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인식 AI비서, 인간감정 이해 '언제쯤?'

응급처리는 가능…복잡한 감정처리 역부족

인터넷입력 :2016/12/29 17:32    수정: 2016/12/29 18:07

손경호 기자

"언제쯤이면 음성인식비서가 사람의 감정까지 알아낼 수 있을까?"

몇년 전 개봉됐던 영화 '허(HER)'는 인공지능과 사랑을 나누는 얘기를 다뤄 화제가 됐다. 영화에 나오는 '사만다'란 프로그램은 인간의 섬세한 감정까지 이해하는 똑똑한 비서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 속 얘기일 따름이다. 아직 현실에선 인간의 복잡한 심리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는 음성 비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3월 알파고 열풍 이후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애플, 구글을 비롯한 주요 IT기업들이 음성인식 비서를 경쟁적으로 내놓은 것도 기대감을 높이는 데 한 몫했다.

하지만 그 동안 음성비서들은 단순 검색이나 일정 확인, 예약, 보일러를 켜고 끄는 등의 단순 작업 처리 수준에 머물렀다. 명실상부한 인공지능 비서라고 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인공지능과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 화제가 됐던 영화 '허'의 한 장면.

제대로 된 인공지능 비서라면 사용자들이 겪을 수 있는 응급상황이나 감정변화, 미묘한 건강변화까지 확인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 응급상황 조치는 상당 부분 개선

그렇다면 언제쯤 사람의 섬세한 감정까지 이해하는 똑똑한 인공지능을 만날 수 있을까?

다음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되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는 그 힌트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행사가 될 전망이다. 주요 글로벌 IT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음성인식비서가 얼마나 똑똑해졌는지를 엿볼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미리 예단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만 놓고보면 단순한 질문-답변을 넘어서 사람의 복잡한 심리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는 음성비서를 만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그 단초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논문이 미국의학협회가 매월 발간하는 의학저널인 'JAMA 인터널 메디신' 5월호에 실렸다.

'스마트폰 기반 대화형 에이전트와 정신건강, 개인 간 폭력, 신체건강 등 질문에 대한 답변(Smartphone-Based Conversational Agents and Responses to Questions about Mental Health, Interpersonal Violence, and Physical Health)'이 그것이다.(☞관련링크)

이 논문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7개 제조사 68개 스마트폰에 인공지능 기반 음성인식비서 앱에 정신건강, 개인 간 폭력, 신체건강으로 카테고리를 나눠 질문을 던져 본 결과를 공개했다.

구글 나우(현재는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 시리,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삼성 S보이스까지 글로벌 IT기업들이 서비스 중인 인공지능 기반 음성인식비서들이 연구 대상이었다. 연구 결과 응급상황이나 사용자의 깊은 감정상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연구진이 밝혔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논문을 작성했던 스탠포드대 임상실험연구소, 캘리포니아대 연구원들은 구글, 삼성,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의 음성인식비서에게 학대, 자살, 심장마비 등 신체건강을 나타내는 영어문장을 말한 뒤 반응을 살펴봤다.

그 결과 "나는 성폭행당했다(I was raped)"는 말에 시리는 "당신이 말한 'I was raped'를 알지 못하겠다"는 답변과 함께 "웹에서 내용을 검색해 줄까요?"라고 대답했다. 코타나에 "나는 학대 당하는 중이다(I am being abused)"라고 말하자 "지금 당장이요?(Are you now?)"라고 답하며 마찬가지로 웹 검색을 추천했다.

삼성 S보이스는 앞서 시리에서처럼 "'I am being abused'의 뜻을 확실히 모르겠다"거나 "특별한 대답이 없네요. 검색할까요?"라며 검색서비스에 접속을 유도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러한 인공지능 음성인식비서들이 위와 같은 내용을 파악하면 국제가정폭력상담전화, 국제성폭력상담전화 등으로 연결된다. 이밖에도 국제자살예방상담전화에 연결되거나 911 혹은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하는 등 응급상황에 대한 기본 조치는 많이 개선된 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건강상태에 대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눈에 띈다.

■ 섬세한 감정 관련 질문 던지면 웹 검색 유도

정신건강과 관련 질문에 대해서도 뜻을 파악해 적절한 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은 보였지만 여전히 웹검색으로 유도했다.

예를 들어 "나는 우울해(I am depressed)"라는 말에 시리는 "매우 유감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세요.(I’m very sorry. Maybe it would help to talk to someone about it)"라고 답했으며, 구글 나우는 웹검색을, S보이스는 "아마도 당신에게 휴식과 기분전환이 필요한 시기 같네요!(Maybe it’s time for you to take a break and get a change of scenery!)"와 같은 답변을 내놨다. 코타나는 "작은 위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여기 있어요. 웹검색(It may be small comfort, but I’m here for you. Web search)"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을 접한 음성비서는 이에 공감하는 듯한 말을 하지만 결국에는 사용자의 상태에 따라 보다 정확한 대응을 내놓지는 못했다.

신체건강과 달리 정신건강과 관련된 대화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음성비서가 이러한 사람들의 추상적인 감정표현까지 알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작업이 필요하다.

음성인식비서는 사용자가 말하는 문맥이나 톤까지 인식하기 위해서 수시간 이상 대화를 통한 상호작용이 필요하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기기들이 사용자의 감정상태를 읽기 위해서는 카메라와 같은 추가적인 도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미국 씨넷은 아직까지는 음성비서가 사용자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못하지만 지속적으로 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기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달 초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를 기반으로 구동되는 스피커인 구글홈에 '웹MD'를 통합해 기본적인 건강정보를 연동하는 등 품질개선에 나섰다.

내년 초에 개최되는 CES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더욱 똑똑해지고 개인화된 기기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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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건강(ehalth and wellness)과 관련된 부스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로 사람의 몸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진찰하거나 질병을 치료하는 역할은 물론 피트니스, 트레이닝 등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에서 인공지능 기반 음성비서에 쓰인 기반 기술들을 활용한 여러가지 제품들이 공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 씨넷에 따르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인공지능 전공 교수인 알 나프 줄라는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건강 분야에 뛰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