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립성 손보려는 FCC, '로봇 친위대' 떴나

"현행 규정 수정 필요" 자동생성 의견 봇물

방송/통신입력 :2017/05/11 16:39    수정: 2017/05/11 16:4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로봇 친위대'가 출격한 걸까?

오바마 행정부 시절 확립된 망중립성 원칙을 무효화하려는 FCC 사이트가 때 아닌 로봇들의 공세로 분주하다. 물론 공상과학(SF) 영화속 장면이 연출된 건 아니다.

망중립성 관련 의견(fake comments)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봇들이 무차별 의견 공세를 가하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지난 달 오바마 행정부 시절 확립된 망중립성 원칙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선언했다. 57쪽 분량의 ’인터넷 자유 회복하기’(Restoring Internet Freedom)란 문건을 공개하면서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의견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사진=미국 지디넷)

오바마 행정부는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들에게 유선전화 사업자에 준하는 강력한 ‘커먼캐리어’ 의무를 부과하는 망중립성 원칙을 확립했다. 이를 위해 유무선 ISP를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2로 재분류했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이 부분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예전처럼 유무선 ISP를 정보서비스사업자인 타이틀2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 로봇 생성 의견은 주로 "망중립성이 인터넷 혁신 막아" 주장

FCC는 현재 웹사이트를 통해 아짓 파이가 제출한 규칙공고(NPRM)에 대한 의견을 받고 있다. 대중들이 보내온 의견은 FCC가 최종 입장 정리를 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그런데 최근 FCC 사이트에 망중립성 관련 의견들이 쏟아져들어오고 있다. 미국 지디넷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현재 50만 건 가량의 의견이 접수됐다. 그 중 상당수가 봇으로 자동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의견들이라고 지디넷이 전했다.

물론 망중립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건 다른 계기도 있었다. 미국 인기 코미디언인 존 올리버가 지난 7일 주간쇼에서 망중립성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관심이 부쩍 증가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그 못지 않게 자동 작성된 듯한 의견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는 점이라고 미국 지디넷이 지적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FCC가 공중들의 의견을 받는 시스템을 오픈한 이후 똑 같은 논평들이 12만8천개 이상 올라왔다. 이는 FCC가 접수한 의견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디넷이 전했다.

이렇게 올라온 의견들은 주로 오바마 행정부가 전례없는 규제권한을 남용하면서 인터넷 혁신을 가로막았다는 내용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혁신을 가로막고 미국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는 주장이다.

로봇으로 자동 생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견들은 이런 논리를 근거로 유무선 ISP를 타이틀2로 분류한 ‘오픈인터넷규칙’을 예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FCC의 의견 게시판에는 이름과 주소, 우편번호 같은 것들을 적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 상당수 의견들의 작성자로 명기돼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의견이 올라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지디넷이 전했다.

결국 누군가 FCC의 공공 의견시스템 API를 로봇에 심은 뒤 관련 의견들을 마구 생성하고 있단 얘기다.

■ 8월까지 의견접수…소음 어쩌나

그렇다면 ‘망중립성 반대 의견’ 생성 로봇의 배후엔 누가 있는 걸까?

이 부분에 대해선 정확하게 알려진 건 없다. 다만 레딧에 올라온 글들에 따르면 로봇들이 FCC 사이트에 생성한 의견들은 주로 비영리단체인 개인자유를 위한 센터(CFIF)가 2010년 발표한 보도자료에 있는 내용들이었다. CFIF는 당시 망중립성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 시절 마련된 망중립성 원칙을 재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진 가운데가 아짓 파이 위원장이다. (사진=FCC)

물론 그렇다고 해서 CFIF가 ‘댓글 공세’의 배후란 얘긴 아니다. 실제로 CFIF 측도 로봇 댓글 공세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공식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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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C는 오는 8월 중순까지 아짓 파이 위원장이 공식 발표한 NPRM에 대한 의견을 접수할 계획이다. FCC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지난 2014년 새로운 망중립성 원칙을 제정하기 전 3개월 간의 공중 의견 접수 기간을 거쳤다.

하지만 이번엔 ‘로봇을 활용한 자동 접수’란 변수가 등장하면서 의견 수렴 과정에 상당한 잡음이 섞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가짜뉴스’에 이어 이번엔 ‘가짜 댓글’이 미국을 한바탕 뒤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