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산업, '최순실 게이트 블랙홀'에 빠졌다

창조경제센터·빅데이터진흥·단통법 스톱 위기

방송/통신입력 :2016/11/16 13:55    수정: 2016/11/16 14:01

최순실 게이트가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젊은 스타트업 인재와 기술 지원을 위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예산 삭감 기조에 따라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졌으며,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빅데이터 산업 진흥책도 멈춰섰다.

아울러 국민들의 통신비 절감에 기대를 모았던 단통법 등 ICT 관련 법안이 국회 입법 심사 단계를 앞두고 정체되면서 산업과 소비자, 관련 기업 종사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예산 삭감·보류로 '휘청'

최양희 미래부 장관(오른쪽)이 박용호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으로부터 일자리 창출 계획과 성과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16일 ICT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내년 배정하려던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예산 20억원을 전액 삭감하기로 했다. 청와대 등 비선실세가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추진한 사업이라는 것이 서울시 지원 철회의 이유다.

전국 17곳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서울뿐 아니라 경기, 부산, 전북, 인천 등 곳곳에서 예산 삭감 또는 구인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시에서 지원해온 운영 예산뿐 아니라 정부 예산마저 삭감되는 추세여서 출범 1년 반을 맞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서 근무하는 직원뿐 아니라, 보육 혜택을 받는 스타트업들의 걱정도 크다.

지난 1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관련된 지역혁신생태계구축사업(472억5000만원) 예산은 보류됐다. 차은택 관련 업체가 지역센터 창립행사, 홈페이지 제작에 관여했다는 정황과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여야가 갑론을박을 벌였기 때문이다.

또 스타트업 등 창업자금지원사업(58억8000만원)도 유사, 중복 지원 문제로 20억원 삭감 결정이 내려졌다. 아울러 미래부가 요청한 창조경제기반구축사업은 상임위원회에서 절반 감액의견이 제시됐는데, 예결위 소위에서는 최순실 관련 의혹 등이 제기돼 심사가 보류됐다.

150억원 책정된 첨단융복합콘텐츠기술개발 사업 역시 ‘IT계 미르’란 이유로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밖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활용한 지역특화사업 활성화 지원 사업(145억6000만원)도 상임위에서 30억원 감액의견이 나왔는데, 예결위 소위에서 야당이 중복 문제를 제기해 보류됐다.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관련된 여러 의혹과 우려가 커지자 얼마 전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다른 나라들도 부러워 하는, 또 아직 연약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싹을 자르지 않기 바란다”며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정치적인 이슈와 관계 없이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4차 산업혁명 대응 ‘빅데이터 진흥법’ 중단

15일 국회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빅데이터 진흥법 공청회. 공청회는 배덕광 의원의 진술인 발제문 문제 제기로 열리지 않고 연기됐다.

4차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빅데이터 정보 활용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관련된 법안이 국회에서 제출됐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이마저 일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이 빅데이터 진흥법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진술인의 발제 자료가 정치적이란 이유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배 의원은 지난 15일 공청회 자리에서 “공청회 자료를 보니 한 진술인의 내용이 빅데이터와 무관한, 다분히 정치적 목적으로 읽힌다”면서 “이는 공청회 목적에 맞지 않는, 야당의 정쟁 시비에 앞장서는 것으로 국회 상임위를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진술인은 공청회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덕광 의원이 문제 삼은 공청회 자료 내용은 최순실과 끈이 닿아있는 청와대와 대기업의 합작품인 빅데이터법을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 핵심다.

빅데이터 진흥법은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이 발의한 ICT 대표 발의안 중 하나. 배 의원은 지난 5월말 20대 국회 개회와 동시에 해당 법안을 제출해 20대 국회 첫 ICT 관련법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빅데이터 진흥법 공청회 발제문.

개정안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3년마다 빅데이터 산업 진흥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정보통신 사업자가 비식별화된 정보에 한해 이용자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비식별 정보란 사용자의 신상을 추정할 수 없도록 익명처리한 것을 말한다.

빅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이유는 많은 양의 정보가 곧 돈이고, 기업과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벤처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쉽게 활용하고 부가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에 나섰다.

미래부는 지난 9월 한국정보화진흥원을 개인정보 비식별 전문기관으로 지정하고, 비식별 조치 및 기업 간 데이터 결합 등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비식별화된 정보를 활용해 기업들이 더 많은 수익과 가치를 만들어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였다.

또 이보다 앞선 5월 미래부는 규제개혁장관회의를 통해 빅데이터 분야 개인정보 규제혁신 방안을 마련하고, 7월 범부처 합동으로 ‘개인정보 통합해설서’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수 요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 빅데이터 산업 진흥책 역시 최순실 게이트로 입법 절차 과정인 공청회 단계에서 멈춰 서게 됐다.

■공영방송 공정성 논란, 109개 ICT법 발목

국회의사당.

최순실 사태에 늑장 보도한 공영방송의 공영성 논란이 더욱 커지면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이에 전체회의에 상정된 ICT 관련 109개 법안 전부가 법안심사 소위에 회부되지 못한 상태로 계류된 상태다. 지난 14일 국회 상임위원회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여-야 간사는 109개 법안 중 법안심사소위에서 우선 논의할 법안을 40개까지 추리는 데는 합의했으나, 공영방송 개선법에는 여전히 뚜렷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공영방송 개선법은 야 3당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이 지난 7월 공동발의한 법안이다. 공영방송 이사를 여당 7명, 야당 6명 등 13명으로 늘리고, 사장 임명 시 이사의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하는 사장위원회 설치와 특별다수제 내용 등이 핵심이다. 사실상 대통령과 여당에 기울어져 있는 공영방송 사장단 및 임원 인사권을 형평성 있게 재조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9일에 이어 15일 미방위 전체회의에서도 야당은 적어도 법안심사 소위 회부까지 가야한다는 주장을 펼쳤으나, 여당은 이에 대한 철저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여당은 공영방송 개선법에 대한 여-야 이견이 큰 만큼 더 많은 논의와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나, 야당은 이 같은 논의를 국회법에 따라 여-야 위원 5:5 구도인 법안심사 소위에서 하자는 의견이다.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미방위 전체회의. 최양희 미래부 장관, 최성준 방통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공영방송 개선법으로 여야가 극한 대결국면으로 치달으면서, 전체 방송통신 관련 법안 심사가 무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야당 측은 여당이 공영방송 개선법 심사를 거부할 경우, 나머지 법안도 논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방위 법안 심사가 파행될 경우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 ‘분리공시제 도입’, ‘선택약정할인율 상향(20%→30%)’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단통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도 늦어질 전망이다.

또한 미래부가 발의한 ‘요금인가제’ 폐지와, 알뜰폰 사업자 도매제공 의무를 2019년까지 3년 연장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IPTV 법을 폐지하고, 방송법 하나로 일원화하는 통합방송법의 국회 통과도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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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최순실 등 비선실세 개입 논란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까지 튀면서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5G 올림픽’ 마케팅을 준비하던 정부와 기업들의 홍보 마케팅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박홍근 의원은 “전체회의에서 법안심사 소위로 법안을 넘겨야 하는데 공영방송 개선법에 대한 여야간 입장차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법안심사 소위 자체가 열리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