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 경쟁촉진으로 풀어라

[새 정부, 이것만은 바꾸자⑤]

방송/통신입력 :2017/05/26 08:40    수정: 2017/05/31 14:29

“역대 정권의 가계통신비 경감 정책이 체감됐던 게 있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없었다는 답변이 64.7%에 달했다. 후보들이 내놓는 가계통신비 인하 공약은 과거 실패한 정권들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매우 크다.”

“전체 이동통신 사용량에서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69.2%였던 반면, 2015년에는 37.1%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부가서비스 이용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가계통신비 개념 자체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지난달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가계통신비 부담 절감 8대 정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 시각이 우세하다.

‘통신 기본료 폐지’로 대표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가계통신비 공약은 시장의 경제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경쟁정책에서 벗어나 정부가 언제든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규제 논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며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새 정부의 규제정책 방향과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일괄적인 통신 기본료 폐지가 실제 소비자의 편익으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 1천원의 통신 기본료 인하, 박근혜 정부 때 가입비의 단계적 폐지가 추진됐지만 가계통신비가 인하됐다고 체감하는 소비자는 적다. 앞서 언급한 시민단체 설문조사에서 64.7%에 이르는 소비자들이 통신비 절감을 체감하지 못했다는 응답도 이런 연유다.

가계통신비

■ “가계통신비 개념부터 바꿔야”

우선, 가계통신비 인하를 논의하기에 앞서 스마트폰 대중화와 함께 통신소비의 패턴이 변화한 만큼 가계통신비 자체에 대한 개념부터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의 통신비는 2G 시절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등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흔히 가계통신비라고 하면 통신비라고 인식하는 이들이 많지만 정확하게는 ‘통신비+단말기 할부금’을 칭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통한 TV시청이나 음악 감상, 모바일 앱 구매 등 부가서비스도 포함돼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스마트폰의 보급이 시작된 초기에는 고가의 단말기 할부금액 역시 통신비라고 오해하는 소비자들이 많아 이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현재 통신요금 고지서에는 통신비와 단말 할부금이 알기 쉽게 구분돼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단말 할부금이 포함된 통신요금 뿐만 아니라 여기에 포함돼 있는 모바일 결제나 앱 구매, 음악 감상, TV시청, VOD 구매 등의 비용을 통신비라고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제기구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계통신비 분류체계 개편안

김용재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통신정책그룹장은 “통신비는 단순히 비용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비용과 편익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며 “가계통신비 개념을 재정립하는 통계체계 개선이 이뤄져야 하고 콘텐츠 이용량이나 트래픽 추이 등을 통해 객관적 측정 가능 지표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 초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은 “한 통신사로부터 서비스별 요금 비중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통신요금에서 순수하게 차지하는 통신비는 55% 수준이며 나머지는 소액결제 등 부가서비스가 24%, 단말 할부금이 21.2%를 차지했다”며 “구체적인 세부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공개된 비중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가계통신비 개념 자체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통계청과 미래창조과학부는 UN과 OECD 같은 국제기구가 새롭게 가계통신비에 대한 개념을 정비하는 코이캅(COICOP) 분류체계 개편에 나서면서 이에 맞춘 제도 개선을 추진 중에 있다.

즉, 전 세계적으로 가계통신비에 대한 재정립이 이뤄지는 시점에서 이 중 절반에만 해당하는 통신비를 마치 전체 가계통신비인 것처럼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 “알뜰폰 생태계 붕괴 우려”

대통령이 가계통신비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기본료 1만1천원 일괄 인하는 소비자가 체감하는 통신비 인하보다 이로 인해 저렴하게 통신서비스를 사용하는 알뜰폰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알뜰폰 사업자들이 데이터 도매대가 인하 등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정책으로 인해 음성 위주의 사업에서 데이터 서비스로 전환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 고객층은 음성 이용자다. 월 음성이용량이 적은 이용자층이 기본료가 없거나 낮은 알뜰폰 서비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미래부에 따르면, 3월말 기준으로 전체 알뜰폰 가입자 중 4G LTE 가입자 비중은 24%에 불과하고, 선후불 가입자 중 선불 가입자도 아직까지 40%에 이른다.

지난 3월 전체 알뜰폰 가입자가 700만명을 넘어서고 전체 이동통신시장에서 약 11%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취약한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이통사가 기본료를 폐지할 경우 알뜰폰 이용자 중 상당수는 사후(AS) 서비스나 고객관리가 나은 기존 이통사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여전히 대부분의 알뜰폰 사업자가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이 같은 상황은 알뜰폰 시장의 붕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체 알뜰폰 사업자의 영업이익 손실이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31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매출 대비 영업손실도 4%에 이른다”며 “그렇지 않아도 최근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주 고객층인 음성가입자마저 이탈하면 생존이 어렵다”고 말했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통신사의 기본료 매출액이 SK텔레콤 6천억원, KT 1천500억원, LG유플러스 1천억원 규모로 적지 않은 수준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기본료 폐지 가능성은 낮다”면서 “기본료 폐지는 알뜰폰 산업 붕괴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경쟁정책으로 4차 산업혁명 대비”

4G LTE 서비스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2년 1월 우리나라 통신서비스 이용자의 1인당 무선트래픽은 470MB였다. 하지만 이는 5년 만에 9.2배 증가해 4천363MB(1월 기준)로 크게 증가했다.

스마트폰과 무선 초고속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데이터 이용량이 증가한 것이다. 통신이용 패턴도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누릴 수 있는 편익도 놀랄 만큼 증가했다.

고속의 무선 통신망은 그동안 유선에서만 가능했던 정보검색이나 쇼핑, 뱅킹, TV시청, VOD 감상 등이 가능해진 것이다. 향후 5G가 상용화 될 경우 현재는 상상하지 못할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등 더욱 고도화된 서비스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시대 변화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여전히 2G, 3G 시절 때와 마찬가지로 천편일률적인 통신비 인하로 국민들에게 생색내듯 정책 집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더욱이 경쟁 활성화로 건전한 통신요금 인하를 꾀하는 방법이 아니라 인위적 개입을 통한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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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통신기본료 폐지와 같은 정부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민간사업자를 압박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세련된 경쟁 정책으로 자율적 요금 인하를 꾀해야 한다.

통신업계 한 전문가는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인프라인 통신 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이 균형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며 “통신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가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보다는 경쟁 촉진과 자율적 요금인하를 유도하고 이용자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