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60일만에 돌아온 이재현 CJ회장

비약 시점에 불운 겪어...미완 사업 챙겨 궤도 안착 과제

데스크 칼럼입력 :2017/05/19 15:20    수정: 2017/05/19 15:20

기업 경영의 덕목 중 하나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일 것이다. 경영자가 한 치 건너 두치, 세치까지 내다볼 수만 있다면 기업은 다가올 위기를 헷징하고 반전의 기회를 얻어 새로운 신화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미래를 내다보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타이밍이다. 적절한 시기에 영양분을 공급해 줘야 기업 조직도 숨통을 틔우고 청·장년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현명한 경영자는 항상 일선 현장에서 시장의 반응과 변화를 살피며 주변과 소통하는 까닭일 게다. 요즘처럼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술대 위에서 손을 써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17일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지난 2013년 5월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지 햇수로 꼭 4년 만이다. 국내 대기업 총수 중 최장 공백 기간이다. 날짜로 따지면 무려 1천460일에 달한다. 그래서 늦은 감은 있지만 제조업 붕괴, 일자리 창출 등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회장이 이날 복귀 일성으로 임직원들에게 “중대한 시점에 그룹 경영을 이끌어야 할 제가 자리를 비워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글로벌 사업도 부진했다. 가슴 아프고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자책한 대목도 지난 잃어버린 4년에 대한 개인적인 회한과 아픔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1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광교에서 열린 'CJ블로썸파크 개관식' 겸 '2017 온리원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이재현 회장이 기념식수 행사를 위해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다.(사진=CJ)

2013년 CJ는 식품 사업에 이어 문화·콘텐츠 사업으로 제2의 융성기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영화와 드라마, 극장(CGV) 사업 등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고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던 시기였다. 당시 연초 사업전략 회의에서 모 임원이 '올해 문화 콘텐츠 사업에서 흑자를 내겠다'고 보고하자 이 회장이 '무슨 소리냐, 흑자 볼 생각 말고 더 많이 투자하라. 당분간 문화사업에서 돈 벌 생각 마라'고 혼쭐(?)을 낸 일화는 지금도 회사내 비화로 내려온다. 재계에서는 지금도 이 회장을 대한민국 문화·콘텐츠 사업의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고민을 해 온 몇 안되는 오너라고 평가한다. 당시 취업준비생들에게 CJ는 '가장 가고 싶은 기업'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기업 이미지도 좋았다.

그러나 이 회장이 자리를 비운 동안 CJ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식품-문화-물류 등 모든 사업에서 정체를 면치 못했다. 국내외 여러 M&A 건에서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CJ헬로비전은 SK텔레콤과 합병이 무산되기도 했다. 투자는 정체되고 매출도 30조원 언저리에서 머물렀다. 2020년 매출 100조원을 달성한다는 '그레이트 CJ(Great CJ)' 비전을 무색케 했다.

뿐만 아니다. CJ는 박근혜정부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숱한 오해와 루머 속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영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 사업을 하는 CJ가 좌파 진보의 숙주 노릇을 한다는 황당한 루머는 대표적인 사례다. 식품 기업에서 문화와 물류 기업으로 제2의 융성을 모색하려는 찰나에 이 회장의 공백은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실 이 회장의 공백 기간이 다소 길었던 이유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본인이 생사를 넘나드는 병마와 싸우며 숱한 시련을 겪었던 탓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친(故 이맹희 CJ 명예회장)을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이 회장은 삼성家 유전병인 '샤르코 마리투스(CMT)'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그룹 인사들에 따르면 현 의료기술로서 완치는 불가능하다.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뿐이다. 또 그는 재판 과정 중 부인의 신장을 이식받아 면역억제 치료까지 받았다. 지금도 몸 상태가 온전치 않다. 70% 정도 회복된 상태다. 지팡이가 없으면 오래 걷을 수 없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조기 경영 복귀를 서두른 이유는 새 정부 출범과 전 세계적인 패러다임 변화 등 엄중한 시기에 더 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이 회장의 강력한 의지 표명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 회장이 CJ의 정체된 경영 현안을 챙기고 이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복귀 시기를 더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개인적인 리더십을 애타게 기다리던 5만7천여 CJ 임직원들의 복귀 열망도 이 회장으로 하여금 더 이상 휠체어에만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든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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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만큼 그룹 안팎에선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크다. 그룹 관계자는 "(회장 복귀에 따라) 조만간 투자와 조직개편 등 후속 조치가 진행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식품-바이오-물류-문화·콘텐츠 등 4대 축이 그룹 성장의 뼈대"라며 "공격적 투자는 물론 물류 부문에서 수조원 단위의 인수합병(M&A)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이 잃어버린 4년을 뒤로 하고 선대 회장 때부터 내려온 국가 경쟁에 기여하는 진정한 사업보국의 길을 열기 위해 어떤 카드를 내놓을 지 그의 경영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