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허문 4차혁명, 역차별부터 없애야

[4차산업혁명, 규제 개혁부터-③] 인터넷-콘텐츠

인터넷입력 :2016/09/06 13:39    수정: 2016/09/07 10:47

남혁우, 임유경, 황치규 기자

“과연 한국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넷플릭스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국내 인터넷, 콘텐츠 얘기를 할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나올 때마다 따라다니는 대답이 있다.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열린 기업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답변이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테크놀로지가 사회의 기반까지 뒤흔들고 있는 시대엔 더더욱 창의적인 인재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야를 국가 전체로 넓혀도 똑같이 적용된다. 산업시대, 개발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각종 규제가 엄존하는 한 개별 기업 차원의 창의력 발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요즘 같은 4차산업혁명 시대엔 그 부분이 더더욱 중요하다. 잘 아는 것처럼 4차산업혁명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산업의 기본 틀을 뒤바꾸는 획기적인 변화 바람이다.

유튜브

그 밑바탕엔 인공지능(AI)과 무선 인터넷, 사물 인터넷 같은 신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4차산업혁명이 위력적인 건 변화의 속도와 범위다. 그런만큼 인터넷과 방송, 게임 같은 영역에선 사실상 국경이란 개념이 무의미한 상황이 되고 있다.

과연 한국은 이런 격랑을 몰고 올 4차산업혁명에 맞설 준비가 돼 있을까? 쉽게 그렇다는 대답을 내놓기 힘든 상황이다.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전통적 규제 때문이다.

인터넷-플랫폼 과도한 규제, 국내업체 역차별

인터넷 영역에선 오히려 국내업체들을 옥죄는 역차별이 큰 걸림돌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정부 규제가 서버를 한국에 둔 국내 회사들에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해외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서비스를 하게 된다. 수년째 이슈가 되고 있는 역차별 논란이다.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역차별까지 받게 되면서 경쟁력 발휘가 더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난 2009년 도입된 제한적 본인 확인제다. 이 제도가 국내 업체들에만 적용되면서 해외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들이 국내 시장에 쉽게 안착할 수 있었다.

올해 통과된 테러방지법 역시 국내 업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해외 서비스를 쓰는 사용자가 늘 것이란 국내 업체들의 우려는 우려로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찬반 여론이 팽팽했던 테러방지법을 반대한 이들 다수가 인터넷 서비스에 친숙한 이들"이라며 "이들이 해외 서비스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지난 8월 8일 국회의원회관서 열린 구글 공간정보 국외 반출 관련 정책 토론회.

최근 불거진 구글의 국내 지도 데이터 반출 공방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반대 입장을 강하게 드러냈던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구글처럼 자본력이 있는 회사면 국내 제도 아래서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구글이 국내 제도를 따르는 걸 수용하지 않는 것에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해외 업체들의 매출과 세금 관련 문제도 이슈로 떠올랐다.

이런 관점에서 우려스러운 행보 중 하나는 플랫폼 중립성 적용 움직임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포털, SNS 등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을 규제할 수 있는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플랫폼 중립성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다. 플랫폼 중립성이란 포털 업체 등이 다른 콘텐츠 등 사업자들에게 차별 없이 플랫폼을 제공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망중립성을 넘어 플랫폼 중립성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그런 만큼 해당 업체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방통위가 규제 대상이 아닌 인터넷 서비스들을 규제의 틀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 아니냐?"면서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업체들에겐 부담스러운 규제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4차산업혁명의 거센 파고에 제대로 맞설 수 있도록 격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런 부분은 새로운 서비스는 가급적 허용하되 꼭 안 되는 부분만 명문화하는 ’네거티브 규제’란 대의와도 크게 어긋나는 조치란 지적도 적지 않다.

페이스북 360도 사진 (사진=씨넷)

■플랫폼, 이중규제 예사...OTT 규제 도입도 '폭풍의 핵'

이런 상황은 방송 콘텐츠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국내 방송 콘텐츠 시장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레드 같은 글로벌 사업자들이 호시탐탐 영역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인터넷과 방송의 경계마저 허물어지고 있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방위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새로운 방송콘텐츠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업자들의 '의지'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려면 가입자 기반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방송 사업자의 규모를 묶어 두는 각종 규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방송법에서 방송 지분 규제와 합산규제를 명시하고 있는 점이다. 현행 방송법은 지상파, 케이블TV, 위성방송이 서로의 주식 또는 지분을 33%를 넘어 소유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리드 헤스팅스 넷플릭스 CEO

IPTV법에 적용을 받는 IPTV는 예외지만 통합 방송법이 시행되면 같은 제한을 받게 된다. 또 가입자 점유율에 대한 제한인 ‘합산규제’도 존재한다.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시장에서 한 사업자가 점유율 33%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한 규제다.

