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어드바이저로 퇴직연금 관리, 국내서도 통할까?

인터넷입력 :2016/09/25 13:16

손경호 기자

일반 자산관리보다 훨씬 적은 수수료로 안전한 자산에 투자하면서 예적금 보다는 높은 수익을 보장해 준다면 퇴직연금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국내외 로보어드바이저 업계가 퇴직연금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서만 606만명이 가입해 127조원 규모에 달하는 이 시장이 자동화된 알고리즘에 따라 분산투자를 통해 꾸준한 수익을 내는 로보어드바이저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미국에서는 웰스프론트, 베터먼트와 같은 회사들이 미국 시민들의 퇴직연금을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운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 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고액자산가가 아닌 일반 직장인들이 적은 수수료로 노후자금을 관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간-중위험-중수익 삼박자 맞아

왜 퇴직연금을 로보어드바이저로 운용하려고 할까? 가장 큰 이유는 중간 수준의 투자손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중간 이상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은 투자자들이 가장 안전하게 관리하고 싶어하는 자산이다. 그만큼 보수적으로 투자가 집행될 수밖에 없다. 국내서도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예적금이 51.1%를 차지하고 나머지를 보험(39.8%)을 찾는다. 로보어드바이저가 포함된 실적배당형 투자상품은 7.4%에 불과한 수준이다.

국내 퇴직연금제도는 크게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으로 나뉜다. DB형은 임직원이 퇴직할 때 마지막 3개월 임금에 12개월을 곱한 만큼을 지급한다면 DC형은 1년마다 임직원이 직접 자산을 배분해 운용해 수익을 내는 식이다.

임금이 꾸준히 오른다고 가정하면 DB형이 낫지만 그렇지 않거나 이후 임금피크제 등을 적용받아 퇴직 시점에서 임금이 낮은 경우에는 DC형으로 운용해 연간 운용수익을 챙기는 것이 좋다고 알려졌다.

문제는 저성장,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는 탓에 DB형으로만 운용해서는 더이상 퇴직연금으로 자산불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은행권 퇴직연금 적립액은 상반기 기준 64조6천212억원으로 이중 DC형 비율이 1조1천801억원을 차지했다. 여전히 대부분 임직원들은 퇴직연금으로 DB형을 선호하지만 전년 대비 늘어난 퇴직연금 적립액 1조2천480억원 중 DC형이 1조1천801억원 비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새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경우 DC형을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DC형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해도 퇴직연금을 운용하려는 임직원들에게 고민은 더 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짜서 나의 퇴직연금을 운용해야 안정적이면서도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는가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대목에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이 변동성이 작고, 꾸준히 투자했을 때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로보어드바이저가 퇴직연금을 운용하기에 적합하다는 의견이다.

투자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직장인들 입장에서 퇴직연금을 DC형으로 가입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지에 대해서는 감을 잡지 못할 경우가 많다.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활용해 여러가지 자산에 분산투자하면서 수익을 맞추는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여러가지 절차를 거치치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미국 차량공유서비스 회사인 우버는 베터먼트와 협업해 개인 사업자로 등록된 운전자들이 우버앱을 활용해 로보어드바이저 기반 자산관리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어니스트 달러라는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이 회사는 전통적인 퇴직연금 제도를 활용할 수 없는 소규모 사업장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은퇴자금에 대한 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로 굴리기, 아직은 사람개입해야...

국내서도 로보어드바이저를 퇴직연금에 활용하겠다는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활용하면서 수수룔 대폭 낮춘다기보다는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을 활용하되 사람이 투자하는 방식이다. 그만큼 투자자가 부담해야하는 수수료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AIM 이지혜 대표는 "제대로 된 로보어드바이저는 개념상 글로벌 자산배분을 통해 장기투자로 수익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퇴직연금과 궁합이 잘 맞는다"며 "퇴직연금은 성장하고 있지만 펀드나 주식시장에서는 계속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도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성장기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보어드바이저를 퇴직연금에 적용하려면 아직까지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이 로보어드바이저 회사인 쿼터백자산운용과 협업해 만든 '키움쿼터백 글로벌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는 이달 초 채권혼합-재간접 형태로 제공되는 퇴직연금 클래스를 우리은행을 통해 출시한 바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알고리즘을 활용하되 자산운용은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치는 방식이다.

최근 쿼터백자산운용 리서치센터 이승준 이사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퇴직연금 관리는 우리가 해야겠다고 해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레퍼런스를 쌓고, 다른 금융사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수익률도 잘 나오는 여러 조건을 만족시켜야 가능해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주체인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과 신뢰 관계를 쌓으면서 적절한 수익률을 낸다는 점이 증명돼야만 서비스가 보급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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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국내서는 여러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베드를 열어 투자자의 자산을 운용하는데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해 보는 단계라 퇴직연금을 아예 사람 개입 없이 자동화된 분산투자 알고리즘에 따라 관리하는 시점이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남아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 자산운용실 김진옥 부국장은 "현재 진행 중인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에서는 운용자산요건에 퇴직연금까지 포함해 테스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느 정도 알고리즘 등에 대한 검증이 되고 나면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여지는 있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