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상임위원 5명은 서로 왜 싸웠나

LGU+ 항명 사태 처리 ‘속도 vs 절차’ 대립

방송/통신입력 :2016/06/10 16:26    수정: 2016/06/12 16:11

“위원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월권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부위원장이 장식품이란 말인가. 일은 누가 저질러놓았는데…… 부위원장이 그 불을 끄는 것을 놓고 월권이라고 하는 것인가. 매우 유감이다. 방통위 운영상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LG유플러스의 항명 사태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간 마찰이 커지고 있다.

특히 김재홍 부위원장의 경우 지난 3일 주재한 긴급간담회 및 브리핑과 관련해 최성준 위원장으로부터 질타를 받아 내상이 심각한 상태다.

김 부위원장은 위원장이 자리를 비워 본인이 그 직무를 대신한 것뿐인데 이를 ‘월권’했다는 뜻으로 지적을 당하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느낀 상처의 크기는 ‘장식품’이란 단어로 대변됐다. 한 마디로 위원장이 부위원장 자리를 있으나마나 한 장식품 정도로 봤다는 지적이다.

10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일어난 상임위원들 간 ‘소동’은 이달 1일 싹트기 시작했다.

법인폰을 일반 가입자에게 판매한 혐의를 받는 LG유플러스가 방통위의 사실조사를 거부하면서부터 방통위는 규제 기관으로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를 뒤늦게 보고 받은 김재홍 부위원장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기자들로부터 전화 취재가 들어왔고, 최성준 위원장이 독일과 프랑스 출장 중이라 더욱 입장은 난처해져만 갔다. 방통위의 입장과 계획을 묻는 질문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LG유플러스의 조사 거부 사태는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취재진의 질문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방통위의 위신도 더 추락했다. 방통위 내부적인 판단으로는 조사 절차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LG유플러스는 법적인 조사 절차를 지켜줄 것과 단독조사에 대한 배경 설명 등을 요구하며 문을 걸어 잠갔다.

3일 이른 오전까지 LG유플러스는 여전히 방통위 조사를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김재홍 부위원장은 상임위원 3명에게 긴급간담회를 제안했다.

시간을 조율하던 중 이기주 의원만이 외부 일정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이기주 의원은 긴급간담회를 티타임으로 알고 본인 일정을 소화했다. 결국 긴급간담회는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김석진 상임위원끼리 진행됐다. 이들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긴급브리핑을 열기로 결정, 이날 오후 3시경 출입기자들을 모아 브리핑을 진행했다.

"정당하고 적법하게 이뤄진 현장조사에 대해 사업자가 반발한다면 방통위가 갖고 있는 규제권은 가중처벌뿐이다. LG유플러스에 대한 사실조사가 완료되면 이를 바탕으로 상임위원 회의를 통해 심결하고,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제재할 지 결정하게 된다.”

다행히 이날 LG유플러스가 방통위 사실조사에 응하기로 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일단 어느 정도 봉합되는 듯 보였다. 심사 일정과 조사 결과에 관심이 모아졌다. 또 출장에서 돌아온 최성준 위원장의 발언에 이목이 집중됐다.

LG유플러스 사옥

드디어 7일 상임위원 5명이 비공개 자리인 티타임에 모였다.

부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상임위원은 당연히 LG유플러스 항명 사태에 대한 방통위의 입장과 대응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최성준 위원장은 3일 있었던 긴급간담회와 기자브리핑을 문제 삼았다. 요지는 시차가 다르고, 해외에 있었더라도 이런 중차대한 사안은 위원장이자 상임위원인 본인에게 전화로 직접 알려줬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대와 다른 반응에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분개했다.

본질부터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터져 나왔다.

고 상임위원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 이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논의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10일 전체회의에서 김 부위원장은 당시 위원장이 “위원장 없는 사이 월권했다”는 말을 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월권이라 말한 적 없고, 왜 자신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냐”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부위원장은 “현지시간으로 새벽 2~3시에 위원장에게 전화를 어떻게 걸겠냐”며 “비서를 통해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여러 상임위원과 논의 했고, 사안이 긴박했던 만큼 직무 대리자인 부위원장이 직권으로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반문도 했다.

결국 김재홍 부위원장은 법에만 위원장과 부위원장 역할 분담이 두루뭉술하게 돼 있는 문제라고 판단, 부위원장 직무세칙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재홍 방통위 부위원장

종합해 보면 부위원장은 위원장이 없는 사이 벌어진 LG유플러스 항명 사태를 계기로 부위원장의 한계를 경험하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또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서야 ‘LG유플러스 수첩사건’, ‘권영수 부회장과 조사담당과장과의 부적절한 식사’ 등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제한적인 보고만 받는 부위원장 자리에 새삼 회의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전체회의가 끝난 뒤 별도 브리핑 자리에서 그는 스스로 “조사 배경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고 털어놨다.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에 따르면 이번 LG유플러스의 사실조사 거부에 따른 본질은 신속한 방통위의 입장 정리와 대응책 마련이다. 지금도 늦었다는 판단이다.

반면 최성준 위원장은 담당 사무처에 사실관계 조사를 지시한 만큼, 정확한 결과를 갖고 제대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이기주 상임위원 역시 같은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김석진 상임위원은 양측 사이에서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LG유플러스 사실조사 거부가 그 동안 여야로 대치됐던 방통위 상임위원 간의 잘 보이지 않던 갈등을 수면 위로 올려놨다. 또 서로의 자존심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퀴었다. 부위원장이 티타임에서 받은 울분을 취재진들이 지켜보는 전체회의에서 토하는 바람에 위원장 역시 체면이 구겨졌다.

본질은 뒤로 하고, 절차만 걸고넘어진 사람이 됐다는 울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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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상임의원의 경우는 부위원장 발언으로 ‘LG유플러스 사실조사를 거부한 위원’이 됐다. 이 상임위원은 부위원장 발언에 끝까지 책임을 지라며 흥분과 화를 감추지 않았다.

최성준 위원장은 전체회의 말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사실 관계”라면서 감정을 추스르고 자리를 정돈했지만 방통위는 상임위원 각자의 생채기부터 치료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