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 설화에서 배우는 가짜뉴스의 교훈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뉴스의 비판적 수용을 위하여

데스크 칼럼입력 :2017/02/16 15:10    수정: 2017/02/16 15:3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서동 도련님(薯童房)을 / 밤에 몰래 안고 간다.”

학창시절 한번쯤 들어봤던 ‘서동요’다. 여기서 선화공주는 신라 26대 진평왕의 셋째 딸. 상대역인 서동 도련님은 훗날 백제 30대 무왕이 되는 인물이다. 저 노래가 유통되던 당시 서동은 미천한 신분이었다.

‘서동요’ 설화는 삼국유사 백제편에 나오는 얘기다. 내용은 간단하다.

신라 수도 서라벌에 언제부터인가 공주의 ‘부적절한 행위(?)’를 고발하는 노래가 울려퍼진다. 분노한 진평왕은 공주를 귀양 보내버리고, 울며 떠나는 공주 앞에 서동이 나타난다. 결국 둘은 결혼을 하고, 백제로 건너간 서동은 30대 왕에 취임하게 된다. (참고로 진평왕의 첫째딸 덕만은 나중에 선덕여왕이 된다. 둘째딸 천명공주는 김춘추의 어머니다.)

서동요 설화는 요즘 관심이 집중된 가짜뉴스(fake news)와 관련해 생각할 거리를 꽤 많이 던져준다. (최근 며칠 동안 fake news를 가짜뉴스로 번역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해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의에 숟가락을 얹기 위해선 같은 용어를 쓰는 게 낫다고 판단해 그대로 사용한다.)

구글이 가짜뉴스 추방을 위해 언론사들과 손잡고 크로스체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구글 뉴스룸)

■ 서동의 콘텐츠 전략을 보면 '가짜뉴스' 유통경로 보인다

일단 뉴스 유통 과정을 따져볼 수 있다. 서동이 선화공주와의 스캔들을 퍼뜨리는 과정을 보면 가짜뉴스가 어떤 경로로 유포될 지 짐작해볼 수 있다. 서동은 크게 두 가지 전략을 사용했다.

첫째, 유통 전략 면에선 ‘전파력이 가장 뛰어난' 아이들을 활용했다.

둘째, 콘텐츠 전략 면에선 ‘전염성이 가장 뛰어난' 노래 형식에 메시지를 담았다.

이 두 가지 전략이 잘 결합되면서 ‘선화공주의 부적절한 행위’란 가짜뉴스는 순식간에 기정사실로 바뀌었다. 선화공주를 노린 서동의 ’가짜뉴스 전략’ 역시 보기 좋게 성공했다.

이처럼 이른바 '가짜뉴스'를 활용한 여론조작의 역사는 꽤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 역사는 거짓 정보와의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서동요’ 설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외없이 흥미로운 콘텐츠와 적절한 유통 플랫폼이 동시에 동원됐다는 점이다.

서동요가 유포된 서라벌은 모바일 기기와 SNS가 지배하는 21세기 우리 사회와 놀랄만큼 닮았다. 클릭 한 번에 빛의 속도로 확산되는 인터넷과 SNS는 서라벌 사회를 뒤흔든 ‘입소문 플랫폼’의 21세기 버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짜 정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런데 이 문제는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지난 해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힐러리 클린턴이 내년 FBI에 기소될 것이란 가짜 기사를 페이스북을 통해 엄청나게 유포했던 월드폴리티커스.

여러 전문가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팩트 체킹’도 말처럼 쉽지 않다. 원론은 가능하지만, “누가, 어떻게?”란 각론으로 들어가면 대답이 궁해진다.

선거처럼 정해진 시한 내에 홍보 경쟁을 해야 하는 이벤트에선 특히 더 어렵다. 딱 부러지게 ‘진짜’ ‘가짜’를 구분해줄 방법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 진평왕이 '가짜뉴스'에 대해 좀 더 비판적 읽기를 했더라면

하지만 우리가 ‘서동요’에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있다. ‘의심스러운 뉴스’에 대해선 한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 딸이 근본도 모르는 외갓 남자와 밤마다 정을 통하는 뉴스라면 쉽게 믿을 수 없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확인을 해봤어야 한다. 하지만 진평왕은 그 과정을 생략한 채 즉각 반응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비판적 읽기’란 뉴스 수용의 기본을 망각했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전통언론까지 포함한) ’가짜뉴스’의 진짜 폐해는 양극화란 지적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렴풋이 갖고 있던 생각을 더 확고하게 하는 수단이 바로 가짜뉴스란 지적이다.

서동요 설화는 이부분에 대해서도 훌륭한 반면교사 역할을 해 준다. 가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진평왕의 어리석은 행위에서 자그마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사실 ‘언론사를 사칭한 가짜’보다는 ‘언론사 플랫폼을 이용한 가짜’ 뉴스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관련기사

그래서 난 가짜 뉴스 문제는 ‘의도된 가짜’(언론사 사칭한 가짜)와 ‘매개된 가짜’(언론사 통해 전파되는 가짜)란 두 가지 사안을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진평왕은 ‘의도된 가짜뉴스’와 ‘매개된 가짜뉴스’에 모두 당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팩트 체킹’을 게을리 함으로써 매개된 가짜 정보에 무방비 상태에 노출된 점이 그의 가장 큰 실책이라고 해석해본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