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부서에 대한 세가지 오해

[임백준 칼럼] 기업 HR의 역할

전문가 칼럼입력 :2017/05/22 10:31

임백준 baekjun.lim@gmail.com

한국의 여러 기업에서 인사(HR) 업무를 수행하는 임직원 60여명이 뉴욕에 연수를 왔다. 대기업, 중소기업, 공기업에서 병무청에 이르기까지 배경이 다양했다. 애틀랜타에서 4일 간 진행되는 컨퍼런스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뉴욕에 들른 것이라고 한다. 뉴욕의 첫 일정은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금요일 아침에 만나 2시간 동안 실리콘밸리와 실리콘앨리의 문화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기업에서 HR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강연을 마치고 Q&A 시간이 되자 질문이 쏟아졌다. 뉴욕의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역할, 인사 평가의 구체적인 방법, 문화적 차이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개발자를 상정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개발자를 포함하는 주제였기에 서로 할 말이 많았다. 한국의 HR 담당자들과 이런 대화를 진행하면서 평소에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인사 업무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는데, 그 내용을 설명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HR에 대해서 흔히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오해를 반박하는 형식이다.

1. HR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HR은 전문적인 학습과 훈련이 필요한 고도의 전문직이다. HR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과 심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며, 정치나 경제 같은 인문학적 교양은 물론 기술적인 능력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실력을 요구한다. 회사 전체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해야 하고, 각 부서의 역할을 알아야 하며, 경영진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밑바닥 민심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회사 직원들의 심리를 읽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다. 다른 사람의 고충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공감능력, 감추거나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대화하는 진정성, 상대방을 회사의 부품이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존중하는 예의가 필수다. HR은 경영자로부터 위임받은 인사권을 손에 쥐고 직원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권력기관이 아니라 직원들이 안심하고 등을 기댈 수 있는 커다란 나무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회사의 사정상 경영진이나 시니어 매니저가 HR의 역할을 병행하는 경우가 있다. 자금 사정이 빠듯한 스타트업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임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상황이 장기화 되면 직원들의 사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경영자나 시니어 매니저가 하는 일과 HR 전문가가 수행하는 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인사 업무는 단순히 직원들의 복지와 월급을 처리하는 행정적 업무를 의미하는게 아니다. 행정적인 업무처리는 HR이 하는 일의 10%도 되지 않는게 정상이다. 그런 일은 누구나 훈련을 받으면 할 수 있다. 하지만 HR 업무의 대부분은 고도의 훈련과 재능을 요구하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2. HR은 돈을 쓰는 보조적인 부서(cost center)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어떤 부서가 돈을 버는 조직(revenue center)인지 아니면 돈을 쓰는 조직(cost center)인지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는 회사들은 테크놀로지 부서를 돈을 쓰는 조직이 아니라 돈을 버는 조직으로 인식하고 대우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골드만삭스 같은 금융회사가 스스로를 테크놀로지 회사로 규정하는 것은 매출의 심장부에 테크놀로지를 도입하는 것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테크놀로지 부서를 돈을 사용하는 코스트 센터로 인식하는 회사는 오늘의 환경에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테크놀로지 부서가 돈을 버는 조직으로 인식되는 추세인 반면, 인사 업무는 돈을 버는 조직이 아니라 그런 조직을 옆에서 지원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회사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판매하는 조직이 돈을 버는 핵심 조직에 속하며 인사 업무는 그들을 옆에서 간접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절반 정도만 맞다.

핵소 고지(Hacksaw Ridge)라는 영화를 보면 의무병이 전투의 승리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총을 들지 않은 의무병의 활약 덕분에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이 정신적으로 용기를 얻고, 부상당해도 결코 버림받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얻어 온 힘을 다해 전투에 참가한다. 주인공인 의무병이 전투력 상승에 막대한 기여를 하는 것이다. 덕분에 미군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일본군 고지를 점령하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HR 전문가는 바로 핵소 고지 전투에 참가한 도스와 같은 사람이다. 스스로 총을 쏘지 않지만 다른 병사들과 함께 전투에 참가하여 피를 흘리고, 부상당한 병사를 끝까지 챙겨줌으로써 신뢰를 형성하고, 병사들이 두려움없이 싸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준다. HR이 이런 역할을 수행하면 그들을 결코 보조적인 부서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역할과 기여가 회사의 매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핵심부서가 회사를 위해 돈을 벌어온다면, HR 전문가는 그 돈을 벌어오는 직원을 벌어온다.

3. HR은 경영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기업에 강연을 다녔다. 삼성, LG, 현대, SK, NHN 등 대기업에서 강연을 했고 작은 회사나 모임에서 이야기를 한 적도 많다. 강연을 할 때마다 해당 회사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과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준비를 한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데 일부 회사의 경우는 교육 준비를 맡은 HR 담당자가 '윗분'들의 시선을 상당히 의식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나는 HR 직원이라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윗분'조차 HR 업무의 대상으로 삼는 패기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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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FBI 국장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상관이지만 제임스 코미 전 국장은 자기 상관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FBI가 수사하는 대상에는 원칙적으로 예외가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수사 대상에서 자신을 제외하라는 노골적인 압력을 코미 전 국장에게 가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 조직의 원칙을 훼손하는 대신 해임이라는 칼날을 받아들였다. 카리스마와 패기가 넘치는 것이다. HR 전문가는 일반직원들 앞에서 경영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지만, 때로는 경영자 앞에서 일반직원의 입장을 대변해야 옳다. 그렇기 때문에 HR 전문가는 확고한 자기 철학을 갖고, 그 위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별하는 넓고 깊은 지혜를 가져야 한다.

HR에 대해서 문외한인 내가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현실의 문제가 존재할 것이다. 실전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HR의 역할이 이상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HR 업무가 흔히 하는 오해와 달리 아무나 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일이며,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며, 경영자의 뜻을 일방적으로 받드는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짚어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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