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고객이 먼저" 제임스 김 한국GM 사장의 뚝심

[데스크칼럼]눈 앞 실적보다 거시적 혜안 평가

카테크입력 :2017/03/14 08:39    수정: 2017/03/14 15:30

정기수 기자

지난해 출범 이후 내수시장에서 최대 판매실적을 거둔 한국GM 제임스 김 호(號)가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의 암초에 부딪혔다.

올해 최대 기대주로 꼽히는 준중형세단 '신형 크루즈'가 출고 직전 일부 부품 결함으로 출고가 지연되는 예상 밖의 악재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차 가격 상승에 따른 논란도 더해졌다.

한국GM은 올해 선보이는 신차 중 크루즈를 제외하고는 마땅한 볼륨 모델이 없다. 기존 스파크, 말리부, 트랙스와 함께 올해 내수시장 판매 목표를 이끌 첨병이 신형 크루즈다. 수장인 제임스 김 사장은 신차효과 반감은 물론, 매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파격적인 강수를 뒀다.

한국GM 제임스 김 사장이 올 뉴 크루즈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한국GM)

우선 출고를 앞둔 신형 크루즈의 양산을 전격 중단했다. 통상 실적 하락과 브랜드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리콜도 꺼리는 일반적인 완성차업체들의 행보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한국GM은 지난달 초 양산에 들어간 신형 크루즈에서 에어백 관련 볼트 규격 결함을 발견, 생산 라인을 중지시키고 이를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부품 교체 후 이내 재개됐던 생산은 한 차례 더 중단됐다. 일시 생산 중단을 놓고 신형 크루즈의 초기 품질 문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제임스 김 사장은 두 번째 생산 중단을 앞두고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품질 분야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이 자리에서 출고 차질과 계약고객 이탈을 우려하는 일부 임원들의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김 사장은 재차 "무결점 품질 확보 후 고객에게 차량을 인도한다"고 천명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한국GM은 올해 내수시장에서 역대 최대인 19만4천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자칫 목표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회사의 수장은 '품질 우선'이라는 원칙을 고수키로 한 셈이다.

한국GM 고위 관계자는 "제임스 김 사장의 결정은 일반적인 자동차회사 CEO의 마인드로 접근해서는 이해하기 힘든 선택지"라면서 "경영자로서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고객을 우선시하는 품질에 대한 경영철학과 확고한 의지로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한국GM의 국내 시장 판매량은 1만1천227대로 전년동월(1만1천417대) 대비 1.7% 줄어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유일하게 내수 감소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의 판매량 차이는 190대에 불과하다.

내수 발목을 잡은 것은 신형 모델의 출고가 지연된 크루즈 판매량이었다. 크루즈는 지난달 구형모델 6대가 판매되는 데 그쳤다. 구형 크루즈의 지난해 월평균 판매량은 900대 수준이었다. 신형 크루즈는 지난달 7일 기준 영업일 기준 14일 만에 2천대에 달하는 사전계약을 기록했다. 신형 크루즈의 출고가 정상적으로 이뤄졌을 경우 지난달 한국GM의 내수는 감소세를 기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형 크루즈에서 발견된 에어백 부품 결함의 경우 사고가 나지 않을 경우 쉽게 알아채기 힘든 불량"이라면서 "눈 앞의 실적에 급급해 차량을 출고한 후 뒤늦게 무상수리나 리콜을 실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국GM은 작은 결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품질 확보가 선행된 뒤 차량을 출고하는 것이 프리미엄 전략을 지향하는 GM의 생산 철학에 맞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크루즈 품질 전수 조사에는 이미 생산된 1천여대의 제품 역시 포함됐다. 한국GM은 결국 이달 7일 품질 전수 조사 종결 후 최종적으로 품질에 문제가 없다고 확인한 뒤, 생산을 재개했다. 이번주부터는 본격적으로 고객 인도가 시작됐다.

수장의 결단에 대한 평가는 가까운 미래에 분명히 결과로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김 사장의 과감한 결단이 부품 결함으로 인한 차량 출고 지연이라는 악재를 '끝까지 고객을 책임진다'는 신뢰로 뒤바꿨다는 점이다.

14일 열린 '올 뉴 크루즈 1호차 전달식'에 참석한 1호차 고객 최연식씨(왼쪽)와 한국GM 국내영업본부 백범수 전무가 모형키를 함께 들고 있다(사진=한국GM)

제임스 김 사장은 생산 재개 다음날인 8일, 신형 크루즈의 가격을 트림별로 최대 200만원까지 내리는 카드를 꺼내들며 또 한 차례 승부수를 던졌다.

일반적으로 신차 출시 후 옵션 조정 등을 통해 가격을 내리는 경우는 있지만, 신형 크루즈처럼 고객 인도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조치는 신규 고객뿐만 아니라 2천명 이상의 모든 사전계약 고객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신형 크루즈는 상품성을 크게 강화해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아반떼 등 경쟁 차종들과의 비교에서 가격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회사 최고위 리더십이 고객 목소리를 겸허하게 수용, 파격적인 수준의 가격 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키로 결정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신형 크루즈는 이번 가격 인하 조치에 따라 1천600만원대부터 시작하는 가격대를 확보하게 됐다. 가격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된 점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뒤늦게라도 고객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점은 반갑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당초 한국GM은 신형 크루즈의 시장 지위를 프리미엄 준준형으로 잡고 경쟁 모델을 준중형 최상위와 중형차 하위트림, 소형SUV로 설정했다. 하지만 이번 가격 인하로 현대차 아반떼 등 기존 준중형 모델까지 아우르게 됐다. 단점으로 지목되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됨에 따라 보다 폭넓은 고객 접점을 형성,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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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현대차 아반떼 등 경쟁차종 엔트리 트림과 비교하면 100만원 정도의 격차는 있지만, 전 트림에 1.4 가솔린 터보와 6단 자동변속기, 랙타입 전자식 차속 감응 파워스티어링(R-EPS) 시스템 등 고가의 옵션을 기본 적용한 점을 따져보면 상품성이 월등하다는 판단이다.

제임스 김 사장은 "올 뉴 크루즈는 차체 크기, 성능, 안전성 등 경쟁 모델을 압도하는 상품성과 더불어 고객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과감한 가격 인하 조치를 통해 준중형차 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라며 "전례 없는 공격적 가격 설정으로 보다 많은 고객이 크루즈의 진가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