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도래

전문가 칼럼입력 :2016/04/04 08:50    수정: 2016/04/04 10:02

임백준 baekjun.lim@gmail.com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 빌드 2016 행사를 다녀왔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5,000여 명의 개발자들이 거대한 행사장을 누비면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배우고 즐기는 개발자의 축제였다. 충격적인 발표가 많았던 작년 빌드에 비하면 차분해진 느낌이었지만 리눅스와 윈도의 통합, 자마린의 무료 배포 등은 개발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3일 동안 이어진 행사는 한 사람이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다양한 기술과 API를 다루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공지능이었다. 첫날 기조연설에서 사티아 나델라 CEO는 “플랫폼으로서의 대화(Conversation as a platform)”라는 화두를 던지고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을 이야기했다.

플랫폼으로서의 대화에서 ‘대화’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아니라 인간과 인공지능, 혹은 인공지능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의미한다. 최근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으로 승부를 겨루면서 인공지능이 인간과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 아니라 공존을 강조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이런 이벤트를 통해서 세계적 관심을 불러 모은 구글을 어느 정도 의식한 수사(修辭)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지서비스(Cognitive Services)는 API로 공개되는 음성인식, 언어인식, 이미지인식, 자연어처리, 검색 서비스를 활용해서 일반적인 개발자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도록 장려한다. 구글이나 IBM 같은 회사도 이미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누구의 서비스가 더 나은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서비스가 속속 제공되고 있는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 시대는 이미 여기에 왔다.

예를 들면 이렇다. 모바일 중심의 세상에서 브라우저는 앱(App)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브라우저를 쓰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 앱을 설치하고 활용한다. 하지만 설치된 앱의 수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관리가 어려워진다. 사용하고 싶은 앱의 수는 무한한데 설치할 수 있는 앱은 유한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앱은 롱테일을 포괄하지 못한다.(Apps do not cover long tail.)”

각각의 앱을 사용하는 사람의 수를 막대그래프로 표시한 후 일렬로 세우면, 앞부분에 키가 큰 막대가 몰리고 뒤로는 키가 작은 막대들이 긴 꼬리를 형성한다. 이 롱테일에 존재하는 앱은 발견 자체가 어렵다. 사람은 이런 롱테일을 분석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용자의 선호도, 사용패턴, 규칙 등을 파악해서 인공지능이 사용자에게 롱테일에 존재하는 기능을 소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경우 사용자 입장에서 인터넷 혹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관문은 브라우저나 앱이 아니다. 인공지능과의 대화다.

롱테일 분석만이 아니다. 만나고 싶은 의사를 찾는 것, 야근할 때 먹을 음식을 주문하는 것, 친구들과 만날 약속 시간을 정하는 것, 이런 소소한 일 정도는 이미 인공지능이 자기 ‘주인’의 성향과 필요를 분석해서 비서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첫날 키노트의 하이라이트는 이와 같은 인공지능이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특수 안경을 쓴 채 안경테를 쓱 문지르는 방식으로 인공지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시선이 머무르는 방향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리고 사진을 분석한다. 그리고 사람의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10대 여자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탄 채 활짝 웃고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해서 고객 앞에서 말하던 그는 다시 안경테를 슬쩍 문지른다.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고객들이 자기 말을 듣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인공지능은 그의 귀에 속삭인다.

“30대 여성과 40대 남성이 이쪽을 바라보면서 만족하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식당에 간 그는 메뉴를 읽을 수 없자 다시 안경테를 쓱 문지르고 말한다.

“음식의 이름을 읽어줘.”

그러자 인공지능은 굵은 볼드체로 작성되어 있는 글을 순서대로 그의 귀에 읽어준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수준이 이미 혁명적이다.

프로데프(ProDeaf.net)라는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지서비스를 활용해서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수화로 바꾸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음성인식과 자연어처리 등의 기술이 융합된 서비스다. 이 회사의 CEO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백 만 청각장애인들의 실업률을 개선하기 위해서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말하며, 앞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한다.

유럽의 통신 회사인 텔리2(TELE2)는 영어와 프랑스어 사이에서 상당한 수준의 통역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나온 사람은 강연을 하는 도중에 영어를 하지 못하고 프랑스어만 사용하는 친구에게 실시간으로 전화를 걸어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텔리2에서 제공하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그의 말을 프랑스어로 통역하고, 친구의 말을 영어로 통역한 것이다.

사티야 나델라 CEO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는 앞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API를 통해서 기능을 공개할 테니, 여러분은 그런 플랫폼 위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애플리케이션의 다른 이름은 봇(Bot)이다.

“만국의 개발자여 봇을 개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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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는 개발자들이 봇 개발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봇 프레임워크(Bot FRAMEwork)라는 것도 공개했다. 이번 빌드 2016 행사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이미 여기에 왔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하라.

인공지능은 바다다. 지금 수많은 강물이 모여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 거대한 바다 앞에서 리눅스와 윈도즈의 구분 같은 것은 개울물에 불과하다. 자기가 선호하는 회사, 생태계, 테크놀로지 스택에 사로잡힌 채 집착하는 사람은 자기 미래를 제한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폴리글랏 프로그래밍조차 협소하다. 상황에 따라서 자유롭게 굽히고 펴는 능력을 의미하는 능굴능신(能屈能伸)만이 살길이다. 인공지능보다 대범하고, 인공지능보다 넓은 상상을 펼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빌드 2016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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