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의 '데이터 공짜' 폭탄, 어디로 튈까

디렉TV 나우에 제로레이팅 적용…후폭풍 거셀듯

방송/통신입력 :2016/11/30 11:32    수정: 2016/11/30 17:5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국 통신시장에 폭탄이 하나 터졌다. 오바마 행정부 때 확립된 망중립성 원칙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초강력 폭탄이다.

폭탄을 터뜨린 곳은 버라이즌과 함께 미국 통신시장 양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AT&T다. AT&T는 지난 28일(현지 시각) 디렉TV 나우란 TV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데이터 무료’란 당근을 함께 꺼내들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자사 통신 서비스 이용 고객들은 데이터 걱정 없이 디렉TV 나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당근이었다.

'디렉TV 나우’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상품이다. 월 35달러 최저 요금제에 가입하면 ESPN과 TBS, 디즈니 등 60개 채널을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 뿐 아니라 거실의 TV로 볼 수 있다.

70달러짜리 패키지는 채널 수가 120개를 웃돈다. 월 100달러를 훌쩍 넘는 위성TV 등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AT&T 엔터테인먼트의 브래드 벤트리가 디렉TV 나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씨넷 영상 캡처)

AT&T가 디렉TV 나우를 통해 케이블이나 위성TV 서비스를 끊어버린 이용자(코드커터)를 공략하겠다는 야심을 강하게 드러낸 셈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AT&T는 여기에 ‘데이터 공짜’란 당근을 하나 더 추가했다. 이 당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잠깐만 생각해도 금방 알 수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는 3G나 LTE 환경에서 영상 서비스를 볼 때마다 간이 졸아드는 느낌을 갖게 마련이다. 데이터 요금 걱정 때문이다. 그런데 AT&T는 이 걱정을 덜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게 바로 요즘 통신 시장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제로레이팅(zero rating)’ 서비스다.

■ 제로레이팅, FCC는 '건별 심사' 입장

제로 레이팅이란 통신사업자가 특정한 앱이나 웹서비스 이용에 사용되는 데이터에 대해 요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아주 적은 금액만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AT&T가 디렉TV 나우에 적용한 것이 바로 제로 레이팅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확립했다. 유선 뿐 아니라 무선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까지 ‘커먼캐리어’ 의무를 부과하는 초강력 방어막을 구축했다.

잘 아는 것처럼 망중립성 원칙의 핵심은 차별금지와 차단금지다. 급행료를 받고 특정 서비스를 우대하거나, 불이익을 가하지 못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그렇다면 AT&T가 디렉TV 나우에 적용한 ‘제로 레이팅’은 망중립성 원칙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디렉TV는 2년 전인 지난 2014년 AT&T 품에 안겼다. 한 눈에 보기에도 자사 서비스 우대 혐의가 짙어 보인다.

제로레이팅은 소비자들에겐 유리한 조치다. 데이터 걱정 없이 동영상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를 맘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로레이팅’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망중립성 규제 칼날로 부터 살짝 비켜나 있다.

망중립성의 차별금지와 차단금지는 이를테면 AT&T 같은 통신회사들이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사업자에게 ‘급행 서비스’를 이유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망위의 모든 콘텐츠는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반면 제로레이팅은 서비스 품질은 건드리지 않고 특정 서비스에 데이터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언뜻 보기엔 소비자들에겐 불리할 것 없는 제도다.

그러다보니 FCC도 제로레이팅에 대해선 전면금지를 하지 않고 있다. ‘건별로 심사’한 뒤 위법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방침만 세워놨다. FCC는 이달 초 이미 AT&T의 ‘제로레이팅 마케팅’에 한 차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 AT&T "스폰서 데이터 전략…소비자엔 이익"

다시 디렉TV 나우로 돌아가보자.

AT&T는 디렉TV 나우에 교묘하게 제로레이팅을 적용하고 있다. 자사 망에서 ‘데이터 공짜’ 서비스를 하기 위해 디렉TV로부터 일정액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이 서비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AT&T가 올초 도입한 ‘스폰서드 데이터(sponsored data)’ 서비스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 요금을 콘텐츠 제공 기업이 제공(스폰서)하는 제도다. AT&T는 이 제도가 적용되는 곳에는 ‘스폰서드 데이터’ 아이콘을 붙여놨다.

AT&T는 ‘제로 레이팅’ 서비스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때마다 “우린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항변해 왔다. 데이터 스폰서의 일환이란 얘기다. 디렉TV 나우의 제로레이팅 관련 비용을 디렉TV로부터 받고 있다는 게 AT&T의 주장이다.

AT&T는 '스폰서 데이터'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사진=AT&T)

하지만 디렉TV는 AT&T가 소유한 업체다. 한 쪽 주머니 돈을 꺼내어서 다른 쪽 주머니에 넣는 것에 불과하단 얘기다.

더 큰 부분은 따로 있다. AT&T는 최근 타임워너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두 회사 합병은 ‘수직적 결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독점 잣대로부터 자유로울 가능성이 적지 않다.

타임워너엔 HBO, 워너브라더스 엔터테인먼트, CNN 등 호화 콘텐츠 군단으로 구성돼 있다. ‘게임의 왕좌’ ‘배트맨’ 같은 인기 시리즈물이 바로 타임워너 산하 회사들의 작품이다.

이런 콘텐츠들에 ‘제로레이팅’을 적용할 경우 소비자들에겐 상당히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 AT&T로선 ‘코드커터’들을 대거 유인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트럼프 정부 출범 땐 망중립성도 위험

물론 제로레이팅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망중립성 원칙 자체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AT&T가 이 시점에 맞춰 ‘제로 레이팅’을 들고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란 분석이 가능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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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AT&T가 던진 ‘제로레이팅 폭탄’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까? 사실상 레임덕 상태에 들어간 FCC가 AT&T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까?

대통령 선거 이후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 IT 시장에 또 하나의 거대한 숙제가 던져졌다. 그 숙제가 어떤 쪽으로 해결되느냐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