘텐츠가 곧 외부에 보여주는 내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겉표지가 낡은 뉴요커나 애틀랜틱 같은 진보적인 잡지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고 폴리티코 기사는 분석하고 있다. 많이 읽어서 겉표지가 너덜너덜해진 뉴요커를 들고 다니는 행위 자체가 트럼프에 대한 (소박한) 저항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단 얘기다.

그렇다면 미국 뉴스시장에 불고 있는 이런 바람은 일시적인 것일까? ‘트럼프 효과’가 사라지면 걷혀버릴 거품에 불과한 걸까?

폴리티코는 “그렇진 않다”는 희망어린 진단을 내놓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디지털 서비스들이 이미 유료 구독에 대한 충분한 학습을 시켜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퀄리티 콘텐츠’에 대해선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는 분석이다.

■ 미국발 뉴스 르네상스, 계속될 수 있을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해석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저 기사의 ‘올드미디어’ 란 단어를 ‘뉴스’ 로 바꿔서 읽었다. 그러면서 우리 상황과 비교해봤다.

지난 해말 우리는 '트럼프 효과' 못지 않은 언론 르네상스를 경험했다. 진보, 보수 매체가 서로 경쟁적으로 특종을 쏟아내면서 모처럼 언론들이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반짝 하는 듯 했던 '뉴스의 부활'이 시들해져버렸다. 일시적인 유행에 기댄 르네상스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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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디지털 콘텐츠를 구독한 학습 효과가 뉴스 유료 구독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에 자그마한 희망을 걸어본다.

그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퀄리티 콘텐츠’란 또 다른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결국 중요한 건 '기꺼이 지갑을 열만한 가치'를 주는 것일 테니까. 물론 그 부분은 언론 비즈니스 종사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