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퀄컴 '특허소진' 공방…칩사업 근간 흔드나

'칩셋 판매+특허료 징수' 정당성 놓고 법정 격돌

홈&모바일입력 :2017/06/22 13:40    수정: 2017/07/07 09:1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애플과 퀄컴이 한치 양보없는 특허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특허소진이론’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허소진이론이란 특허 제품이 정당하게 판매된 이후에는 사용이나 재판매에 대해선 특허 침해 주장을 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미국에선 지난 5월 연방대법원이 ‘특허소진이론’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IT업계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퀄컴과 특허 라이선스 공방 중인 애플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샌디에이고 지역법원에 추가 제출한 소장을 통해 ‘특허소진이론’을 들고 나와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선 칩셋 판매와 라이선스 비용을 함께 받고 있는 퀄컴의 비즈니스 모델이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분량 170쪽에 이르는 이번 소장에서 애플이 특허소진이론만 주장한 것은 아니다. 필수표준특허에 대한 프랜드(FRAND) 규정 위반이나 퀄컴 특허 무효 같은 이슈들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특허공방을 벌이고 있는 애플과 퀄컴이 이번엔 특허소진이론 적용 범위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사진=씨넷)

하지만 시장 전체 관점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역시 특허소진이론이다.

■ 애플 "칩 판매했으면 별도 라이선스 비용 받지 말아야"

애플 주장을 요약하면 간단하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퀄컴이 칩셋과 무선표준 관련 기술을 연계함으로써 부당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에 따르면 아이폰 외주제작업체들은 퀄컴이 무선 모뎀 공급을 중단할까 두려워 칩셋에 대한 과도한 라이선스 요구에 응했다.

이 대목에서 애플은 ‘특허소진이론’을 들고 나왔다. 퀄컴이 아이폰 제작업체들에게 칩셋 판매 대금과 라이선스 비용을 함께 받는 것은 이중 이득을 취한 행위란 게 애플 주장이다.

애플은 “퀄컴이 스마트폰 제조업체에게 칩을 판매했을 경우엔 별도로 라이선스 비용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지난 5월 렉스마크 판결 취지와 ‘한 특허에 대해선 한 차례 보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단 주장이다.

애플은 이번에 수정된 소장에서 “연방대법원의 '렉스마크 대 임프레션' 판결에 따르면 퀄컴이 칩셋 판매와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동시에 하는 것은 불법적인 관행”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이 묘사한 퀄컴의 비즈니스 모델. (사진=애플 법원 제출 문건)

'렉스마크 vs임프레션 사건'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5월말 다룬 소송이다. 렉스마크는 프린터 카트리지 생산 전문업체이며 임프레션은 재생 전문업체다. 렉스마크 제소로 시작된 이 소송에서 대법원은 “특허권자가 판매하는 순간 그 제품은 더 이상 독점 영역 안에 있지 않게 된다”면서 “그 순간부터 구매자의 개인적 재산으로 바뀌게 된다”고 판결했다.

일단 판매하는 순간 그 제품에 대해선 더 이상 독점적 특허권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특허 침해 주장을 할 수도 없게 된다. 이것이 '특허소진이론'의 기본 논리다.

연방대법원은 특허법의 근본 취지를 들어 이 같은 판결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특허법이 발명자에게 독점적 권리를 부여해준 것은 재정적 보상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과학 기술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특허 제품을 판매하는 순간 특허법이 보장해준 재정적인 혜택을 충분히 누린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애플은 대법원 판결 취지를 들어 퀄컴이 칩셋 판매와 라이선스 비용 징수를 병행한 것은 '특허소진이론'을 엄격하게 적용한 연방대법원 판결 취지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 퀄컴 "우리 특허는 무선 시스템 전체와 관련돼 있다"

물론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퀄컴은 어불성설이란 반응이다. 애플 측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사용된 퀄컴 기술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 로젠버그 퀄컴 법률고문은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과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으로 13만 개에 이르는 퀄컴 특허는 단일 모뎀 칩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퀄컴 특허는 업로드나 다운로드 속도 향상을 비롯해 GPS 내비게이션, 앱스토어 작동, 전력관리, 배터리 효율 등 전체 무선 네트워크를 위한 ‘시스템’ 차원의 기술이란 고 로젠버그 고문이 강조했다.

따라서 퀄컴은 아이폰 외주 제작업체들에게 대당 일정액 씩 특허 라이선스 비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애플 주장대로 칩셋을 판매하는 순간 관련 특허가 소진될 순 있다. 하지만 퀄컴 특허는 단순히 칩셋에만 관련된 게 아니라 무선 기술 전반을 커버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진되지 않은 특허권에 대해선 여전히 라이선스를 받는 게 맞다는 게 퀄컴 주장이다. 로젠버그는 아예 “퀄컴의 혁신들은 모든 아이폰의 심장이다”고 주장했다.

표준특허와 시장 독점적 지위 남용으로 시작됐던 애플과 퀄컴 간 특허 공방은 대법원 판결을 기점으로 ‘특허소진론’이란 또 다른 쟁점을 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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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애플이 최초 제기한 소장에는 ‘특허소진’이란 단어가 26번 들어갔다. 하지만 수정된 소장에선 ‘특허소진’이 112회로 늘어났다.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애플이 ‘특허소진’ 쪽에 상당한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특허소진이론을 둘러싼 공방은 두 회사 뿐 아니라 스마트폰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