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옥죄는 불합리한 규제도 탄핵해야"

"낡은 제도 개선, 경쟁력 강화해야" 요구 거세

방송/통신입력 :2017/03/10 11:44    수정: 2017/03/10 13:49

특별취재팀 기자

국회가 지난해 12월9일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한 지 91일 만에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고심 끝에 내놓은 법리적 결정이지만 ‘적폐청산’이란 국민의 요구를 사법부가 받아들인 결과다.

하지만 탄핵 결과를 지켜 본 ICT업계는 개운치가 않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란 적폐가 정치권에만 있지 않은 탓이다. ICT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가 방송통신위원회로, 또 미래창조과학부로 통폐합 되는 동안 ‘진흥’이란 당근 대신 ‘홀대와 규제’란 채찍에만 몸살을 앓아왔다.

특히, 정보통신부가 방통위로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산자부와 행자부, 문체부 등으로 기능이 이관되면서 ICT 기업들은 이중규제와 주무부처가 없는 설움을 톡톡히 치러야 했다.

그동안 범정부 차원에서 ‘규제개혁’이나 ‘ICT 융합 신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혁신’ 방안을 내놓았지만,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이나 칸막이식 규제 해소에 그쳤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또 규제혁신의 초점도 알파고로 불어 닥친 제4차 산업혁명, 그리고 그 기반 인프라와 핵심요소로 꼽히는 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등에 집중됐다. 그나마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관련 제도 개선안은 정치 논쟁에 둘러싸여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무기명 투표중인 국회 모습 (사진=국회TV)

■ 규제혁신 한다면서…사전규제에 ‘몸살’

ICT업계는 정부가 ‘규제개혁’을 내세울 때마다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한다. 사전규제 철폐가 전 세계적인 ICT 정책 추세라면서도 중소 ICT 기업이 체감할 수 없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업계가 자율규제로 혁신하겠다는 요구가 묵살당하기 일쑤였다.

일례로 3D 프린터 사업자인 삼디몰은 사전규제로 피해를 당한 대표적 ICT기업이다. 이 회사는 정부의 인증표준콜센터로부터 안전 확인 신고가 필요 없다는 확답을 받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산업부로부터 규정을 어겼다며 고발당했다. 불분명한 법제도와 사전규제가 문제였다.

김민규 삼디몰 대표는 “무엇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왜 불법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억울하면 신문고에 문의하란 식이었다. 완제품 판매가 아닌 3D 프린터 플랫폼 사업자라고 하소연을 했지만 이해를 못했다. 이번 일로 사업계획을 바꿔야하나 고민 중에 있다”면서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모르겠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빼앗는 규제는 지속적으로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종 콜버스 대표(가운데)가 스타트업 규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콜버스랩이 개발한 전세버스 공동구매 서비스 콜버스는 서울택시조합이 서울시에 단속을 요청하면서 규제 대상이 됐다. 2015년 말에 등장한 콜버스는 현재 한정된 지역과 특정 시간에만 운행해야한다는 제약을 받고 있다.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는 “서울시가 자정 이후 서비스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 불허 결정을 했다. 사업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한다고 했지만, 기대도 안된다”고 말했다.

규제뿐만 아니라 진흥에서도 마찬가지다. ICT업계 종사자들은 기술 발전 속도를 LTE급으로 체감하고 있는데, 정부와 국회의 대응은 2G급이란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개원 9개월 만에 ‘면피(?)’를 위한 법안 10개만 처리한 채 여전히 공전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 규제의 경우 ICT 붐이 일면 완화 분위기가 형성되다가도 개인정보 이슈가 터지면 다시 수그러드는 경우가 대다수였다"며 "이미 EU와 일본에서는 개인정보보호일반규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빅데이터 처리와 관련한 익명화 또는 가명화 조치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우리도 규제 완화를 위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흥과 규제가 손발이 맞지 않다보니 수익이 확실한 스타트업은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반면, 시장성이 검증 되지 않은 신규 스타트업은 투자사로부터 외면을 받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투자사 등과 인맥이 있거나 포트폴리오가 갖춰진 업체, 기존 실적을 바탕으로 재투자를 원하는 곳은 투자가 수월하지만 이를 갖추지만 초기 스타트업은 생존자체가 어렵다.

■ ‘IT 홀대’ 기업 문화 여전

지난해 1월 우리나라의 ICT 수출액은 138억3천만 달러로 60억5천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전체산업 흑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치다.

그럼에도 한국 산업 생태계에서 ICT의 위상은 약자다. ICT를 다루는 사람이 그 능력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휘둘려왔다. 대표적인 게 부품처럼 소비되는 소프트웨어(SW) 분야의 개발자다.

박근혜 정부 들어 ‘SW 중심사회’를 만들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지만 일선 기업 현장에서 IT담당자는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되기 일쑤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이 ICT기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한국 ICT 산업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SI프로젝트 현장은 대개 프리랜서 개발자의 주 무대다. 그럼에도 프리랜서 개발자들은 전문가가 아닌 부품에 불과하다고 한탄한다. 때문에 하도급에 재하도급이 끝없이 이어진다. 고용불안, 임금체불, 야근 등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소 SW업체나 일반 기업 조직 내 ICT 담당자도 전문성을 존중받지 못한다. 비ICT담당자와 기업 경영진의 ICT 몰이해가 그 배경이다. 기술전문가와 다른 경영진간 역할, 책임구조가 수평하지 않은 탓이다.

