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공격일까, 자동화의 축복일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어느 보험회사의 슬픈 이야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7/01/06 18:10    수정: 2017/01/07 14:1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4차산업혁명을 널리 알린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 제목은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였다.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65%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던 다른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란 경고 메시지도 담았다.

최근 발표된 미국 백악관의 인공지능 보고서가 주목한 것 역시 일자리 문제였다. 이 보고서는 현재 미국 일자리 47%가 인공지능(AI) 기술로 대체될 것이란 연구 결과를 중요하게 소개했다.

기술 발달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산업혁명 시대의 상징인 기계파괴운동(Luddite)이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줬다.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들은 자신들을 밀어낸 기계를 파괴하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19세기 초반 영국 사회를 강타했던 러다이트는 비숙련 노동자들을 쫓아냈다. 반면 AI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은 그 동안 ‘화이트칼라’라 불렸던 직종까지 영향권하에 두고 있다. 백악관 보고서 표현을 빌리자면 '숙련 쪽으로 치우친 기술 변화(skill-biased technical change)’를 몰고 올 가능성이 많다.

일본 후코쿠생명보험이 보험금 청구 업무 담당 직원 34명을 IBM 왓슨 인공지능 컴퓨터로 대체했다. (사진=후코쿠)

■ "2년 만에 투자비용 회수…생산성 30% 향상"

사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실감이 잘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남 얘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AI의 공격’을 받고 있다. AI가 조금씩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올초부터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받은 일본 후코쿠생명보험 사례는 AI가 어디까지 왔는지 잘 보여준다.

후코쿠는 2017년 1월부터 보험금 청구 업무 담당 직원 34명을 ‘IBM 왓슨 익스플로러’로 대체했다. AI 컴퓨터인 왓슨은 부상 정도, 약물 치료 이력, 정해진 절차 같은 것들을 고려해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

회사 측은 조사 및 자료수집 과정을 자동화함에 따라 보험금 지급 절차가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게다가 왓슨 AI 도입으로 생산성을 30%나 끌어올리면서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후코쿠가 공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왓슨 AI 구축 비용으로 17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또 매년 유지 보수비용으로 12만8천 달러 가량이 소요된다.

하지만 왓슨 AI 도입 덕분에 매년 인건비 110만 달러 가량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2년이면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단 계산이 나온다. 경영 효율 측면에선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IBM 왓슨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변호사가 미국 대형 로펌에 취업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AI 법률 서비스 로스의 홈 페이지.

미국 경제전문 매체 쿼츠에 따르면 후코쿠가 자신 있게 왓슨 AI를 도입하게 된 건 고객 응대 서비스에 IBM 기술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경험 때문이다. 이 기술 덕분에 고객 목소리를 텍스트로 변환한 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분석할 수 있었다.

현재 상당수 미국 회사들은 고객 서비스 분야에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물론 비용, 효과 측면에서 만족도도 꽤 높다고 한다.

후코쿠 사례는 AI로 인한 일자리 상실이 더 이상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후코쿠 사례를 전해주는 쿼츠는 “지식 기반의 화이트칼라 작업을 처리할 수 있는 AI의 경쟁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 속도와 범위 엄청난 AI 태풍, 어떻게 대처할까

후코쿠생명보험 사례를 읽으면서 25년 쯤 전의 아련한 풍경이 떠올랐다.

내 기자생활 초년무렵이던 1990년대 초반 회사 풍경이었다. 당시엔 신문 제작공정 상당 부분이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특히 컴퓨터 출력 용지를 칼로 자른 뒤 대지에 풀로 붙이는 작업이 중요한 공정 중 하나였다. 베테랑 제작인력들은 ‘신기의 칼 솜씨’를 자랑했다.

하지만 CTS가 도입되면서 이들의 권력은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투박한 손으로 컴퓨터 작업을 하는 게 수월하지 않았던 탓이다. 변화된 제작 공정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노동자들은 업종을 전환해야만 했다.

반면 그들에게 많은 구박을 받던 어린 여직원들은 그 때부터 날개를 달았다. 순식간에 숙련 노동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25년 전엔 그래도 업종 전환의 기회가 있었다. 지금보다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았던 덕분이다. 하지만 AI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은 ‘속도’와 ‘범위’ 때문에 그 때와는 또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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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 보험회사의 AI 도입 소식에 지나치게 호들갑을 떠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AI 시대를 맞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것 같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행복 지수는 ‘그 고민의 깊이’에 비례할 수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