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AI강자 비브는 왜 삼성을 택했을까

"삼성은 전자기기 최강…유비쿼티 최적 파트너"

홈&모바일입력 :2016/10/06 14:59    수정: 2016/10/07 18:2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삼성은 1년에 전자기기 5억 대를 출하한다.”

미국의 인공지능(AI) 전문업체 비브가 삼성에 전격 인수됐다. 인수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삼성이 AI 기업을 인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이 비브를 인수한 건 ‘모든 기기와 서비스를 아우르는 AI 기반 개방형 생태계’란 거대한 꿈과 관계가 있다. 삼성은 6일 비브 인수를 발표하면서 “비브 인수로 고객들에게 새로운 서비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용자 인터페이스를 단순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용자의 맥락을 잘 이해한 뒤 최적의 추천 서비스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란 비전이다.

그렇다면 비브는 왜 삼성을 선택했을까?

미국 인공지능 기업 비브 창업자인 다그 키틀로스가 자신들의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씨넷)

인수된 회사의 ‘선택 이유’를 묻는 게 뜬금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브는 시리를 만든 다그 키틀로스 등이 2012년 설립한 회사다. 특히 비브의 개방형 AI 생태계는 요즘 모든 기업들이 갖고 싶어하는 기술이다. 떠밀려서 인수되는 여느 기업들과는 사정이 다르단 얘기다.

잘 나가는 비브는 왜 삼성을 택했을까?

■ "삼성은 매년 전자기기 5억개 출하…유비쿼티 최적"

미국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가 이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해 키틀로스는 ‘유비쿼터스’란 말로 설명했다. 자신들의 기술이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대한 비전에 삼성이 최적의 기업이란 얘기다.

키틀로스는 “삼성은 매년 5억 대 가량의 전자기기를 출하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또 “최근 시장 흐름을 잘 살펴보면 지금이 (매각의) 적기이며, 삼성이 최적의 파트너다”고 강조했다.

이 말 속에서 삼성이 비브를 통해 뭘 하려는 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그림을 그려보기 위해선 시리와는 차원이 다른 비브의 탁월한 기술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브는 자연어를 이해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다. 개방형 플랫폼을 지향하는 점 역시 시리와는 다른 부분이다. (사진=씨넷)

키틀로스는 2011년 애플을 떠나면서 ‘시리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글을 썼다. 그는 또 “AI 시장에 캄브리아기 대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은 5억 여 년 전 다양한 생물의 화석이 갑자기 출현한 시기를 의미한다.

‘애플의 자랑’인 시리에 대해 시작에 불과하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비브는 어떤 기술력을 갖고 있는 걸까?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비브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상호연결적 속성. 잘 아는 것처럼 시리는 앱과 서비스 내에서 구동된다. 연계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한정돼 있는 시리와 달리 비브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들과 연동되며 복합적인 질문에도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차이는 따로 있다. 비브는 스스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사전 입력되지 않은 새로운 과업을 맞닥뜨리게 되면 최적의 솔루션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고 비브 측은 주장하고 있다.

이용자의 의도를 파악한 뒤 그에 맞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비브는 이를 ‘다이나믹 프로그램 생성기’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 구글, 애플 뿐 아니라 아마존까지 AI 비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구글이 하루 전 발표한 ‘구글 홈’은 아마존의 음성인식 비서인 ‘에코’ 대항마로 만들어진 기술이다. 애플, 구글 등은 주로 모바일 기기에 방점을 찍고 있는 기업이다. 그러다보니 스마트폰 같은 기기를 더 많이 팔기 위한 경쟁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 'AI 비서 →새로운 UI' 원대한 꿈 의기투합

하지만 진짜 전쟁터는 ‘스마트폰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마존이나 애플, 구글이 그리고 있는 궁극적인 미래는 사물인터넷(IoT)의 중심 허브가 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접근할 경우 스마트폰 성능 경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글로벌 강자들이 진짜 관심 있는 것은 거대한 사물인터넷 허브 역할을 할 스마트한 기기다. 그리고 그 핵심이 바로 인공지능 기술이다.

여기서 애플, 구글이 쉽게 따라잡기 힘든 삼성의 장점이 있다. 바로 ‘하드웨어 세계의 최강자’란 점이다.

삼성은 현재 스마트폰 점유율 1위 기업이다. 애플과 이 시장에서 다투고 있다. 하지만 애플과 달리 삼성은 가전 시장 전방위에 걸쳐 막강한 ‘실탄’을 보유하고 있다.

세탁기, 냉장고, TV를 비롯해 가정에 놓여 있는 웬만한 전자 기기 중 삼성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 제품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비브가 수 많은 글로벌 IT 강자 중 유독 삼성에 끌린 것도 이런 장점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에다 세계 최고 스마트폰 기업이란 점 역시 매력적인 요소였을 것이다.

(사진=씨넷)

삼성은 수 많은 자사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이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비브가 필요했다. 반면 비브는 자신들의 AI 기술을 차세대 IT 시장의 축으로 키워나가는 데는 삼성만한 파트너를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수되더라도 기술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 품에 안기는 쪽을 택하는 건 자연스런 행보일 것이다. 시리와 달리 비브가 ‘크로스플랫폼’ 제품이란 점 역시 이런 비전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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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선 테크크런치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삼성이 비브를 인수한 건 애플, 구글 등이 제공하는 음성인식 비서를 염두에 둔 게 아니란 것. 그보다는 스마트폰부터 냉장고, 가정허브 등을 아우르는 음성인식 기반 인터페이스 쪽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테크크런치의 분석이다.

결국 비브는 삼성의 이 거대한 비전의 두뇌 역할을 하는 쪽에 과감한 베팅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