ICT에 대한 푸대접은 개인 기술직군이나 조직 내 특정 부서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체 SW패키지 솔루션을 개발하거나 외주 SI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IT업체도 같은 처지다. 원인은 역시 솔루션을 구매하고 SI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이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SW 판매단가, 유지보수료 등을 최저가로 맞추는데 급급하다. 한정된 시장에서 저가, 저품질로 경쟁하니 수익구조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저수익에 종사자 처우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 품질 개선과 인력 유지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 SW와 서비스같은 무형 자산이 산업을 주도하는 사회가 아니다. 산업과 직업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 전문가가 힘의 논리에 가로막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힘을 내지 못하는 한 한국의 ICT는 동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 해외진출 ‘언감생심’

“좁은 한국을 벗어나 글로벌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주장은 정부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내뱉는 단골 구호다.

정부에는 ICT 기업의 글로벌 지원을 많은 산하기관들이 있지만 서로 역할을 나눠 전략적인 접근을 하지 않고, 부처 간 벽을 쌓아둔 채 성과와 실적에 목매어 각개 전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권이 교체되면 방향이 바뀌거나 전문 조직이 와해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아울러, 성과 위주식의 지원을 하다 보니 성과로 보기 힘든 것까지 수치화 시켜 성과로 포장하는 것도 문제점이다. 현재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초기 스타트업은 소위 ‘돈줄’이 마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국가별, 단계별 전략을 짜고 지원해야 하는데 이를 한 데 묶어 지원하다보니 비효율적인 문제도 발생한다. 일례로, 해외 전시회 참가 지원을 해줄 때는 성장, 또는 성숙 단계의 기업을 데려가야 하는데 이제 막 준비 단계인 기업들을 참가시키는 경우다.

코트라의 한 관계자는 “다양한 정부 기관들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다 보니 한 곳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닌 각자의 사업을 따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해외 각 거점에 무역관이 있지만, 예산이 부족해 현지의 ICT 전문가를 채용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라고 언급했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정책은 연속성을 갖고 추진돼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게 되면 방향을 잃어버리곤 한다”며 “선진국처럼 거대 자본도 부족하고 글로벌 회사에 버금가는 기술이 부족함에도 정부 정책방향이 쉽게 바뀌는 것도 지양돼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진출 지원이 아닌 ‘여행 사업’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데 보여주기식 지원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표적인 게 정부가 실리콘밸리 투어를 ‘해외 진출 지원’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부 산하기관의 한 관계자는 “중국도 성주들이 자체 전략을 세우고, 다른 사업들을 내놓는다”며 “이처럼 중국을 공략했을 때도 성마다 전략을 달리해야 하는데 글로벌 시장도 마찬가지로 각 지역별로 다른 전략을 세워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글로벌 지원을 뭉뚱그리지 말고 준비, 진출, 성장 단계로 나눠 각 지원 기관이 역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면서 “글로벌 지원성과에 상담 실적을 포함해 발표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 경쟁 여건 악화되는데…통합부처 절실

최근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아이콘인 인공지능 분야에서 ‘추격자’가 아닌 ‘개척자’로서 도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모태가 된 독일의 인더스트리4.0과 같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혁신, 그리고 모든 경제사회 분야의 인식기반을 바꾸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인공지능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인 전자와 자동차를 필두로 제조업 분야의 강점을 갖고 있는 한국은 이를 공고히 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종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제조업 분야도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선두 자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나온다. 지난 1월 ICT 수출입 동향 결과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주력 수출 품목인 휴대폰은 부분품과 완제품 모두 수출이 동반 감소해 36.4% 하락했다. 사드 문제로 ‘경제 보복’이란 얘기가 나오는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 인도 등 주요국 수출의 부진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인공지능(AI), 스마트홈, 빅데이터, 스마트헬스, 자율주행차 등 4차산업혁명의 핵심이 되는 신사업 분야는 구글, IBM, 아마존 같은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이 ‘혁신가의 딜레마’를 극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혁신가의 딜레마’란 기존 제품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에만 몰두하고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는 소홀히 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이론이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스마트홈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되는 혁신 사업과 연계해가며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빠른 아이디어가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갑과 을로 대변되는 대중소기업 관계도 재정립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해 온 ‘납품 단가 후려치기’나 ‘아이디어 가로채기’ 등 관행들을 당장 청산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기존 대기업들이 투자하기 어려운 새로운 분야에 작은 몸집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뛰어들고 대기업들을 제값을 치르고 기술을 사용하는 새로운 상생 문화가 정책돼야한다는 지적이다.

또 4차 산업혁명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기술과 서비스의 융복합이 기본이기 때문에 규제 체계의 혁신도 필요하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드론,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 신산업을 키우려면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방식에서 벗어나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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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전략연구실 선임연구원은 “ICT 등 핵심 혁신분야를 포괄하는 전담 부처 및 관련 경제 사회 이슈를 조정하기 위한 총괄 기능 수행 체제(컨트롤타워)를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기술적 선점 가능성, 인프라, 인적자원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문 지식이 풍부한 인력을 (각 부처에)배치해야한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중복된 지원 정책이 스타트업 기업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제도와 사업을 각각 따로 담당하는 부처의 경우 통합하는 것을 고민해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