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청정기 유해물질 방출…기업도 소비자도 '혼란'

환경부 제품명 공개하고 인체 유해성 여부 검증은 보류

홈&모바일입력 :2016/07/21 16:38

정현정 기자

정부가 공기청정기와 차량용 에어컨 항균필터 안전성 검증을 통해 유해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을 함유한 필터 모델명을 공개하고 회수조치 방침을 밝혔다. 지난달 관련 의혹이 언론에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두고 기업들의 반론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가장 중요한 인체 유해성에 대한 판단이 보류된 채 제조사명과 필터명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20일 환경부는 공기청정기·차량용 에어컨 내 OIT를 함유한 항균필터에 대해 위해성을 평가한 결과, 제품 사용과정에서 OIT가 방출되는 것으로 확인돼 제품명을 공개하고 회수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OIT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일으킨 독성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와 유사한 물질로, 환경부가 2014년 유독물질로 지정했다. 앞서 지난달 언론 보도를 통해 차량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에 쓰이는 항균필터에 유독물질인 OIT가 함유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항균필터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확산된 바 있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환경부가 참고자료에 명시한 OIT 함유 필터 리스트다. 환경부 조사 결과 ▲대유위니아(2) ▲쿠쿠전자(9) ▲LG전자⑰ ▲삼성전자(6) ▲코웨이㉑ ▲청호나이스(1) ▲프렉코(2) 등 7개 제조사의 61개 모델에 OIT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존 보도를 통해 OIT 함유 사실이 알려졌던 대유위니아, 쿠쿠전자, LG전자 등 3개 제조사 외에 자사 공기청정기에 OIT 함유 사실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던 삼성전자와 코웨이 제품이 명단에 포함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제조사 중 가장 많은 수(21개)의 필터가 리스트에 포함된 코웨이는 즉각 입장 발표를 통해 “21개 제품 중 18개는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은 해외향 필터이고 국내에 판매되는 3개 필터는 3M 필터를 사용했지만 타사와는 다른 천연 성분 항균제가 쓰였기 때문에 OIT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또 3M으로부터 이를 확인하는 내용의 공문을 받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방문 서비스 직원들인 코디를 통해 소비자 안내에 나섰다.

그동안 “자사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에는 유기물이 아닌 무기물을 활용한 필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OIT가 검출될 가능성이 없다”고 밝혀왔던 삼성전자의 경우 해당 리스트에 포함된 필터들이 양산 제품이 아닌 필터 교체와 AS용으로 제공됐던 것을 확인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당 필터는 양산 시점에서 제품에 기본 탑재된 부품이 아니라 필터교체나 AS용으로 제공됐던 제품으로 내부적으로 OIT 성분 검출 여부에 대한 확인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파악을 완료한 후 대책을 마련해 환경부 권고에 따라 소비자 안내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부 발표 이후 기업들의 해명이 이어지며 혼란이 벌어진 데에는 그동안 유해물질 논란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아왔던 3M이 환경부 요청에 그동안 납품 이력인 있는 모든 필터 제품 리스트를 제공하고 환경부가 이를 업체 확인 절차 없이 그대로 발표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비난의 화살이 유해물질이 함유된 항균제를 공급한 업체나 필터 제조사인 3M 대신 국내 기업들에 쏠리고 있지만 업체들은 현실적으로 정부 발표에 공식적인 반박이 어려워 소비자 안내에 분주한 상황이다.

환경부가 진행한 공기청정기 OIT 방출량 실험 사진 (사진=환경부)

환경부 검증으로 OIT 방출이 확인된 대유위니아, 쿠쿠전자, LG전자 등 3개 제조사는 소비자 대응에 집중하고 있다. 환경부가 발표한 제조사별 OIT 한계노출(MOE, Marginal of Exposure) 수치는 ▲대유위니아 218 ▲쿠쿠전자 62 ▲LG전자 117이다. MOE는 무영향관찰농도를 노출수준으로 나눈 안전비율로 100미만이면 위해가 우려된다고 평가되며 수치가 낮을수록 위해도가 크다.

100 이상이 나온 LG전자의 경우 “환경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LG전자가 판매한 일부 공기청정기의 OIT 검출 필터는 위해가 우려되는 수준이 아닌 것으로 평가됐다”면서 “다만 LG전자는 환경부 발표가 나올 때까지 고객들이 불안해 할 수 있어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달 말부터 원하시는 고객에게 OIT가 포함되지 않은 필터로 무상 교체해드리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가장 낮은 수치가 나온 쿠쿠전자의 경우 환경부 발표에 대한 별도 입장 표명 없이 필터 교체를 진행 중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쿠쿠전자 관계자는 "이번 환경부 발표와 무관하게 환경부의 발표전부터 공기청정기 전 모델의 필터 교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시행하고 있다"면서 "현재는 필터의 전량 교체 완료 시점을 7월 말로 잡고 가급적 빠르게 필터 교체가 완료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유위니아 관계자는 "자사 가습공기청정기 2개 제품에 적용된 필터의 경우 항균처리과정에서 환경부 허용 기준 1%의 1/13 이하인 0.076% 극소량의 OIT가 함유되어 있다고 3M사로부터 전달 받았으며 공기 중에 방출되는 양은 극소량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하면서 향후 생산되는 제품의 경우 OIT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필터로 전량 교체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또 기존 구매 고객들을 대상으로는 무상방문 필터 교체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환경부가 유해물질이 함유된 필터가 탑재된 가전제품의 모델명 대신 복잡한 필터 모델명만 공개하면서 혼선도 큰 상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지역맘 카페 등에서는 문제가 된 제품 모델명을 공유하는 소비자들과 해당 업체 고객센터에 전화해 필터 교환을 문의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다수 눈에 띈다.

특히 한 달 만에 나온 간이 위해성 조사에서 인체 유해성에 대한 구체적인 입증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부 공기청정기가 유해물질인 OIT를 내뿜는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공기 중에 방출된 OIT를 어느 정도의 양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 들이마셨을때 유해한지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환경부는 이번 제품명 공개와 회수권고 조치가 필터 사용과정에서 OIT가 방출되는 것이 확인된 만큼 사전 예방적 조치라고 설명하면서 인체 위해도에 대한 조사는 지속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환경부는 “실험 전후 필터 내 OIT 함량 비교분석결과를 적용해 위해성을 평가한 결과, 일부 공기청정기와 차량용 에어컨 내 필터에서 위해가 우려되는 것으로 평가됐다”면서도 “다만 실험 과정에서 공기 중의 OIT를 포집해 분석한 결과 OIT가 미량 검출됐는데, 이 경우 위해도가 높지 않아 방출된 OIT가 실제 인체로 얼마나 흡입되는지 여부는 학계, 전문가 등과 논의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결정을 보류했다.

이에 대해 한 제조사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발표에 불만이 있어도 공개적으로 나서 반박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면서 "정부가 발표를 한다면 인체 유해성에 대한 구체적인 입증을 해줘야하는데 앞선 논란만 확인시키는 꼴이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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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불씨도 남아있다. 환경부는 OIT가 아닌 항균물질로 처리한 필터에 대해서도 자진수거 등 선조치 후 안전성 검증에 착수할 예정이며, 차량용이 아닌 가정용 에어컨에 대해서도 필터 내 성분을 조사하는 등 안전성 검증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힌 상태여서 공기청정기 뿐만 아니라 에어컨, 청소기 등 필터를 사용하는 가전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가전 제품들의 안전성이 하나씩 문제가 되고 그때마다 소비자 여론이 들끓으면서 정부조치가 내려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각개격파 식으로 특정 제품의 유해성을 따지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