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퇴장…어느 IT 저널리스트를 위한 헌사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47년 기자생활 마감하는 월터 모스버그

데스크 칼럼입력 :2017/04/11 11:24    수정: 2017/04/11 17:2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장면1] 최동원 vs 선동렬의 추억

1987년 5월16일.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경기가 열렸습니다. 당대 최고 투수 최동원과 선동렬 선수 맞대결 경기였습니다.

연장 15회까지 혈투를 벌인 그 경기는 2대2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말도 안 되는 경기였습니다. 선동렬이 232개, 최동원이 209개 공을 던졌으니까요?

두 선수의 전성기는 살짝 엇갈렸습니다. 30년 전에 열린 그 경기는 두 선수가 전성기를 공유하던 짧았던 시기에 성사됐습니다. 그래서 두 선수 모두 자존심을 건 혈투를 벌였습니다. 이 경기는 나중에 ‘퍼펙트 게임’이란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한 무대에 오른 스티브 잡스(왼쪽에서 세 번째)와 빌 게이츠(맨 오른쪽).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은 건 월터 모스버그(맨 왼쪽)였다. (사진=월스트리트저널 영상 캡처)

[장면2] 스티브 잡스 vs 빌 게이츠의 추억

이번엔 시선을 글로벌 IT업계로 넓혀볼까요?

2007년 7월8일. IT업계에서 두고 두고 회자될 명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한 무대에 오른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제국을 이끈 빌 게이츠나 애플 왕국의 수호자 스티브 잡스는 IT업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이었습니다.

둘 역시 전성기는 서로 엇갈렸습니다. 빌 게이츠가 절정기를 구가할 무렵 스티브 잡스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반면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 아이폰을 연이어 내놓을 무렵엔 빌 게이츠는 서서히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제하더라도 둘을 한 자리에 불러내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중 한 명만 연사로 섭외해도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무게감이 컸으니까요.

그런만큼 둘이 한 무대에 앉는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제가 비유삼아 최동원과 선동렬 맞대결 얘길 했지만, 사실 그 정도에 비할 무게가 아니죠.)

둘이 한 무대에 오른 행사는 지금은 사라진 올싱스디지털이란 IT 전문 매체가 주최한 D컨퍼런스였습니다. 이들을 함께 불러낸 사람은 IT 저널리즘계의 전설 월터 모스버그였습니다.

이 행사 하나만으로도 월터 모스버그가 IT업계에서 어느 정도 영량력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월터 모스버그. 그는 IT 저널리즘에서 ‘영웅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23세이던 1970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언론계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 47년 동안 현장을 지킨 기자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이 둘을 한 자리에 초대할 수 있는 기자가 또 누가 있을까?

물론 모스버그가 IT만 취재했던 건 아닙니다. 여느 기자들처럼 그 역시 한 때 국방부, 국무부, 중앙정보국(CIA) 같은 다른 영역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인 이후엔 줄곧 IT 저널리즘 현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장면3] 까탈스런 잡스의 존경을 받았던 모스버그

모스버그는 1991년 IT 전문 칼럼니스트로 변신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목요일 자에 ‘퍼스널 테크놀로지(Personal Technology)’란 고정 코너를 갖게 된 겁니다. 첫 칼럼은 ‘How to stop worrying and get the most from your PC’였습니다.

이 칼럼 소개 글이 흥미롭습니다. PC와 개인 기술들을 직장과 가정에서 좀 더 잘 활용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칼럼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IT 칼럼니스트 모스버그는 당시의 여러 IT 기자들과 차원이 다른 통찰력을 선보입니다. 1991년이면 PC가 아직 가정에 채 많이 보급되기도 전이었습니다. 월드와이드웹은 연구실에서 막 태동하던 무렵이었지요. 당연히 IT 담당 기자들은 ‘기계 마니아’나 기업들을 잠재 독자로 상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IT 칼럼니스트 월터 모스버그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한 첫 칼럼.

하지만 모스버그는 이 때 이미 ‘일반 소비자’를 염두에 둔 글과 칼럼을 썼습니다. 테크놀로지가 일상 생활을 어떻게 바꿀 지, 보통의 소비자들이 IT 기기를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시대를 앞선 관점과 탁월한 취재력, 그리고 깊이 있는 분석 능력을 겸비한 그는 순식간에 대표 IT 기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리고 5년 뒤 월스트리트저널 온라인 판이 출범하면서 모스버그의 영향력은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뉴요커에 따르면 2001년 구글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제안받고 고민하던 에릭 슈미트가 모스버그를 찾아와 조언을 구할 정도였습니다.

[장면4] IT 저널리즘계 대사제 ‘모스버그’

이후 모스버그는 IT 시장과 제품의 트렌드를 한 발 앞서 전해준 탁월한 기자였습니다. 특히 모스버그는 애플 제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친 애플 성향’이란 오해를 받을 정도였지요. 덕분에 모스버그는 생전 스티브 잡스가 신뢰했던 세 명의 기자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세이’란 잡지는 2012년 미국 IT 저널리즘 지형도를 분석한 ‘Rise of Tech Bandits’란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한 적 있습니다. ‘스타워즈’ 콘셉트로 IT 저널리즘 지형도를 설명한 기사였습니다.

그 때 세이는 매셔블을 만든 피터 캐시모어는 사이보그, 테크크런치를 이끈 마이클 알링턴은 전사로 평가했습니다.

(사진=세이미디어)

그렇다면 모스버그에겐 어떤 캐릭터를 덧입혔을까요? 세이는 카라 스위셔와 함께 모스버그는 ‘대사제(high priests)’로 평가했습니다. 카라 스위셔는 모스버그와 함께 올싱스디지털과 리코드를 만들었던 탁월한 IT 저널리스트였습니다.

[장면5] 떠나는 모스버그...”당신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월터 모스버그. 그가 47년 동안 지켰던 저널리즘 현장을 떠납니다.

모스버그는 지난 7일 리코드에 올린 짤막한 기사를 통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6월에 기자 생활을 마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리코드 기사 바로 가기)

그러면서 자신의 글과 영상을 읽어주고, 봐주며, 들어줬던 많은 독자들에게 감사한다는 짤막한 인사를 남겼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뛰어난 IT 기자의 아름다운 퇴장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최동원과 선동렬의 경기를 볼 수 있었던 건 제겐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모스버그의 글을 접하면서 IT 저널리즘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던 것 역시 다시 누리기 힘든 기회였습니다. 그 기회를 제공해 준 모스버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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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동안 현장을 지킨 모스버그는 은퇴 기사를 통해 자신의 기사를 읽어준 많은 독자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전 오히려 뛰어난 IT 저널리즘을 보여준 그에게 감사인사를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당신 같은 탁월한 기자의 ‘현역’을 (글을 통해서나마) 감상할 수 있어서 더 없이 행복했습니다. 제 기자 생활 중 당신이 이끌었던 올싱스디지털과 리코드는 제겐 정말 멋진 읽을거리였습니다. 부디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IT 저널리즘계의 대사제 월터 모스버그."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