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실효성 의문스러운 가계통신비 공약

기자수첩입력 :2017/04/13 16:29

아무리 뜯어봐도 7개다. 11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내놓은 8대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 얘기다. 기본료 폐지,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 분리공시 도입, 주파수 경매 시 통신비 인하 의무화, 무선 데이터 이월 및공유, 공공와이파이 설치 의무화, 한-중-일 3국 간 로밍요금 폐지 등 7개다.

‘8대 공약이라고 해놓고 왜 7개밖에 없지?’라고 굳이 지적하는 것은 공약이 너무 허술하다는 걸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소위 ‘대선 후보가 내놓는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문 후보의 통신비 8대 공약에서는 깊은 고민이 엿보이지 않는다.

이통사가 크게 반발하고 있는 ‘기본료 폐지’ 등은 차치하고라도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와 ‘분리공시’부터 따져 보자.

오는 9월이면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상 일몰되는 지원금 상한제가 최대 넉 달 먼저 폐지된다고 해서 통신요금에 도움이 될지 되묻고 싶다. 더욱이 이는 엄밀히 얘기하면 ‘통신요금 인하’가 아니라 ‘단말 구입비 보조’다.

또 지원금 상한제와 분리공시가 담긴 법률 개정안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쟁점법안으로 분류돼 있어 현실적으로 조기 도입은커녕 통과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이통사 뿐만 아니라 제조사도 반대하고 있어 단통법 시행 이후 2년6개월 동안 계류 법안 신세다.

뿐만 아니라 한-중-일 3국 간 로밍요금 폐지도 의문이다. 로밍서비스는 민간영역에서 양국 통신사업자 간 협상에 따라 결정하는 일인데 여기에 국가의 개입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인지 묻고 싶다.

착·발신이 이뤄지는 통신의 특성상 나라별 요금구조나 양국의 체류자, 관광객 등의 수치에 따라 협상의 조건이 틀려지는데 과연 한-중-일 3국의 통신사들이 이를 무시한 채 무료화에 동의할 것이라고 보는지도 역시 의문이다.

특히, 기본료 폐지는 공약의 이행 가능성 유무를 떠나 민간기업에 정부가 요금을 강제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후진적이다.

주파수 경매 시 통신비 인하 계획이나 공공와이파이 존 신설은 정부정책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공약이라 해도 자유시장경쟁체제에서 결정되는 요금을 어떻게 국가가 임의적으로 결정한다는 말인가. 통신사들이 민간기업이 아닌 공기업이라면 모를까.

네거티브 규제를 하자는 제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면서 규제보다 더 강력한 방법으로 통신비를 인하하겠다는 생각은 이율배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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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 인하가 절실했다면 경쟁을 활성화시켜 자연스럽게 요금이 내려가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기본료 폐지보다 후발사업자를 위한 차별화된 정책지원으로 제4이동통신사를 출범시켜 저렴하게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히는 게 차라리 나을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