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특명…"VR의 격을 높여라"

'프로젝트 알로이' 발표…"융합현실 구현"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6/08/17 13:12    수정: 2016/08/17 15:24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쓴 DJ가 허공에 드럼을 치면서 인텔의 연례 개발자회의(IDF) 2016 키노트 막이 올랐다. 이처럼 화려한 무대는 인텔의 발표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IT 하드웨어 중심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늘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데 힘을 쏟는다. 올해 개발자 앞에서는 VR로 포문을 연 점이 주목할 만하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열린 'IDF 2016' 키노트의 초반 30분 가량은 VR에 할애됐다. 이는 두 시간에 약간 못 미치는 발표 현장에서 인텔이 VR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윽고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CEO는 직접 무대에 올라 ‘프로젝트 알로이’라는 VR 헤드셋을 선보였다. 글로벌 IT 업계에서 VR 헤드셋 하나 내놓지 않은 회사는 드물다. 인텔 역시 “VR이 대세(VR is now mainstream)”라며 동조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무언가 달랐다. 기존 VR 콘텐츠 이용 경험과는 거리를 뒀다. 인텔이 바라보는 지점은 더 멀리 있다는 뜻을 강력히 내비쳤다. 새로운 마케팅 용어로 비춰지는 융합현실(merged reality)이란 표현을 꺼내들기도 했다.

■ “가상현실(VR)이 진짜 가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인텔은 딱히 경쟁관계를 갖고 사업을 전개하는 회사가 아니다. 완제품도 완전 부분품도 아닌 컴퓨팅용 칩셋이라는 반제품을 만드는 공장 회사다. 때문에 특정 회사를 쉬이 지칭하지는 않는다.

반면 이날 IDF 키노트에서는 오큘러스 리프트, HTC 바이브 등 기존 VR 헤드셋 선두권 회사 이름을 꺼내 들었다.

인텔은 현재의 가상현실이 실질적인 가상의 경험을 주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례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발언이다. 이는 모두 ‘프로젝트 알로이’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알로이라고 불리는 올인원 VR 헤드셋 수준 정도는 되어야 가상현실이 본격적으로 와닿지 않겠냐고 반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

■ 리얼센스 카메라를 통합 융합현실

융합현실이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까지 나온 것은 프로젝트 알로이 헤드셋의 기계적인 특징 때문이다. 이른바 IT 바닥에서 가장 뜬다고 하는 VR과 더불어 AR(증강현실) 기능까지 모두 더했기 때문이다.

VR은 디스플레이를 통한 일방적인 시각 정보로 전달하면 된다. 이와 달리 AR은 실제 세계에 가상을 띄우는 방식으로, 헤드셋에 적용할 때 주변 환경 인지가 가능해야 한다.

인텔은 VR 겸용이 가능한 AR 헤드셋을 위해 리얼센스 기술을 투입했다. 리얼센스는 3차원 인식 카메라 솔루션이다. 처음 이 기술이 논의될 때에는 동작 인식을 위한 정도로 소개되다가 AR 이슈가 부각되면서 리얼센스가 적용될 수 있는 무대가 확장됐다.

이를테면 구글의 AR 프로젝트인 탱고에 리얼센스 기술을 투입한다거나, 갤럭시노트7으로 새 화두가 된 동작 및 얼굴 인식 등 생체 인증 등에 거론됐다. 프로젝트 알로이에서는 외부 환경 인식과 이용자의 동작 인식을 돕기 위해 2개의 리얼센스 카메라를 심는 식이다.

