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도 제4차 산업혁명 영향권 진입...격변 예고

인터넷입력 :2016/06/01 16:31

손경호 기자

자본시장에도 제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고 있다.

1969년부터 전자 및 IT 기술의 발달과 제조공정 자동화가 이끈 3차 산업혁명에 이어 그동안 감당할만한 기술이 없는 탓에 버려졌던 수많은 데이터들을 모아 분석하는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으로 대표되는 기기들 간 연결, 인공지능(AI) 혹은 머신러닝에 대한 기술발달이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자본시장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 블록체인(분산원장), 크라우드펀딩으로 대표되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핵심은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빅데이터 기반 기술로 머신러닝 혹은 AI 기반 자동화된 투자 및 분석 모델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기술 발달이 대기업, 고액자산가에게만 집중됐던 투자를 중소기업/자영업자, 개미투자자들도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도 적절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한다는 메시지다. 대신 증권사, 보험사 등 자본시장에서는 갈수록 줄어드는 수익성을 높이면서도 차별화를 위한 방안으로 핀테크를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왼쪽부터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 마이클 포웰 톰슨 로이터 전무, 조엘 브루켄스타인 T3컨퍼런스 회장, 크리스토퍼 처치 디지털에셋홀딩스 최고사업개발 책임자, 박수용 글로벌핀테크연구원장, 이제훈 삼성증권 전무.

자본시장발전협의회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개최한 '2016 한국자본시장컨퍼런스'에서는 자본시장은 물론 로보어드바이저, 블록체인 분야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야할 방법을 논의했다.

이날 '자본시장에서의 디지털 혁신'을 주제로 개최된 패널토론에는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 주재로 마이클 포웰 톰슨 로이터 전무, 조엘 브루켄스타인 T3컨퍼런스 회장, 크리스토퍼 처치 디지털에셋홀딩스 최고사업개발 책임자, 글로벌핀테크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박수용 교수, 이제훈 삼성증권 전무 등이 참석해 자본시장에서 핀테크 기술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그동안 유통업, 엔터테인먼트 분야 등에 비해 파괴적 혁신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금융산업이 빅데이터, IoT, AI의 등장으로 인해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자료=마이크 파웰)

포웰 전무는 "금융업은 과거 유통업, 여행,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비해 규제가 많은 탓에 그동안 파괴적인 혁신이 이뤄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금융위기 이후 금융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부족, 기술발달로 인한 비용절감이 빠르게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제는 자본시장을 포함한 금융업도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에 기민하게 대응해야하는 산업이 됐다는 분석이다.

■로보어드바이저 , 자산관리사 대체재 VS 보완재

이런 와중에 주목받고 있는 기술 중 하나가 로보어드바이저다. 이전까지 자산관리사가 주로 고액 자산가들을 위해 투자를 진행했던 것과 달리 개인의 투자 성향이나 시장 현황을 자동화된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맞춤형 분산투자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기존 자산관리사들을 대체할 것인가, 보완할 것인가?

브루켄스타인 T3컨퍼런스 회장은 둘 다 해당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을 예로들면 (로보어드바이저로 인해) 시장 자체가 저비용 구조로 가면서 더 많은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과거 높은 자문수수료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던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기존 자문서비스를 제공했던 회사들도 20대~30대 젊은 세대 신규고객 확보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안동현 원장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자산관리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표인데 국내서는 마치 펀드매니저가 이세돌이고, 로보어드바이저가 알파고인 것처럼 대결구도로 몰고가는 인식이 있다"며 "오히려 이 때문에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수익률이 좋지 않을 경우 시장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와 관련 삼성증권에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개발 중인 이제훈 전무는 "과거에도 자산관리사 대신 기업정보를 활용해 사전에 프로그램된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투자가 이뤄지는 퀀트(quantitative) 기반 투자 방식은 있었던 것"이라며 "로보어드바이저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를 운영해서 어느 시점에는 기존 자산관리사보다 높은 수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조엘 회장은 로보어드바이저가 기존 자산관리사를 보완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일반 투자자들은 너무 비쌀 때 투자종목을 구매해서 너무 빨리 팔아버리는 것이 문제"라며 "로보어드바이저가 새로운 유형의 위험분석 모델을 제공해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주목한 블록체인...마법의 플랫폼은 아냐

암호화 화폐인 비트코인을 거래하기 위해 구축된 분산네트워크 기반 거래장부인 블록체인(분산원장)은 보안성, 투명성, 비용절감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글로벌 금융사, IT기업들이 직접 관련 프로젝트에 뛰어들 정도로 빠르게 논의가 진전되는 중이다.

미국 나스닥이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인 '링크(Linq)'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고, 미국 증권거래정보저장소(TR) 사업자인 DTCC와 호주증권거래소(ASX)도 이러한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글로벌 은행들이 참여해 블록체인 기반 금융거래망을 구축하려는 R3CEV 컨소시엄, 특정조건에 맞춘 파생상품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방법으로 이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투명하고,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게 돕는 서비스를 개발 중인 디지털에셋홀딩스도 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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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셋홀딩스 크리스토퍼 처치 최고사업개발 책임자는 "블록체인 혹은 분산장부가 모든 금융시장 인프라를 바꿀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이 뛰어난 기술인 것은 맞지만 이것이 기존 금융인프라를 당장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마법의 기술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이 각종 금융 규제에 대응해 거래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하면서 리스크를 줄이고, 청산결제 시간을 줄이는 등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소 과장된 면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당장 증권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증권 거래 앞단이 아니라 거래가 이뤄진 뒤에 이뤄지는 청산결제 등 후속작업(post-trading)에 우선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가 블록체인이 가진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기였다면 올해는 이를 실제 금융사 비즈니스 영역에 적용하기 위한 개념증명(POC)이 이뤄질 것이고, 약 10년 뒤에는 블록체인에 저장된 정보들을 API를 통해 제공받아 이를 활용해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플랫폼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