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프린터 사업 왜 팔았나

수익성 나빠진 비주력사업 정리…레이저 엔진 없는 HP에는 탁월한 선택

홈&모바일입력 :2016/09/13 13:20    수정: 2016/09/13 13:20

정현정 기자

삼성전자가 프린팅솔루션 사업을 글로벌 1위 프린터 업체인 미국 HP에 약 1조1천억원에 매각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HP 역시 삼성전자 프린터 사업을 인수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매각을 삼성전자와 HP 모두에 '윈윈' 사례로 평가한다. HP는 레이저 프린터 기술을 확보하며 A3 복합기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로서는 수익성이 낮은 비주력사업을 구조조정하는 효과를 거뒀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서초사옥에서 이사회를 열고 프린팅솔루션사업부를 HP에 매각하기로 결의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오는 11월 1일 프린팅솔루션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신설회사인 '에스프린팅솔루션'을 설립하고 1년 내에 이를 HP로 매각할 예정이다. 매각 대금은 10억5천만달러(약 1조1천500억원)다.

삼성전자 프린팅 솔루션 사업 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2조원으로 국내 수원사업장과 중국 생산거점, 해외 50여개 판매거점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외 종업원 수는 약 6천여명이다.

■삼성-HP 프린터 빅딜양사에 '윈윈' 평가

삼성전자 프린터 사업은 레이저 중심이다. 특히 A3 복합기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잉크젯 프린터 경우 핵심 부품인 엔진을 보유한 회사가 HP, 엡손, 캐논, 브라더 정도의 불과해 선두권 진입이 애초에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잉크젯 프린터 엔진을 HP로부터 공급받아왔다.

반면 HP는 잉크젯 프린터가 주력이다. 레이저 프린터 엔진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 않아 전량 캐논에서 공급받고 있다. 삼성전자 프린팅솔루션 사업을 인수로 HP는 삼성전자의 레이저 프린터 엔진 기술을 확보하게 되면서 약점으로 꼽혔던 레이저 분야 경쟁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HP는 레이저 프린터 기술 확보와 동시에 복사기 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무환경 변화로 기업의 문서출력 환경이 기존 아날로그 복사기에서 디지털복합기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A3 레이저복합기 제품군을 바탕으로 기존 캐논, 제록스, 리코, 코니카미놀타 등 일본 업체들이 장악했던 복사기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됐다.

디온 와이슬러 HP 프린터 사업부 사장은 "삼성 프린터 사업부 인수를 통해 프린트 혁신을 일구고 압도적인 효율성과 보안성, 합리적인 가격대에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할 것"이라면서 "그동안 3D프린팅 기술과 12조 달러 규모의 제조 업계 혁신을 이룬 것과 같이 이번에는 550억 달러 규모의 복사기 시장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효과를 보게 됐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꾸준히 석유화학과 방위산업 등 비주력 부문을 정리하며 전자·금융·바이오를 세 축으로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그동안 프린터 사업과 함께 카메라, 발광다이오드(LED), 의료기기 등이 비주력 사업군으로 꼽혀왔다.

프린팅솔루션 사업부의 경우 스마트폰 보급으로 PC 수요가 위축되면서 소비자용 프린터 판매량이 크게 감소하고, 기업에서도 전자결재시스템 확산 등 업무환경 변화로 프린터 수요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는 비정품 무한잉크 판매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수익성이 더욱 악화되는 상태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매각 결정으로 삼성전자는 선제적 사업조정을 통해 핵심사업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HP는 세계 1위 프린터 업체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삼성' 브랜드로 계속 판다

삼성전자는 프린팅 사업을 HP에 매각한 후에도 국내에서 삼성전자 브랜드로 프린터 판매를 대행하기로 합의했다. 국내에서는 삼성 프린터 브랜드가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한국 시장만 놓고보면 오히려 삼성 프린터가 그동안 열세였던 잉크젯 분야까지 확장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고 업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프린터 시장 약 60%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로 프린터 시장에 합류했지만 낮은 가격과 편리한 서비스를 앞세워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또 다른 외국계 업체들과 달리 부산경남과 광주전남 등 특정 지역을 하나의 총판 업체에 일임하고 이를 통해서 모든 제품을 판매하는 지역총판제를 실시하면서 유통망에 많은 투자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HP나 캐논, 엡손과 같은 외국계 업체의 경우 복수의 전국 총판 채널과 위탁 계약을 맺고 다시 대리점을 통해 판매하는 형태로 영업을 진행한다.

HP는 글로벌 1위 프린터 업체지만 국내에서는 점유율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HP는 국내 시장에서 약 4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삼성전자의 세가 계속 커지면서 현재는 3위 정도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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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프린터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 레이터 프린터만 놓고보면 현재 약 12개 업체가 경쟁하는 형국이다. 시장 규모도 작지 않다. 삼성전자와 HP는 올해 초부터 매각 협상을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도 몇 달 전부터 양사의 움직임을 주목해왔다.

한 업계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서비스와 저가 공세를 앞세워 빠르게 한국 프린터 시장을 장악해왔다"면서 "한국 소비자들이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프린터를 구매하는 만큼 국내에서는 오히려 삼성 프린터 잉크젯 라인업을 늘리는 형태로 사업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