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한국 스타트업 매력에 푹 빠지다

"자유로운 업무·도전정신 장점…수직문화 생소"

인터넷입력 :2017/10/04 10:00    수정: 2017/10/07 16:14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란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처음 한국을 찾은 외국 청년들의 눈에 비친 한국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내면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인 직원들의 눈에 비친 한국 스타트업은 어떤 모습일까?

그 의문을 풀기 위해 한국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을 직접 만나봤다.

인터뷰 대상은 대만, 러시아, 영국, 요르단 출신 스타트업 직원 4명. 토스랩 디자이너인 이준홍 씨를 비롯해 투믹스의 정명방, 코노랩스의 파리드, 그리고 스마트포스팅에 근무하는 알료나 등 네 명이었다.

기자는 지난 달 21일 선릉역 근처 카페에서 이들과 만나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한국 스타트업의 장점으로 '실리콘밸리 뺨칠 정도로 강한 도전정신'을 꼽았다. 반면 '여전히 수직적인 분위기가 남아있는 기업 문화'는 아직도 생소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한국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 네 명이 한국에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왼쪽부터 이준홍 씨, 파리드 씨, 알료나 씨, 정명방 씨.

■"韓 스타트업, 기업 문화·도전 정신이 장점"

대기업에서 근무해도 이상하지 않을 스펙을 보유한 이들이 한국 '스타트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수평적인 기업 문화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준홍 씨는 "토스랩의 경우 외국 경험이 있는 젊은 직원이 많아 수평적인 문화가 많이 정착돼 있다"며 "대기업의 수직적인 기업 문화를 겪은 사람들은 스타트업에 와서도 비슷한 문화를 만들어내기 쉬운데, 사내 직원들의 나이가 많아봐야 30대 중반 정도라 위계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구성원들끼리 편하게 느끼는 분위기 덕에 스타트업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명방 씨는 "스타트업에 대해 회사 상황이 불안하다던지, 군대식 문화 등이 존재한다던지 등의 걱정도 했는데 현재 다니는 회사는 그런 것 없이 누구나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라며 "존대말이 없는 대만에서 온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알료나 씨는 "스타트업은 비교적 규모가 작다 보니 대표를 포함해 구성원끼리 친근한 편이고, 서로 교류가 많다"며 "대기업에서 일할 때는 스스로가 하나의 부품처럼 느껴졌는데, 스타트업에서는 한 명 한 명이 회사의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와의 경쟁도 불사한다는 도전 정신 또한 한국 스타트업의 매력으로 꼽혔다.

파리드 씨는 "요르단에서는 미국 스타트업의 수준을 따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며 "스타트업 창업 문화가 시작된지 얼마 안 된 요르단과 달리 한국 스타트업은 제2의 페이스북을 만들겠다는 높은 목표 의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단점도 언급됐다. 외국인에게는 아직도 위계적으로 느껴지는 일부 관행이 그것.

파리드 씨는 "한국 스타트업은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운영을 고수하고 있지만 팀을 이끄는 리더와 대표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가끔 적응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외국인 직원과 함께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의사소통의 문제보다는 한국 회사 문화에 대한 이해도 문제가 크다. 야근이나, 대표가 퇴근한 이후에 퇴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한다는 뜻이다.

파리드 씨 또한 전 직장이었던 한국 스타트업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국어 수업 때문에 대표보다 먼저 퇴근할 때 미안해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는 그는 내국인 직원도 불만을 표하는 부분인 만큼 개선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알료나씨는 "이전 회사에 근무할 때까지는 그와 비슷한 선입견이 있었다"며 "회사 출근 첫날에 언제 퇴근해야 할지 눈치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다소 딱딱한 면접 절차도 외국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꼽혔다. 정명방 씨는 "대만에서는 면접 과정 때 사진 제출도 강요하지 않고, 대개 이력서와 자소서만 준비하라고 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취업 비자·주거 문제 해결 어려웠다"

현재 직장생활에 만족하며 근무하고 있는 이들 4명에게도 시행착오가 존재했다. 바로 높은 집값과 까다로운 취업 비자다.

정명방 씨는 "대만에서는 두 세달 치 월세 정도의 금액만 준비하면 됐던 주택 보증금이 몇천만원 수준이라 매우 부담스러웠다"며 "외국인 친구의 경우 집 주인과 마찰이 생겨 보증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알료나 씨도 "보증금을 마련해야 했는데, 한국 은행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주거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같은 의견을 냈다.

또 취업 비자에 대해 "서류 상에 아주 작은 실수라도 있으면 반려가 되는데, 언어도 미숙하고, 국가 간에 서류가 오고 가다 보니 절차도 복잡해서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외국인이라 겪었던 해프닝도 존재했다. 이준홍 씨는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 결제 수단을 카드나 현금 중 어떤 것으로 할지 물어보는데 한국어가 서툴러서 '돈 줄게요'라고만 얘기하기도 했다"며 "당연히 돈은 줘야 한다는 대답을 듣는 등 오해를 빚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알료나 씨는 "한국에서는 260mm 사이즈의 여성 신발을 찾기 어려워 고생했다"면서도 "옷 같은 경우엔 구매 후 바로 수선을 해줘 편리했다"고 언급했다.

알료나 씨는 인터뷰를 하는 '특별한 날'이라며 개량 한복을 입고 왔다.

■ 인터뷰를 마치며

외국인들과 한국 스타트업을 소재로 나눈 대화는 즐거웠다. 국적, 직장, 직업이 다른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이면이 보였다. 현장을 취재하면서도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경직된 직장을 탈피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서겠다는 꿈을 위해 달리는 집단. 그러나 아직까진 보수적인 직장 문화를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한편 외국인으로서 한국 직장 생활 시작 이후 겪은 해프닝과, 한국만의 이색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공감대를 찾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네 명의 자세한 이력은 다음과 같다.

이준홍 : 업무용 메신저 '잔디' 개발사 토스랩에서 UI·UX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영국 시민권을 갖고 공부를 마친 후 일하다 보니 디자인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관점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스랩에서는 동양에서의 근무 방식과 앱 사용 행태를 배울 수 있다 생각돼 입사를 택하게 됐다.

정명방 : 대만인. 웹툰 플랫폼 투믹스 마케팅팀 소속이다. 이전에는 일본에서 회사를 다녔다. 격식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 문화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 다음 근무지를 고민하다 한국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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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 인공지능(AI) 비서 스타트업 코노랩스에서 개발자로 근무 중이다. 요르단에서 스타트업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있다가 나온 이후, 이전에 함께 프로젝트를 하다가 알게 된 한국 사람에게 입사 제의를 받았다.

알료나 : 인플루언서 마켓팅 플랫폼 스마트포스팅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팀에 있다. 이전에 있던 회사 사무실 아래층에 한국 회사 사람들이 있어 한국인을 처음 보게 됐다. 모국인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존대말·반말을 구분하는 등 예의를 중시하는 문법도 있고, 사람들이 친절해 여러모로 흥미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 한국어를 서울대 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