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LG유플러스 '조사거부 사태' 재구성

[기자수첩] 사태의 발단은 '수첩사건' 부터

방송/통신입력 :2016/06/10 12:13    수정: 2016/06/10 15:35

공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재벌 기업은 영화 속 단골 소재다. 지난해 흥행한 베테랑, 내부자들이 대표적이다. 영화속 기업인들은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고도 갖은 방법을 동원해 수사기관을 무력화시킨다.

영화는 영화일 뿐일까?

최근 영화 같은 사태가 통신 업계를 떠들썩하게 달구고 있다.

지난 1일 LG유플러스가 방송통신위원회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위반 조사를 거부한 사건 얘기다.

조사거부 사건을 전후로 벌어진 일들이 새롭게 알려지면서 이번 사건은 영화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갖추게 됐다.

# 단통법 조사나온 방통위 공무원을 막아라

지난 1일 LG유플러스 본사. 회사직원과 방통위 현장조사반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단통법 위반 혐의를 포착하고 방통위 공무원들이 LG유플러스에 현장조사를 나갔지만, 회사측이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출입을 막은 것이다.

LG유플러스는 '방통위가 조사 7일 전까지 조사 기간, 이유, 내용 등에 대한 조사 계획을 사업자에게 알려줘야한다’는 단통법 제13조 3항을 근거로, 1일 통보 받았으니 7일 이후인 9일부터 사실조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방통위 공무원들은 현장조사를 실시하지 못하고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LG유플러스는 더 나아가 방통위에 정식으로 절차상의 적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공문을 접수했다.

현장조사반의 출입을 막은 것은 단통법에 따라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절차를 지키지 않은 방통위의 방식을 탓하며 항의한 것이다.

LG유플러스의 과감한(?) 행동은 방통위는 물론 이통 업계를 당혹케했다.

단통법에는 '긴급한 경우나 사전에 통지하면 증거인멸 등으로 조사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 예외로 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고 그간 증거 인멸의 가능성을 이유로 단통법 사실조사가 갑자기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절차를 문제 삼아 현장조사를 거부한 건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LG유플러스 사옥

#잘못은 LG유플러스가, 징계는 방통위 담당 과장이?

3일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LG유플러스가 방통위 조사를 거부한 사태가 엄중하다고 판단해 긴급 회의를 개최했다.

그날 프랑스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최성준 방통위원장을 대신해 김재홍 부위원장 주재로 3명의 상임위원들이 참석(이기주 위원은 외부 일정으로 불참)한 가운데 긴급 회의가 개최됐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LG유플러스도 조사에 응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조사 거부 이틀만에 사태가 일단락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방통위 조사담당 과장이 사실조사가 시작되기 하루전인 지난달 31일 서울시내 식당에서 LG유플러스 권영수 부회장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방통위는 이유를 막론하고 담당 과장이 조사 전날 대상 기업 대표를 만난 것이 부적절했다고 보고 담당과장을 이번 업무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다.

방통위 공무원들은 술렁일 수 밖에 없다.

LG유플러스의 조사 거부로 인해 한 번, 조사를 진두지휘하던 담당 과장이 업무에 배제 되며 또 한 번 내상을 입은 꼴이다.

방통위 담당과장과 LG유플러스 권영수 대표가 왜 만났으며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가 관심으로 떠올랐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으나, 원래 이전부터 약속이 잡혀있던 것이란 얘기부터 일명 ‘수첩사건’ 때문에 이뤄진 만남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모든 사건의 시작은 4월 ‘수첩 사건’?

수첩사건이 무엇인가하면, 지난 4월 27일 방통위 회의에 참석한 LG유플러스 직원이 수첩을 흘리고 갔는데 수첩 안에 방통위를 자극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얘기다.

수첩에 적힌 내용이 방통위 공무원들의 분노를 사,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권영수 부회장까지 나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LG유플러스가 절차를 문제 삼아 조사를 거부한 것도 이번 단독조사를 '수첩 사건에 대한 방통위의 보복성 조사'로 보고 반발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LG유플러스는 경쟁사도 위반한 사실이 있는데 '조사대상 선정에 대한 기준과 단독조사의 대상이 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방통위에 요구하며, 이번 조사의 배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얘기가 어느정도 사실이라면 이 모든 사건이 흘리고간 수첩에서 시작된 '수첩 게이트'라고 불러도 무방해 보인다. 물론 LG유플러스와 방통위 모두 수첩 사건이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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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부터 단통법 위반에 대한 사실조사가 시작됐지만 이번 사태는 마무리는 커녕 아직도 숱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방통위 상임위원들 사이에서는 위원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회의를 하고 그 내용을 기자들에게 알린 것이 또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흘리고간 수첩에서 시작해 방통위 상임위원들 간 내분까지 이어진 이번 사태를 지켜보니 재벌 기업들이 공권력도 우습게 보는 모습을 그린 영화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영화를 넘어 현실에서도 공권력을 대하는 일부 기업들의 그릇된 시각의 단면을 엿본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