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인터넷은행 ‘골든타임’ 놓치나?

[4차산업혁명, 규제 개혁부터-②] '은산분리' 규제

방송/통신입력 :2016/09/05 14:34    수정: 2016/09/05 15:31

금융 혁신의 선봉장이 될 인터넷전문은행이 올 연말 출범을 앞두고 있다. K뱅크는 이달 말, 카카오뱅크는 11월 중 본인가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두 회사는 금융위원회 본인가가 떨어지는대로 곧바로 서비스에 나설 방침이다.

업체들의 움직임만 보면 늦어도 내년초엔 인터넷전문은행시대가 활짝 열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못하다. 산업자본의 금융시장 진입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은산분리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IT 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두 회사는 은행법 개정 작업에 관계없이 일정대로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은산분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은 불가능할 것이란 우려가 힘을 얻고 있다.

■ 힘겹게 내디딘 첫발, 의외의 복병 만나 '흔들'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은행법 개정안이 20대 국회에 재발의된 상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분야의 대표적인 혁신으로 꼽힌다. 정교한 신용평가와 중금리 대출로 고객군을 차별화할 뿐 아니라 비대면 종합은행을 구현할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은행업무를 볼 수 있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해외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국내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하기까지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통 금융 산업을 기준으로 한 규제 때문이었다.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논의는 지난 2008년 처음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엔 ‘최저 자본금 규제’와 비대면 거래를 제한하는 ‘금융실명제’ 등의 장벽에 막혀 무산됐다.

그러나 2014년 7월 금융위가 금융 규제개혁 방안으로 인터넷은행 설립 허용을 제안하고 개혁 과제를 발표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같은 해 11월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은산분리 문제를 언급했고, 한 달 뒤 금융발전심의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중장기 정책 방향이 수립됐다.

이후 금융위가 TF를 꾸리면서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에 가속도가 붙었다. 특히 지난해 3월 임종룡 금융위 위원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은산분리 일부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질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본격 출범하면 보다 편리하고 다양한 서비스가 실현된다.

덕분에 KT, 인터파크, 카카오, SK텔레콤, 500V 등 여러 곳이 컨소시엄 형태로 인터넷전문은행 참여 의사를 밝혔다. 결국 금융위는 지난해 11월 카카오뱅크와 K뱅크 컨소시엄 두 곳에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내줬다. 현재 K뱅크와 카카오뱅크는 현재 본인가 신청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렵사리 꿰 맞춘 혁신 고리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전문은행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하다. 산업 자본과 금융 자본의 흐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낡은 은행법 때문이다.

현행 은행법 제16조 2항에는 산업자본이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자본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산업시대엔 금융산업에 대한 중요한 안전장치였다. 산업자본이 금융까지 장악할 경우 심각한 독점 상태를 초래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서 ‘거추장스러운 옛 규제’로 전락했다. 어쩔 수 없이 산업자본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인터넷 기업들의 금융 서비스를 막는 족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행법대로라면 산업자본인 KT, 카카오는 K뱅크와 카카오뱅크 지분을 10%(의결권 지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경영권을 행사하기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두 회사는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을 꾸리면서 은행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컨소시엄 내 지분 비율을 법이 허용하는 50%까지 높여 최대주주로 올라설 계획이었다.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 전인 지난해 8월 당시 카카오 대표였던 최세훈 최고재무책임자는 “은행법이 바뀌게 되면 일반 기업도 훨씬 더 많은 지분을 갖는 구조가 될 텐데, (카카오가) 최대주주가 되는 걸 가정하고 파트너십을 짜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카카오뱅크의 카카오 지분은 법적 최고 상한선인 10%(의결권 주식 4%)에 막혀있다. K뱅크 역시 19개 업체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참여중인데, 대주주 역할을 하게 될 KT의 지분은 8%(의결권 주식 4%)에 불과하다.

알리페이 홈페이지. 해외에는 은산분리 규제가 없거나, 유연하게 적용되고 있다.

■ 사업시작 코 앞인데 은행법 개정은 지지부진

은행법 족쇄에 묶여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정부나 국회의 행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은행법 개정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발의 됐다가 불발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새누리당 강석진 의원과 김용태 의원이 재발의해 국회 논의 절차를 밟을 예정이지만 법안 통과 여부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지분을 최대 50%까지 허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해 일부 야당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은산분리에 반대하는 건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통산업시대엔 이런 우려가 일정 부분 타당한 측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과 금융이 융합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산업시대의 잣대로 새로운 서비스의 앞길을 막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금융권의 반발도 무시못할 요소다. 이들 중 일부는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존 금융 시장을 해할까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안효조 K뱅크 준비법인 대표는 최근 열린 사업추진현황 설명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 산업 혁신의 주체인데, 은행법에 나온 4% 의결권으로는 안정 경영을 위한 유상증자를 하기 어렵다”며 “현행법 대로라면 인터넷전문은행도 실권을 은행들이 가져갈 수 있고, 금융사들이 주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박소영 핀테크포럼 회장은 “정통 은행은 기존 방식을 유지하더라도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전세계 시장에서 국내 핀테크 산업이 뒤쳐진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설립까지 빠르게 진행된 만큼 기존 금융권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탄생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정치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협동사무총장은 “현행법대로 진행됐을 때 인터넷전문은행이 소비자 이용후생을 증대시키기에는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발의된 법안 내용들을 전적으로 찬성하기 어렵겠지만 기업들의 지분율을 어느 정도 상향해 주고,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때 규제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역설했다.

"해외는 열여주는데"...뒤처진 금융혁신

은행 전문매체 뱅커스에 따르면 전세계 94개국 국가 중 한국의 은행 순위는 83위다.

