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과 대선,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이균성 칼럼]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

방송/통신입력 :2017/02/07 13:29    수정: 2017/02/07 13:35

난세(亂世)도 이런 난세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혼돈 그 자체다. 기존 질서가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데 한계에 봉착한 탓이다. “이것도 나라냐”는 아우성이 하늘을 찌른다. 문제는 그 해법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혁명(革命) 과업’을 수행해야 하지만 그 방법은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를 따라야 해 지난할 수밖에 없다.

심화되는 사회적 모순에 민심이 폭발했던 계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언론 보도와 검찰 및 특검 수사 결과로 보건대 이 게이트의 실체는 권력을 농단하고 헌법을 유린한 사건이다. 일개 민간인이 국가 권력을 떡 주무르듯 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시달렸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 민간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여러 증거 앞에서는 수치심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게이트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깨부숴야 할 구질서(앙시앙 레짐)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을 철저히 수사해 엄벌에 처함으로써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일벌백계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 앞에 놓인 중대한 사회적 모순을 다 해결하지는 못한다. 고름을 닦고 상처 부위를 소독할 수는 있지만 허약해진 체질을 바꿔 건강을 회복하긴 어렵다.

문제는 경제다. 활기를 잃은 경제와 서민의 고달픈 삶이 문제의 핵심이다. 상대적으로 덜 민주적인 것처럼 보여도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건 경제를 살리라는 간절한 주문 때문이었다. 먹고 산 뒤에라야 문화도 뭣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빚내서 집 사라”는 무책임한 정책 앞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서민이야 어찌되든 일단 보이는 숫자만 올려놓고 보자는 심사다.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예견한 세계경제포럼이 남녀간 고용 격차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WEF)

부패할지언정 경제에는 강하다는 보수 정권이 두 번에 걸쳐 실패한 건 어쩌면 필연에 가깝다. 그건 박정희 패러다임의 몰락을 의미한다. 국가 주도로 자본을 집중 투하해 생산성을 고도화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미 공급은 과잉 상태고 기업은 투자할 데가 없어 금리는 제로로 수렴하거나 마이너스인 경우도 많다. 제조업의 위기와 불안한 일자리는 세계 경제의 급변으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난해한 화두는 이런 현상을 일컫는다. 앞선 두 정부는 이런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보다 언 발에 오줌 누는 대증적 정책만 남발해 산업 생태계를 더 악화시키고 서민의 삶만 더 팍팍하게 만들었다. 탄핵으로 대통령 선거가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예비 후보들은 너나없이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정책을 화두로 들고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백가쟁명식 토론도 예상된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이미 이 화두 선점 경쟁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세 가지만 제안한다. 먼저 기업을 보는 관점이다.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의 논쟁일 수 있다. 문재인은 큰 정부 쪽이고 안철수는 작은 정부 쪽인 듯하다. 그 중간이 좋겠다. 진흥에는 작은 정부가 맞고 구조조정에는 큰 정부가 더 어울린다. 규제를 완화할 것과 과감하게 구조조정 해야 할 것을 가르는 안목과 결단이 필요하다.

최악의 경우는 그 반대다. 진흥해야 할 산업에는 규제를 강화하고 죽어야 할 기업은 연명시키는 일이다. 이 역방향은 정부와 기업 사이에 불필요한 관계를 만들고 정경유착의 빌미를 제공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런 환경에서 기생한 좀 같은 것이었다. 정부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는 기업과 정부에 잘 보여 국민 혈세로 연명하는 기업이 적어야 산업 구조가 튼튼해지고 일자리가 는다.

4차 산업혁명은 주지하듯 IT와 과학기술의 급진전이 불러온 사회변화다. 당연히 IT와 과학기술에 밝은 혁신가를 중용해야 한다. 혁신가는 기술 지상주의자가 아니다. 기술이 사회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깨닫고 사회 구조를 더 나은 방향으로 설계할 지혜를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기술과 산업 그리고 경제와 사회 등에 두루 능통한 자를 뜻한다. 그래서 기술과 인문학의 통섭이 특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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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무난히 헤쳐가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하다. 기술의 발전은 노동의 소외로 수렴된다. 내버려두면 부의 양극화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해법은 기술을 고도로 발전시키면서도 노동을 나누는 길 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는 길은 노동과 자본의 대타협 밖에 없다. 산업구조 개선과 함께 노동의 재배치야말로 차기 대통령의 가장 큰 숙제다.

이 모든 게 말은 쉽지만 사실은 혁명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소통의 예술’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꿈도 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