이런 규제가 살아 있는 한 규모의 경제를 갖춘 방송사업자가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정의당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이 미래부에서 받은 유료방송 발전방안 연구반 회의록에 따르면 연구반은 '지분율규제와 합산규제가 이중규제의 우려가 있으므로 지분율 규제는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놓아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반면, 산업 성장 속도는 둔화되고 있다고 보고 유료방송 시장의 전체 규모를 키우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유료방송발전방안'을 연내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반을 구성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중이다.

업계는 대체로 지분율 규제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지분율규제가 없어지면 IPTV사업자와 케이블TV사업자 간 M&A뿐만 아니라 케이블TV 사업자들 끼리 M&A도 추진 가능해진다.

한 방송분야 전문가는 “방송콘텐츠 시장은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 방송 사업자들은 글로벌 사업자들에 대응하기에 규모가 너무 작다”며 "시장의 성장을 막는 인위적인 장치는 없애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인터넷기반방송서비스(OTT:Over The Top)에 대한 법제화를 검토하고 있는 부분 역시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유료방송발전방안 연구반은 OTT 서비스가 현재 방송법, 전기통신사업법 모두 해당하지 않아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지난 8월 29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유료방송산업 정상화를 위한 정책토론회’ 장면.

지난 2014년 정부는 OTT 서비스에 대해 네거티브, 최소, 자율규제 원칙을 세웠다. 당시 미래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중소기업청은 공동으로 '스마트미디어 산업 육성 계획'을 마련하고 제3회 정보통신 전략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했다. OTT를 방송서비스로 볼 수 있지만, 당분간 OTT를 진흥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방송과 같은 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후 2년이 흐르긴 했지만 여전히 국내 OTT산업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상태다. 여전히 OTT서비스들이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 각종 심의규제의 대상으로 삼았다가는 이제 막 시작하는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규제로 인해 위기에 몰린 국내 게임 시장

게임 쪽은 이미 글로벌 강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은 이미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외산게임이 점유하고 있다. 특히 신작 게임은 점유율 순위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강세인 모바일 게임 시장 역시 중국 등 외산 비중이 늘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는 이러한 부진의 이유로 정부의 게임 산업 규제가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다. 최근 들어 완화 움직임이 보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강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엔 확률형 아이템 규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업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가 자율 규제로 진행 중인 각각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셧다운제,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강제적으로 진행하면 이러한 규제가 없는 국가에게도 불이익을 제공하는 등 원활할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발 과정과 비용 역시 증가하는 불이익일 발생하기 때문이다.

셧다운제

이런 규제 움직임의 밑바탕에는 게임을 유해한 행위로 보는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게임 업계에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에 규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대중의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국회의원 출마 전 간담회에서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규제 외에도 최근 웹보드게임 월간 구매한도를 월 50만 원으로 상향한 것에 이어 지난달 웹보드게임의 직접 충전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등 완화 정책도 함께 펼치고 있다. 셧다운제 역시 폐지 또는 선택적 셧다운제로의 변화도 고려를 논의 중이다.

이를 통해 관련 업계에서는 지난 2014년 베팅 및 결제 한도를 제한하는 규제로 인해 70%가량 급감했던 관련 게임 매출이 소폭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결국 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규제가 완화된 것일 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엔 여전히 불리하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유병준 교수는 "웹보드 게임의 금액의 상한선을 올렸다는 것은 사실 다른 국가에는 없는 제한을 높인 것이다. 그나마 낫기는 하겠지만 실효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본다."며 "중국은 해외 업체는 규제가 없는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후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 비하면 국내는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 결국 중요한 건 인식의 전환

물론 이런 규제들이 4차산업혁명과 더불어 대두된 이슈는 아니다. 그 이전부터 계속돼 왔던 규제들이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이런 ‘불필요한’ 규제는 더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중국 같은 나라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노골적인 차별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도 구글, 페이스북 같은 미국 기업들을 규제하기 위해 강력한 보호망을 펼치고 있다.

언뜻 보기엔 보호무역 조치에 가까운 이러한 행보는 4차산업혁명이란 관점에서 바라보면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다. ‘평평해진 세계’에선 경쟁력 떨어지는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도한 보호 조치는 오히려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 국내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을 염두에 두더라도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 받는 상황에 대해선 좀 더 면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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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혁우, 임유경, 황치규 기자firstblood@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