우리가 은산분리에 묶여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 해외 주요국가들은 일찌감치 제도를 허물고 신금융 산업육성에 나선 상태다.

대표적인 게 미국이다. 한국처럼 엄격한 은산분리 규제가 살아 있는 미국은 산업자본 유입을 위해 최대주주가 아닐 경우 지분을 25% 미만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산업자본의 은행주식취득제한에도 불구하고 ‘산업대부회사(ILC, Industrial Loan Company)’ 제도를 마련해 7개 주에서 ICT 기업 등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소유를 허용하고 있다.

유럽은 ‘EC 제2차 은행업 지침’에 따라 ICT 기업 등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10%, 20%, 33%, 50% 지분을 초과할 때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 산업자본의 금융사 지분 확보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00년 ‘비금융 기업 등 타 분야의 은행업 진출 면허심사 및 감독지침’에 따라 ICT 기업 등 산업 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일본내 인터넷전문은행 6곳 중 4곳이 ICT 기업이 대주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도 산업과 금융자본 여부에 상관없이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30%까지 보유할 수 있다. 마이뱅크의 경우 알리바바와 푸싱그룹이 55%의 과반 지분을 소유해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외국계 산업자본만 기업 당 20% 내로 지분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국내 인터넷전문은행은 핀테크 바람이 불면서 금물살을 타기 시작해, 지난해 11월 금융위가 예비인가를 냈다. K뱅크는 9월 말 본인가를, 카카오뱅크는 11월 본인가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서강대학교 이석근 교수는 K뱅크 설명회에서 “은산분리나 금산분리 규제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규제가 제거된다고 해서 5~6년의 차이를 당장 쫓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철폐가 전제돼야 쫓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비롯한 금융혁신이 왜 중요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시장 흐름이 그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트너와 엑센추어 등 시장조사기관들에 따르면 핀테크 글로벌 시장 규모는 보수적으로 봐도 2013년 300조원에서 2017년 800조원으로 전망된다.

현재 글로벌 핀테크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꾀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정책지원을 등에 업은 영국이 앞서 나가고 있다. 중국도 지난 5년 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알리페이는 결제 편의성을 기본으로 잔고 부족 시 신용지불도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일거래 8억건, 신용대출 80조원의 거래량을 기록하고 있다. 또 위뱅크를 통해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한 텐센트 역시 국영은행들이 대기업 위주의 대출에 집중할 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중심 대출에 집중하며 관련 시장을 키워나가고 있다.

독일의 피도르 은행은 소셜미디어를 접목해 페이스북을 이용한 금리 인하 서비스를, 2009년 설립된 미국의 인터넷전문은행 앨리뱅크는 GM과 연계한 오토 파이낸싱, 일본의 최대 인터넷전문은행인 SBI와 다이와 넥스트뱅크는 인터넷뱅킹을 매개로 증권 계열사 계좌 개설이나 교차 판매를 통해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석근 교수는 “전문매체에 따르면 국내 은행은 전세계 94개국 중 83위를 차지할 만큼 건전성과 수익성이 매우 낮다”며 “선진국 대비 5~6년 뒤쳐진 국내 은행산업의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 기본 틀 바꿀 인터넷은행, 어떻게 될까

모바일금융비서 예시 화면.

기존 은행들은 고객들의 금융 거래 내역을 통해 신용평가를 하고, 기본적인 고객 정보로만 상품을 기획하고 제공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은 고객의 기본 정보뿐 아니라, 생활 패턴과 취지, 주요 관심사와 각종 결제 내역 등을 통해 보다 정확한 고객 니즈 파악과 신용평가가 가능하다. 이에 개인별로 최적화된 상품과 각종 혜택을 제공해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특히 인터넷전문은행들 모두 기존 저금리 또는 고금리 대출만 가능했던 시장에 중금리 대출 시장을 본격 열어 소비자 후생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보다 정교한 신용평가를 통해 가능하다.

또 기존 금융 소비자들은 혜택을 이자나 경품 위주로 받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 고객들은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들이 가진 각종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부가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가령 K뱅크 고객들은 ‘지니’ 음악 상품권을, 카카오뱅크 고객들은 ‘멜론’ 음악 상품권을 이자처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비용효율화를 통한 금리 우대나 높은 이자 등 소비자 혜택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기존 은행처럼 정해진 업무 시간에 은행을 찾아가 계좌를 개설하는 등 은행 업무를 볼 필요 없이 모바일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쉽게 각종 은행 업무가 가능하다. 현재 은행들도 현재 모바일 인터넷 뱅킹 등을 통해 유사 서비스를 이미 제공하고 있지만, ICT 기업들의 특장점을 살린 보다 고객 친화적인 서비스들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안효조 K뱅크 준비법인 대표는 “인터넷은행은 핀테크 산업의 총아”라면서 “인터넷은행은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불가결한 사업이다. 인테넷전문은행이 금융 혁신의 메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제 환경의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상황이 이런만큼 인터넷전문은행이 제대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그건 본인가를 앞둔 두 기업 뿐 아니라 한국 금융 혁신의 초석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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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K뱅크 준비법인은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하거나 빼낼 수 있는 일명 ‘모듈형 코어뱅킹’ 시스템을 구축하고 통합테스트 중인 상태다. 이달 말 본인가를 신청, 연말부터 본격 영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카카오뱅크 역시 인터넷전문은행으로서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으며 11월에 본인가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의 본인가가 결정되면 6개월 이내에 본 서비스를 시작해야 하는 만큼, 카카오뱅크의 첫 공식 업무는 내년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