인텔 리얼센스 (사진 = 인텔 홈페이지)

■ 무선 헤드셋이 실질적인 VR 경험 선사

굳이 무선 방식의 VR 헤드셋인 점을 강조한 점도 눈여겨 볼 점이다. PC(혹은 스마트폰)와 유선으로 연결, 다른 기기의 컴퓨팅 파워를 끌어오는 방식이 아니라 자체적인 컴퓨팅이 이뤄질 수 있는 기기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모바일 기기 개발과 발전 수준에서 가장 진척이 느린 부분은 배터리다. 무엇보다 소형화가 쉽지 않아서다. 그런 배터리에 VR과 AR이 가능한 컴퓨팅 모듈을 머리에 얹어야 하는 것은 사실 너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주변 선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 VR 헤드셋이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에서도 주요 스마트폰 출시때마다 이뤄지는 VR 체험 행사를 떠올려보자. VR 헤드셋을 착용한 이용자는 쇼파 같이 푹신한 의자에 앉혀둔다. 두 눈은 가상의 공간을 탐험하고 있지만 몸은 실제의 공간에 있다. 몰입감이 뛰어난 영상 콘텐츠를 보다 허우적거리면서 어디 부딪히지 말라는 이유로 체험은 동적이지만 몸은 정적이어야만 한다.

VR 몰입도가 뛰어난 게임 장르 중 하나인 일인칭슈팅게임(FPS)를 헤드셋을 쓰고 체험을 할 때도 이용자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어느 한 곳에 서거나 고정되어서 주변을 둘러보고 총을 쏘는 식이다.

인텔은 기존 VR 헤드셋의 이같은 한계점을 무선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머리 위에 쓰는 헤드셋에 온갖 센싱 솔루션과 컴퓨팅 자원, 그에 맞는 전원 공급을 모두 한 곳에 모은 것이다.

회사 측은 “넓은 장소에서 코드 선의 구애 없이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VR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며 “충돌감지와 방지 기능을 결합해 가능해진 수준으로 이용자들이 가상의 공간을 탐험하는데 물리적인 움직임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 알로이 VR 헤드셋 실물.

■ 인텔 “VR의 품격을 높여라”

회사의 주력 분야인 PC 산업의 침체 속에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면서도 인텔은 이처럼 첨단 기술을 소개하기에 바쁘다. 새로운 표준을 잡아가는데 어떤 게으름도 허용하지 않는 풍토가 있기 때문이다.

컴퓨팅 자원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IT 기술이 나오면 인텔은 재빠르게 자사 위주의 표준을 만들고 반도체 공장을 돌려 하드웨어 제조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실제 인텔은 스타트업의 산실이라고 불리는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을 만든 회사다.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으로 웨이퍼를 만들고 여기서 칩셋을 찍어낸 뒤 완제품 회사에 파는 것이 이 회사의 사업이다.

즉, 인텔이 직접 ‘프로젝트 알로이’ 헤드셋을 만들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프로젝트 알로이 표준을 내놓은 뒤 파트너 회사들이 이에 맞게 제품을 만들도록 등을 떠미는 방식으로 새로운 기술을 확산시킨다.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할 무선 VR+AR 올인원 헤드셋을 발표했다고 한들 유야무야 사라질 수도 있다. 올해 초 CES 2016에서 발표한 리얼센스 3D 카메라를 탑재한 AR 지원 다크리 스마트 헬멧만 보더라도 그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다.

다만 프로젝트 알로이를 통해 인텔이 얻고자 하는 목적은 VR이 더욱 빨리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프로젝트 알로이 정도의 VR 경험을 선사할 수 있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하나의 산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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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VR이 이 정도의 품격은 되어야지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제조사들이 이 시장을 노려 기기를 만들고, 기기 보급이 늘어날수록 콘텐츠 제작 활성화까지 이어지는 생태계가 열릴 것이란 노림수다. 인텔은 여기서 하드웨어 제조든 콘텐츠 제작이든 인텔 칩셋이 필요한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 들어간다.

프로젝트 알로이의 실질적인 모습은 내년 이후에나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오늘은 개발자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는 전체 생태계의 개념 소개 정도다. 인텔은 일단 내년에나 프로젝트 알로이 하드웨어와 응용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공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