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뱅, ARM 인수…반도체업계 "그나마 다행"

기술독점 우려는 줄어…"큰 영향 없을 것" 한 목소리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6/07/19 17:10    수정: 2016/07/19 17:27

정현정 기자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 업체 ARM 인수를 전격 발표한 가운데 국내외 반도체 업계는 당장 시장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향후 재매각 등 장기적인 파급력엔 촉각을 곧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까지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이후 첫 대규모 영국 기업 M&A라는 점과 손정의 회장의 승부수가 더욱 주목받는 분위기다. 국내외 반도체 업계에서는 반도체 사업을 하지 않는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한데 한숨을 돌리면서도 향후 재매각 가능성이나 사물인터넷(IoT) 시장 파급력에 주목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18일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홀딩스 지분 100%를 243억파운드(약 35조원)에 인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ARM은 반도체 설계 지적재산권(IP)을 반도체 소업체에 제공하고 로열티 수입을 받는 비즈니스 모델을 기본으로 하는 회사다. 인텔 x86 아키텍쳐를 사용하는 PC용 프로세서를 제외하고 ARM 아키텍쳐는 스마트폰, 가전, 통신 등 거의 대부분 반도체 칩 설계의 기본 구조로 사용된다.

특히 모바일 시장에서 ARM은 95% 이상 점유율을 보유한 사실상 독점 회사다. 삼성전자 엑시노스, 애플 A시리즈, 퀄컴 스냅드래곤 등이 모두 ARM 아키텍쳐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ARM의 지난해 매출은 9억6천800만파운드(약 1조5천억원)로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의 0.44%에 불과하지만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ARM 아키텍쳐가 널리 퍼진 것은 ARM의 기본 철학이 이익 극대화보다는 에코시스템 극대화에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현재까지 저렴한 라이선스 비용을 요구함으로써 반도체 제조사들이 거부감 없이 ARM 아키텍쳐를 받아들였고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계속 늘면서 이는 다시 ARM의 꾸준한 실적 성장으로 이어져왔다"고 분석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 업체 ARM 인수를 전격 발표한 가운데 이번 M&A가 국내외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사진=씨넷)

그동안 애플, 브로드컴, 퀄컴, 르네사스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ARM 인수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고 이에 따른 파장도 적지 않았다. 특정 반도체 업체가 ARM 기술을 독점해 이를 무기로 라이선스 비용을 높인다면 반도체 업체들의 수익성과 생태계 전반이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ARM 인수설이 끊임없이 제기됐음에도 실현되지 않았던 것은 특정 반도체 업체가 인수를 시도할 때 다른 업체들에서 견제가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소프트뱅크가 반도체 사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점이 이번 딜이 성사될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의 ARM 인수 소식이 전해진 이후에도 업계에서는 국내외 반도체 시장에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통신과 콘텐츠 사업 분야를 주로 진행하는 소프트뱅크의 기술 독점 우려가 적고 ARM 라이선스를 이익 극대화를 위한 의도로 사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소프트뱅크 역시 ARM의 비즈니스 모델과 문화,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혀 업계 우려를 잠재우고 있다. 또 향후 5년 간 영국 내 ARM 종업원수를 두 배 늘리고 해외 고용도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향후 소프트뱅크가 ARM의 기업가치를 높인 후 지분을 재매각할 가능성 등 위협요소는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2년 밉스(MIPS)를 인수해 모바일과 IoT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 공략을 진행한 이매지네이션 주가가 ARM 인수 발표 직후 크게 오른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리 래틀리프 IHS애널리스트는 “만약 ARM이 다른 반도체 업체에 인수됐다면 MIPS 기반 SoC와 MCU를 공급하는 이매지네이션의 고객사가 크게 늘어나고 많은 프로세서 제조사들이 독자적인 코어 설계 역량을 갖추기 위해 부심했을 것”이라면 “인수 발표 이후 이매지네이션 주가가 두 자릿수 올랐다는 것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대체재를 고민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 (사진=뉴스1)

당장 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ARM 연합군이 차세대 사물인터넷 시장에 미칠 파급력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 역시 영국 런던에서 ARM 인수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세계는 PC모바일을 넘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ARM은 이런 IoT 시대를 이끌 수 있는 핵심 기업”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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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는 통신 사업을 바탕으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새로운 서비스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성숙기에 접어든 모바일 뿐 아니라 사물인터넷, 오토모티브, 네트워크 등으로 사업 영영까지 ARM 코어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3년 핀란드의 IoT 소프트웨어 업체 센시노드, 지난해 저전압 블루투스 무선 지적재산권 제공업체 선라이즈마이크로디바이스, 올해 이미징 및 임베디드 컴퓨터 비전 기술 전문업체인 애피컬 등 업체를 잇따라 인수하며 관련 투자도 강화해왔다.

도현우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한 이유는 ARM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모바일 업체들과 사업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측면과 함께 포트폴리오 전환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면서 "최근 보유하고 있던 알리바바, 겅호, 슈퍼셀 등 인터넷 게임 업체를 높은 가격에 매각하면서 모바일 소프트웨어 사업이 정점이라고 판단하고 사물인터넷, 자동차 반도체, 머신러닝 서버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는 분야에서 향후 칩 출하 개수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