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C와 방통위의 '같은 듯 달랐던 인사'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자진사퇴 vs 알박기 논란

데스크 칼럼입력 :2017/06/07 15:54    수정: 2017/06/07 16:1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지난 해 연말 미국 정가에선 연방통신위원회(FCC)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권을 내놓게 된 민주당 쪽 추천 위원들의 거취 때문이었다.

5인으로 구성된 미국 FCC는 매년 한 명씩 임기가 만료된다. 다만 상원이 승인할 경우 연임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 해 말엔 민주당 추천을 받은 로젠워슬 위원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8년만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로젠워슬 뿐 아니라 역시 민주당 몫인 톰 휠러 당시 위원장 거취까지 함께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정권이 바뀔 경우 FCC 위원장은 자리를 내놓는 것이 관행이다. 물론 위원장에서 물러나더라도 위원으로 계속 활동할 수는 있다. 그 부분 때문에 양측이 공방을 벌였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명을 받은 톰 휠러는 이론적으로 2018년까지 FCC 위원으로 재직할 수 있었다.

5명 체제인 미국 FCC는 현재 두 자리가 공석이다. 아짓 파이 위원장(가운데)과 마이클 오라일리(오른쪽) 위원이 공화당 추천을 받았으며, 미뇽 클리번 위원(왼쪽)이 민주당 몫이다. (사진=FCC)

톰 휠러 당시 위원장은 상원에 로젠워슬 위원의 연임을 승인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물러나겠다는 얘기였다. 여차하면 ‘알박기’로 버틸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반면 공화당은 완강했다. 로젠워슬 연임 문제는 톰 휠러가 사임한 뒤 논할 의제라고 맞섰다.

당시 민주, 공화 양당이 팽팽해 맞선 건 FCC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였다.

민주당 입장에선 톰 휠러가 사임하기 전에 로젠워슬 FCC 위원 연임을 확정해야만 여야 동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 FCC 위원을 지명한 뒤 상원 인준을 통과할 때까지는 2대2로 숫적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차기 집권당인 공화당은 이런 구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출범과 동시에 FCC를 손에 넣기 위해선 톰 휠러 위원장 뿐 아니라 로젠워슬 위원까지 그만둬야 했다.

양측은 한 동안 팽팽하게 맞섰다. 한 때 톰 휠러가 끝까지 버틸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결국 지난 해 12월 중순 톰 휠러는 트럼프 취임에 맞춰 사임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당리당략 못지않게 여당에 한 석 더 배정한 FCC 설립 취지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FCC를 모델로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역시 10년 만의 정권이 교체 때문이었다.

다만 해결 방법은 조금 달랐다. 물러나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기 만료 직전 인사를 단행하면서 ‘알박기 논란’에 휘말렸다. 새 정부는 김용수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미래부 2차관으로 발탁하는 것으로 알박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상이한 이념과 정책 기조를 갖고 있는 정당이 번갈아 정권을 잡는 건 민주주의의 오랜 전통이다. 건전한 경쟁과 견제를 통해 국가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더 없이 좋은 방식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선 길어도 10년 남짓에 한번씩 정권이 바뀐다.

방송통신위원회

정권 교체 과정에선 서로 자기 당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엄청난 두뇌 싸움이 벌어진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산지라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뇌 싸움을 하더라도 큰 틀과 취지까지 훼손해선 안 된다. 특히 방통위처럼 여야가 균형을 맞추되 여당에 좀 더 힘을 실어주는 단체 같은 경우엔 그 취지에 맞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정권 말에 단행된 ‘알박기 인사’를 비판한 건 그 때문이다.

물론 이번 미래부 2차관 인사는 단순히 그런 관점으로만 접근할 수는 없다. 김용수 신임 차관은 방통위원으로 발령나기 전까지 미래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을 역임했다. 본인의 뜻과 무관한 잠깐의 ‘외도’만 빼고 보면 사실상 내부 승진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 없는 인사다.

‘알박기 인사’를 단행한 쪽이나, 그걸 다시 원위치하는 쪽이나 살짝 스타일을 구긴건 분명하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론 서로 정권을 주고 받을 때도 좀 더 깔끔한 인사를 단행했으면 좋겠다.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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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FCC는 현재 3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민주당 몫인 톰 휠러 전 위원장과 제시카 로젠워슬이 물러난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 몫은 미뇽 클리번 위원만 남아 있다. 반면 공화당 쪽은 위원에서 승격된 아짓 파이 위원장과 마이클 오라일리 위원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 민주, 공화 양당에서 한 명씩 지명한 뒤 상원 인준 절차를 거쳐야 5인 체제가 완성된다.

2. 미국 대법원에도 지난 해 변수가 생겼다. 보수파 수장격인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때문이다. 종신 재직권을 갖고 있는 미국 대법관 지명 문제는 특히 민감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오바마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중도파로 분류된 메릭 갈랜드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장을 후임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8인으로 유지되던 미국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닐 고서치를 대법관으로 지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