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엔 묻지마 투자 없다"

신혜성 와디즈 대표 "기업들 소액 투자자 선호"

인터넷입력 :2016/08/26 10:15    수정: 2016/08/26 10:42

손경호 기자

이제 8개월째에 접어든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의 가능성을 놓고 아직은 긍정론과 회의론이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투자대상으로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 지인들이 해당 기업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투자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반드시 증권사 계좌를 만들어야하고, 실명확인에 신분증 스캔파일 전송까지 절차가 복잡해 투자하기 어렵다는 불평도 나온다.

여전히 운영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지만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이 단순히 시세차익을 노리기 보다 기업이 내세운 가치에 동의하고, 이를 함께 성장시키겠다는 주주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이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소액투자자 많을수록 회사 만족도 높다

"소액투자자들이 많이 모인 회사들이 오히려 만족도가 높더라구요."

신혜성 와디즈 대표.

23일 경기도 판교 사옥에서 만난 신혜성 와디즈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 운영 8개월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본래 미국 킥스타터처럼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던 이 회사는 올해 초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할 수 있는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 라이선스를 땄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약 2천900명 투자자들로부터 전체 펀딩 금액 중 절반 가량을 운영하는 중이다.

아직 초기인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두고 일각에서는 지인들이 해당 기업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투자하거나 이미 외부 전문투자자들과 사전에 얘기가 된 상태에서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평한다. 실제로 도입 초기에는 한 기업에 대한 펀딩이 10명이 안 되는 투자자들로 구성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신 대표는 이런 우려와 달리 점차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이 의도했던데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특히 소액투자자수가 많은 기업일수록 해당 기업의 만족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주식투자는 대상 기업의 성장성을 보고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높은 가격에 판매해 시세차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을 위해 이러한 주주들이 필요하지만 그리 반가운 존재인 것만은 아니다. 언제든 상황에 따라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직원, 거래처, 고객 등은 이해관계자로 볼 수 있지만 주주들은 그렇게 보기가 어렵다는 설명이 따르는 이유다.

신 대표에 따르면 일반 상장사의 주주들이 기업에 돈을 넣었다 빼가는 '인베스터(investor)'로 시장에 참여한다면 크라우드펀딩에서는 말 그대로 '스톡홀더(stockholder)'가 주축을 이룬다고 말한다. 짧은 시간 안에 시세차익을 얻기 보다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의 특성 상 장기적인 투자로 접근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신 대표는 와디즈를 통해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기업들 중 하나는 친구로부터 100만원을 투자받는데도 여러 차례 전화통화로 사업성이 있는지 등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소액투자자들 입장에서 100만원은 그리 작은 돈이 아닌 만큼 직접 검증한 곳에만 투자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파력발전 전문회사 인진 (사진=와디즈)
성용준 인진 대표는 크라우드펀딩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을 후원하거나 응원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출처=와디즈 캐스트)

와디즈를 통해 229명 투자자로부터 4억5천200만원 펀딩을 유치한 인진 성용준 대표는 투자자들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이해도를 갖고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회사는 파도에너지를 활용한 발전시설을 만드는 회사다. 와디즈 캐스트에 따르면 성 대표는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을 후원하거나 응원하는 사람들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투자위험을 명확하게 알고, 피드백 게시판에 날카로운 질문을 남기기도 하는 등 투자에 대한 진지함이 전문가 이상 수준이었다는 평가다.

수제자동차회사로 1월~3월 간 229명 투자자로부터 2억9천300만원 펀딩을 완료하고, 2차 펀딩으로 96명 투자자에게 1억4천137만원 투자를 유치한 모헤닉게라지스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자동차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관심 있는 이들이 투자자로 참여한 덕에 주주와 주주의 가족들까지 참여해 바비큐 파티를 열며, 회사의 비전이나 수제자동차에 대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는 모팸데이라는 특별한 주주총회를 열기도 했다.

하루 만에 목표금액 펀딩을 완료한 ICT농업벤처 만나씨이에이의 사례도 눈에 띈다. 이 회사는 386명 투자자로부터 7억8천580만원을 투자받고, 이후 2차 펀딩에서도 395명에게 7억7천360만원 투자를 완료했다. 물고기양식과 수경재배를 결합한 아쿠아포닉스 농법을 실시간 모니터링해서 작물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했다. 또한 재배한 채소를 일명 '만나박스'라는 제품으로 정기배송하는가 하면 주주들을 직접 초청해 교류행사도 연다.

신 대표는 투자자들이 크게 2가지 기준으로 투자결정을 내린다고 말한다. 첫째는 이 업종이 되겠다는 확신이 설 때이고, 그 다음은 내가 이 회사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성공사례들이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제자동차 전문회사 모헤닉게라지스 (사진=와디즈)
ICT농업벤처 만나씨이에이 (사진=와디즈)

■"책임은 큰 데 권한은 적다"

그러나 해결해야할 과제도 남아있다. 신 대표는 특히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사업자에 대해 온라인 소액투자를 중개할 수 있는 권한만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수준의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웹사이트에 방문해 투자를 하려면 반드시 증권계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밖에도 실제로 증권계좌를 제공하는 증권사가 아니라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들만 투자자 보호, 불완전 판매에 대한 고민을 해야하고, 투자자가 보유한 은행계좌에서 증권사에 실시간 계좌이체를 통해 주식을 사고, 증권계좌로 증권을 받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도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는 크라우드펀딩을 진행 중인 기업의 증권을 보유해서는 안 되며, 해당 기업에 대한 자문은 물론 증권을 보유한 투자자들 간에 증권을 거래하는 업무도 금지됐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사업자가 직접 할 수도 있는 일을 중간에 증권사를 거쳐야만 하는 탓에 사용자들도 불편하고, 중개업자 입장에서도 리스크 관리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설명이다.

신 대표는 "실명확인을 해야하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 솔루션, 신분증 스캔정보를 암호화해서 보관하는 등 행정비용이 발생하면서도 증권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고, 금융결제원이 제공하는 실시간 계좌이체용 뱅크페이 모듈을 반드시 써야하는 등 손발이 잘려 업계가 자생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치 중고나라처럼 비상장 주식을 장외거래하는 커뮤니티인 38닷컴 같은 곳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가 없으나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을 하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회사들은 라이선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끼리 증권을 사고파는 일도 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다고 덧붙였다.

이미 증권예탁결제원을 통해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증권발행, 거래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 만큼 신 대표는 "투자금을 직접 관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증권을 투자자들끼리 사고파는 일을 대행할 수 있는 권한은 필요하다"며 "최소한 (상대적으로 규제로부터 유연한 P2P대출, 비상장 주식거래 커뮤니티 등) 다른 업계와 역차별은 없어야한다"는 입장이다.

■"진짜 좋은 기업에 돈을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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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표는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고, 산업은행에서 기업금융 등을 맡았다가 2012년 와디즈를 창업했다. 그는 "좋은 기업에 돈을 주는 것이 기업금융이라고 선배들한테 배웠는데 도대체 좋은 기업이 뭘까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한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돈 잘 벌 것 같은 곳이 좋은 기업이고, 기업대출 사업자 관점에서는 큰 공장부지 등 좋은 담보를 갖고 있으면 좋은 기업이 된다. 그는 이러한 일을 벗어나 진짜 좋은 기업에 돈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회사를 창업하게 됐다.

신 대표는 그의 회사 모토인 '자본의 불균형, 불가능에 도전하다'에 꽂혀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몸 담고 있다고 말한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이 가진 본질만 잃지 않는다면 꾸준히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