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7, 이어폰잭을 꼭 없애야 했나

유무선 과도기 흐름…"폐쇄적 정책" 비판도 많아

홈&모바일입력 :2016/09/08 17:03    수정: 2016/09/09 17:59

소문 그대로였다. 애플이 7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에서 공개한 아이폰7에는 이어폰 잭이 없었다.

아이폰7에서 이어폰 잭이 사라질 것이란 소문이 나온지는 꽤 됐다. 아이폰6S가 한창 팔리던 지난 해 말부터 중화권 지역의 애플 부품 공급 협력사 사이에서 조금씩 거론됐다.

애플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란 시선을 받던 회사다. 업계 표준을 따르기보다 자기 중심으로 이끄는 것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표준을 무시한다는 인상도 많이 남긴다.

신제품을 두고 이 정도로 루머에 휘말리는 회사는 애플 외엔 찾아보기 힘들다. 연간 단위 신제품 발표를 이어가는 만큼 지난 1년 동안 변한 IT 세상을 대변하고, 다음 1년을 선도해야 한다는 의무가 내려지기도 했다. 호기심이 회사의 의무가 됐고 소비자의 기대하는 부분으로 모아졌다.

그럼에도 루머는 루머다. 온갖 기대와 호기심으로 만들어진 루머를 두고 소비자들이 일희일비하는 경우는 드물다. 루머 만으로 지갑을 여는 소비자는 없다. 어차피 직접 물건을 사야할 때는 회사의 공식 발표 이후다.

반면 아이폰에서 이어폰잭을 없앤다는 이야기는 신제품 공식 발표가 한참이나 남았지만 이미 결정된 일로 여겨졌다. 결국 올해 1월 해외에서 차기 아이폰의 이어폰잭을 없애지 말라며 온라인 탄원서가 나오고 서명 운동까지 벌어졌다.

■ 결국 사라진 아이폰 이어폰잭

애플은 7일 행사에서 그 소문이 사실이란 걸 확인해줬다. 야심차게 발표한 아이폰7과 아이폰7플러스는 이어폰잭이 빠져 있었다. 대신 이어폰잭 젠더와 충전단자인 라이트닝포트로 연결해 듣는 번들 이어폰 ‘이어팟’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일각에선 아이폰7의 무선 기능이 돋보인다고 한다. 필립 쉴러 애플 월드와이드 마케팅 수석부사장도 “오디오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선견지명을 갖고 있다”며 무선 기능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유선 이어폰을 포기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번들 이어폰은 라이트닝포트에 꽂아쓰는 방식이다. 무선 이어폰이라는 ‘에어팟’은 별도 판매다. 기존 이어폰 이용자를 위해 애플답지 않게 젠더를 기본 제공하는 배려도 보였다. 아이폰도 아직은 유선 이어폰 중심이란 뜻이다.

애플 외에도 이어폰잭을 없애려는 시도는 많다. USB 타입-C 포트로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아날로그 신호를 주고 받는 3.5파이 이어폰잭보다 디지털 신호를 주고 받는 단자를 통해 더 많은 기능을 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역시 유선 방식이다.

■ 애플을 대신하는 변명 “이어폰잭은 너무 크다”

당장 아이폰에서 한번 빠진 이어폰잭이 되돌아 올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애플이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밀어부친 움직임이라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더욱 얇고 가벼우면서, 훨씬 더 많은 기능을 갖춰야 하는 스마트폰 시장의 치열한 경쟁 탓도 있다. 필립 쉴러 부사장도 이어폰잭이 차지하는 공간(footprint)을 지적했다. 그는 “한가지 이유로만 쓰는 커다란 아날로그 잭은 맞지 않는다”고 꼬집어 말했다.

3.5파이 이어폰잭이 아이폰 안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줄여 다른 기능을 넣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이를 무선으로도 대신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폰6S에서 이어폰 잭이 차지하는 공간

이어폰잭은 지름이 3.5mm다. 때문에 음향업계에서 3.5파이 잭이라고 부른다. 밖에서 볼 때는 3.5mm 두께의 작은 구멍이지만, 기기 내부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생각보다 크다. 최소로 줄여도 3.9mm 이하로 줄이기 쉽지 않다고 한다.

또 아날로그 신호가 디지털로 바뀌는 과정 중에 생기는 생길 수 있는 전파 간섭 때문에 차폐막으로 둘러싸인다. 그만큼 부피가 더 커진다는 뜻이다.

이어폰잭은 이런 부피 때문에 이용자들이 느끼는 쓸모만큼 대접을 받지 못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어폰잭은 스마트폰 상단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셀프카메라 촬영 등 카메라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면 카메라 모듈이 차지하는 공간과 조도 센서 등의 자리에 밀려 최근에는 대부분 스마트폰 하단으로 옮겼다. 충전 단자 옆에나 자리를 잡으라는 것이다.

■ 무선 이어폰 성장세가 이어폰잭을 밀어냈나

무선 방식의 이어폰만 쓴다면 이어폰잭은 필요 없다. 스마트폰에는 무선 통신을 지원하는 칩셋 하나만 두면 되고, 이어폰에는 별도 전원이 필요한 배터리와 안테나를 갖추면 된다. 제품 설계 방식만 보면 훨씬 간편한 것은 맞다.

