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사기 막기, 민관 공조 왜 안 되나?

민-관 협업으로 소비자 피해 확 줄여야

기자수첩입력 :2017/01/01 09:08    수정: 2017/01/01 09:20

손경호 기자

중고거래를 처음 경험한 것은 2년 전이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다시 배워보겠다는 생각에 연주실력은 둘째치고라도 좋은 악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며칠 고민 끝에 당시 K팝스타3에 출연했던 권진아씨가 들고 나와 유명해진 모델로 마음을 정했다.

새 제품을 사려니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이름만 알고 있었던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에 처음 가입해 폭풍검색 끝에 매물을 찾았다. 스마트폰 대신 세탁비누가 오고, 하드디스크를 샀더니 벽돌이 오더라는 등 귀동냥으로 사기를 간접체험한 탓에 직거래를 요청했다.

그리고 며칠 뒤 집 근처 지하철역 주변에서 판매자와 만났다.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내 기스가 없는지 확인하고, 줄도 튕겨봤다. 현금 40만원을 건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으론 사기 당한 건 아니겠지 하는 찜찜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온오프라인을 포함한 국내 중고거래시장은 약 1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수많은 물품들이 거래되다보니 크고 작은 사기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때문에 사기를 당했거나 당할뻔 했던 사람들이 사례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중고거래 사기를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이런 일들을 더치트라는 민간회사에서 11년 동안이나 해왔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있는 일이다. 만약 어쿠스틱 기타를 거래하기 전에 이런 서비스를 알았었다면 당연히 조회해 봤을 것이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사기를 줄여보자는 취지로 피해사례를 쌓아왔던 더치트는 종종 이들의 도움을 받아 수사를 해왔던 경찰과 올해 초부터 등을 돌리게 됐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이 자체적으로 '사이버캅'이라는 모바일앱을 내놓으면서부터다.

그동안 온라인 중고거래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공조해왔던 이들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것은 지난 3월 10일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이 KB국민은행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부터다. 강신명 경찰청장, 윤종규 KB국민은행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협약식에서는 KB국민은행이 제공하는 인터넷/모바일뱅킹 이체화면에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서 제공하는 사기이용계좌조회서비스에 바로 접속할 수 있는 링크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5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경찰청은 네이버와 업무협약을 맺고, 인터넷사기피해 정보를 포털에서 조회해 볼 수 있도록 했지만 여기서 더치트는 업무협약 대상에서 빠졌다. 이 회사는 이미 2009년부터 네이버와 제휴해 2012년부터 포털에서 사기에 악용된 휴대폰 번호/계좌에 대한 조회서비스를 제공해왔다.

금융범죄를 막기 위해 은행, 포털 등과 경찰이 협업한다는 것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이 제공하는 사이버캅이 더치트가 제공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경쟁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당시 더치트측은 경찰이 자신들의 사업 모델을 뺏아갔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회사 김화랑 대표는 "1년6개월 동안이나 경찰과 협업을 위해 공을 들였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더치트가 됐건,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이 됐건 국민들 입장에서는 중고거래와 같은 분야에서 온라인 사기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공공의 적인 중고거래 사기범을 뒤로 하고 민간회사와 경찰이 그동안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에는 오랫동안 추진돼 왔던 DB제휴 등 협업 방안이 무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일선 경찰관들이 더치트에 올라온 제보 등을 참고해 사기범을 검거하고, 관련 소식을 경찰들이 직접 해당 사이트 게시판에 올려 추가피해를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아쉬운 일이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그동안 더치트에 올라온 제보들이 실제 경찰에 사건신고가 접수돼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여럿인 만큼 이곳에 올라오는 정보들을 100%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최근 3개월 간 3회 이상 신고가 접수된 인터넷사기에 악용된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조회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더치트는 사용자들의 피해사례를 제보받아 해당 번호로 직접 연락을 해보는 등 방법을 취한다. 이를 통해 사기피해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스마트폰 번호나 계좌번호를 찾아내 다른 사람들이 조회할 수 있도록 DB를 만들어 왔다.

경찰은 사건이 접수돼 실제 수사에 들어간 뒤 사기로 거의 확실시 되는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제공하는 만큼 내용을 조회해봤을 때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최신 사기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반면 더치트는 사용자들이 제보한 내역을 바탕으로 DB를 만들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가장 빠르게 판매자의 정보가 사기에 악용된 적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들이 공조했을 때 사기범을 잡고 피해를 예방하는데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관련기사

2013년 발생한 3.20 사이버테러와 같이 심각한 해킹사건이 발생했을 때 국내 민간 보안 회사 전문가들과 군, 검, 경 등과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원인을 분석하고 추가피해를 막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굵직한 보안사고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더욱 피부에 와닿는 것은 사이버테러 보다는 내가 오랫동안 공들여 구매한 물건 대신 벽돌이나 세탁비누가 배달됐을 때다. 중고거래 사기를 막기 위해 민-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협업하기가 그렇게 힘든 일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