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 어디서 갈렸나

헌재, 전원일치 탄핵 인용..."朴 파면으로 헌법수요 이익 커"

디지털경제입력 :2017/03/10 12:43    수정: 2017/03/10 14:30

정기수 기자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됐다. 이제 대한민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92일간의 심리를 거쳐 박근혜 대통령이 직위를 박탈할 만한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 재판관 8인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 인용을 결정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10일 오전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공판에서 "재판관 8인의 전원일치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헌재는 특히 박 대통령이 탄핵 소추 사유 5가지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의 권한남용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 가운데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형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 대행이 선고를 하고 있다(사진=SBS 화면 캡처)

헌재는 박 대통령이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에게 각종 국가 정책 문건을 유출하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모금에 관여한 것은 물론, 최씨 지인 업체 KD코퍼레이션에 특혜를 제공하는 등에 개입한 점을 지목하면서 최씨의 사익 추구를 지원했다고 봤다. 이같은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 행위는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는 게 헌재의 최종 판단이다.

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의 이런 위헌, 위법행위는 대의민주주의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며 "박 대통령이 검찰과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등 일련의 행동에서도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다"며 "박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강조했다.

8명의 재판관 전원이 박 대통령의 행위가 공정한 직무수행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물론, 헌법 및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 실정법을 위배했다는 데 이견이 없었던 셈이다.

일각에서 불거졌던 8인 재판관 체제 선고의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탄핵 결정시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 재판관 7인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돼 있다"면서 " 8명의 재판관으로 이 사건을 심리, 결정하는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 문제 없는 이상, 헌재로서는 헌정 위기 상황을 계속해서 방치할 수는 없으며 이번 탄핵 소추 절차에 어떤 헌법, 법률 위배도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헌재는 또 다른 주요 쟁점인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세월호 사건은 모든 국민에게 충격과 고통 안겨준 참사로,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 의무를 진다"면서도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지 그지없으나 당일 박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 판단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 상황이 발생했다고 해서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활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의 직책에 성실히 임해야 하지만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여부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탄핵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CNN이 박근혜 대통령 파면 사실을 속보로 전하고 있다(사진=CNN)

이로써 박 대통령은 즉시 파면돼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1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92일 만이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도 비워야 하는 박 대통령은 당초 퇴임 후 거처로 예정됐던 서울 삼성동 사저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 당일 거 구처를 옮긴 뒤 나머지 짐은 순차적으로 옮기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이날 헌재의 탄핵 인용으로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5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으며, 대통령 신분을 박탈당하는 만큼 불소추 특권도 사라진다. 이에 따라 향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됐다.

헌재가 이번 사건을 심리하는 92일 동안 3차례의 준비기일과 17차례의 변론기일이 열렸으며 25명의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헌재는 휴일을 제외한 60여일동안 매일 재판관 평의를 진행했으며 재판관들은 4만8천여쪽에 달하는 증거조사 자료와 40박스에 이르는 탄원서를 모두 검토했다.

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재판부는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뤄진 오늘의 이 선고가 더이상의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돼길 바란다"며 "또 어떤 경우에도 헌법과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가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헌재의 박 대통령 탄핵인용과 관련, 권성동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은 "역사적인 심판"이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국민주권주의와, 대통령이든 누구든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를 확인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번 사건은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다. 우리 모두가 승리했고 패배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헌재 결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승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박 전 대통령 대리인 측은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대해 강력히 유감을 표명하고 "향후 절차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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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인용이 확정된 만큼, 정부도 발빠르게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2시 30분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각 분야별 대책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날 탄핵 인용으로 조기 대통령 선거도 불가피하게 됐다. 공직선거법상 심판 결정 이후인 11일부터 60일 이내인 5월 9일 이내에 대선이 치러져야 한다. 대선 날짜는 황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50일 전까지 선거일을 결정해 공고하고, 그 전주가 징검다리 연휴인 점을 감안할 때 5월 9일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투표시간은 오후 8시까지 두 시간 늘어나고 이 날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