제품 설계 뿐만 아니라 이용자 측면에서도 편의성이 뛰어나다. 선이 없다는 점은 활동성 면에서 충분히 이점이 있다. 실제로 한때 무선 이어폰은 국내에서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달 직종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쓰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내 음향업계에 따르면 신규 판매되는 모바일 오디오 제품군의 40% 가량이 블루투스 기반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시장의 트렌드다. 열에 넷은 블루투스 이어폰이나 오디오를 산다는 것이다.

북미 시장은 국내보다 더 급진적이다. 현지 시장조사업체 NPD의 보고서를 보면 올해 상반기에 미국에서 팔린 이어폰과 헤드폰 가운데 블루투스 기반이 매출 비중 54%를 차지했다.

애플이 무선 이어폰으로 돌아설 충분한 이유는 있었다는 것이다.

음원을 무선으로 전송할 경우 데이터 압축 과정을 거치며 원음 손실이 발생한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고음질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수준에 만족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음원 재생 기기 시장이 있고, 휴대용 앰프가 적지 않게 팔리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에어팟의 국내 공식 판매가는 21만9천원. (사진=애플코리아 홈페이지)

■ 무선 이어폰이 최선일까

그럼에도 아이폰7 공개 첫날, 이어폰잭이 사라진 점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선 이어폰을 꺼리는 이들이 여전히 많고, 기존 이어폰을 쓰려면 젠더를 거치는 불편이 생겼기 때문이다.

애플이 자체 개발한 무선 이어폰 ‘에어팟’은 이같은 불만을 폭증시키는 모양새다. 보청기처럼 귓불 안에만 두는 무선 이어폰과 달리 에어팟처럼 축 늘어진 귀걸이 모양을 양쪽으로 끼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품 디자인이야 소비자 개인의 취향 문제에 달린 문제지만, 에어팟의 국내 공식 판매가 21만9천원을 두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에어팟보다 싼 스마트폰도 나오는 마당이다. 아무리 음질이 뛰어나도 20만원대 무선 이어폰을 사려는 이들도 별로 없다.

에어팟에 자체 설계 W1 칩셋을 탑재한 점을 두고도 폐쇄적인 액세서리 움직임이란 지적이 나온다. 에어팟 외에 애플이 인수한 비츠오디오를 통해서도 아이폰 전용 무선 이어폰이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무선 전송 방식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블루투스를 외면하고 자체 설계 칩셋을 따르라는 것을 두고 써드파티 액세서리 업계의 볼멘소리도 벌써 나오고 있다.

아이폰7이 무선 이어폰 시대를 열었다기 보다 과도기적인 제품이 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무선 이어폰도 내놓고, 기존 유선 이어폰도 지원하고, 새로운 방식의 유선 이어폰을 번들 제공하는 것을 보면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우리가 정답이라는 애플의 자신감 또는 자만감

애플의 신제품 발표가 끝난 뒤, 월터 모스버그 기자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유독 눈길을 끈다. IT 기자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와 가장 가까운 언론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모스버그 기자는 스티브 잡스와 무선 이어폰을 두고 다퉜던 일화를 짧게 전했다. 잡스가 “당신은 아직도 충전을 해야 하는 기기를 더 갖고 다니길 원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는 것이다.

고인이 떠난지 5년이나 지나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일단 애플은 끝내 자신들의 방식으로 밀고나갈 회사다. 예년보다 판매량이 소폭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와도 아이폰 시리즈는 글로벌 시장에서 단일 모델로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이다. 두 해만 지나도 시중에 1억대가 넘는 아이폰이 깔린다.

애플 자체가 플랫폼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회사의 자체 플랫폼에 종속됐으니 아이폰 이용자는 애플이 추구하는 방식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다만 애플의 자체 플랫폼일 뿐, 모든 IT 기기 소비자가 애플의 방식만을 쫓지는 않는다. 아이폰을 구입하더라도 아이폰만을 위한 기기를 구입하려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아이폰7에 포함된 기본 제공 이어폰인 라이트닝포트 이어팟은 아이폰이 아니면 어디에도 쓸 수 없는 물건이 된다. 번들 이어폰이라고 공짜로 여기지만 아이폰 값에 모두 포함돼 있다. 다시 사려고 하면 3만8천원을 들여야 한다. 즉, 결코 싸지 않은 이어폰이지만 아이폰에만 쓰고 다른 기기에는 못쓰는 상황이 된다.

이어폰잭만 보더라도 아이폰은 이미 웃지못할 사연을 남기기도 했다. 이어폰잭에 꼽히는 단자는 일반적으로 3극으로 나뉜다. 전원을 공급하는 극단자와 좌우로 아날로그 음원 신호를 전달하는 극단자 두 개다. 여기에 마이크와 통화나 음원 재생 버튼을 갖춘 이어폰은 4극 단자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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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4극단자는 업계에서 표준으로 삼는 순서가 있었다. 하지만 애플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아이폰 이어폰은 극단자 순서가 달라 기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쓰던 이어폰으로 조작이 되지 않은 것이다.

국내 시장 특성상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점 때문에 유독 이용자 불편 사례가 많았다. 2011년 전후로 ‘아이폰 전용 이어폰’, ‘갤럭시 호환 이어폰’이란 문구가 액세서리 매장마다 붙어있던 이유다. 실제 포장을 뜯어 환불이 안된다는 점을 두고 소비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